나관중 삼국지 삼국연의 95회 96회
한문 원문 및 한글번역
예시문
第九十七回 討魏國武侯再上表 破曹兵姜維詐獻書
제구십칠회 토위국무후재상표 파조병강유사헌서.
삼국연의 97회 위나라를 토벌하는 제갈무후는 다시 표를 올리고 조의 병사를 깬 강유는 글 올리길 허락하다.
却說蜀漢建興六年秋九月,魏都督曹休被東吳陸遜大破於石亭,車仗馬匹,軍資器械,并皆罄盡 罄盡:=罄竭, 돈이나 물건 따위가 바닥이 나 다 없어짐
。
각설촉한건흥육년추구월 위도독조휴파동오육손대파어석정 거장마필 군자기계 병개경진.
각설하고 촉한 건흥 6년[228년] 가을 9월에 위나라도독 조휴는 동오의 육손에게 석정에서 대파를 당하고 수레의 의장, 마필과 군자금과 무기를 모두 다 잃었다.
休惶恐之甚,氣憂成病,到洛陽,疽發背而死。
휴황공지심 기우성질 도낙양 저발배이사.
조휴는 황공함이 심하고 기가 근심하여 병을 생성하여 낙양에 이르러서 저[腫氣]가 등에 발생하여 죽었다.
魏主曹叡 叡(밝을, 임금 예; ⼜-총16획; rui)
敕令厚葬。
위주조예칙령후장.
위나라 군주인 조예는 칙령을 내려 두터이 장례하게 했다.
司馬懿引兵還,衆將接入問曰:“曹都督兵敗,即元帥之干系 干系[gānxi] :(책임이나 분쟁을 유발할 수 있는) 관계. 관련. 책임.
,何故急回耶?”
사마의인병환 중장접입문왈 조도독병패 즉원수지간계 하고급회야?
사마의가 병사를 인솔하고 돌아와서 여러 장수를 들어오게 하며 물었다. “조휴 도독의 병사가 패배하여 원수의 연계되는데 어찌 급하게 돌아오십니까?”
懿曰:“吾料諸葛亮知吾兵敗,必乘虛來取長安。倘隴西緊急,何人救之?吾故回耳。”
의왈 오료제갈량지오병패 필승허래취장안. 당롱서긴급 하인구지? 오고회이.
사마의가 말하길 “나는 제갈량이 우리 병사가 패배함을 알고 반드시 허한 틈을 타고 장안을 취하러 올 것임을 생각한다. 혹시 농서에 긴급함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구원하겠는가? 내가 그래서 돌아왔을 뿐이다.”
衆皆以爲懼怯,哂 哂(비웃을 신; ⼝-총9획; shěn)
笑而退。
중개이위구겁 신소이퇴.
여럿이 모두 사마의가 두려워하고 겁낸다고 생각하고 비웃으며 물러갔다.
却說東吳遣使致書蜀中,請兵伐魏,并言大破曹休之事:
각설동오견사치서촉중 청병벌위 병언대파조휴지사.
각설하고 동오의 파견한 사신이 촉에 서신을 이르게 하며 병사를 청해 위나라를 정벌케 하니 조휴를 대파한 일을 말했다.
一者顯自己威風 위풍 :위엄(威嚴)이 있는 풍채(風采)나 모양(模樣)
,二者通和會之好。
일자현자기위풍 이자통화회지호.
사신은 첫 번째로 자기의 위풍을 현시하고 둘째로 화친의 우호를 통하자고 했다.
後主大喜,令人持書至漢中,報知孔明。
후주대희 령인지서지한중 보지공명.
후주[유선]는 매우 기뻐서 사람을 시켜 편지를 지니고 한중에 이르게 하며 제갈공명에게 보고하여 알렸다.
時孔明兵強馬壯,糧草豐足,所用之物,一切完備,正要出師。
시공명병강마장 양초풍족 소용지물 일체완비 정요출사.
이 때 제갈공명의 병사가 강하고 말이 건장하며 식량과 풀이 풍족하여 소용되는 물건이 일체 완비되어 바로 군사를 내려고 했다.
聽知此事,即設宴大會諸將,計議出師。
청지차사 즉설연대회제장 계의출사.
제갈공명이 이 일을 들어서 살고 잔치를 열어서 여러 장수를 크게 모아서 계책을 내어 군사를 냄을 논의하였다.
忽一陣大風,自東北角上而起,把庭前松樹吹折。
홀일진대풍 자동북각상이기 파정전송수취절.
갑자기 한 바탕 큰 바람이 불어서 동북쪽위에서 일어나며 뜰 앞의 소나무를 잡고 끊어 버렸다.
衆皆大驚。
중개대경.
여럿이 모두 놀랐다.
孔明就占一課,曰:“此風主損一大將!”
공명취점일과 왈 차풍주손일대장.
제갈공명이 점을 치고 말했다. “이 바람에 한 대장이 손상해 죽겠구나!”
諸將未信。
제장미신.
여러 장수는 아직 믿지 않았다.
正飲酒間,忽報鎮南將軍趙雲長子趙統、次子趙廣,來見丞相。
정음주간 홀보진남장군조운장자조통 차자조광 래견승상.
바로 술을 마시는 사이에 갑자기 진남장군 조운의 장자인 조통과 차남인 조광이 제갈승상을 알현하러 왔다.
孔明大驚,擲杯於地曰:“子龍休矣!”
공명대경 척배어지왈 자룡휴의.
제갈공명이 크게 놀라서 잔을 땅에 던지고 말했다. “조자룡이 죽었구나!”
二子入見,拜哭曰:“某父昨夜三更病重而死。”
이자입견 배곡왈 모부작야삼경병중이사.
두 아들이 들어와 알현하고 절하며 통곡하고 말했다. “제 아버지가 어제 밤 3경[밤 11시-새벽1시]에 병이 위중하여 돌아가셨습니다!”
孔明跌足 跌足[diēzu] :(슬픔·절망·후회 등으로) 발을 동동거리다[동동 구르다].
而哭曰:“子龍身故 身故[shēngu] :죽다. 사망하다.
,國家損一棟樑 棟(용마루 동; ⽊-총12획; dong)樑(들보 량{양}; ⽊-총15획; liang)
,吾去一臂 일비 :①한 팔 ②얼마 안 되는 도움 ③도움이 되는 사람
也!”
공명질족이곡왈 자룡신고 국가손일동량 오거일비야!
제갈공명이 발을 동동 구르고 통곡하였다. “조자룡의 몸이 죽거 국가에서는 한 동량을 잃으며 내 한 팔을 제거했도다!”
衆將無不揮涕。
중장무불휘체.
여러 장수는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음이 없었다.
孔明令二子入成都面君報喪。
공명령이자입성도면군보상.
제갈공명은 조운의 두 아들을 성도에 들어가서 군주를 대면하고 상례를 보고하게 했다.
後主聞雲死,放聲大哭曰:“朕昔年幼,非子龍則死於亂軍之中矣!”
후주문운사 방성대곡왈 짐석년유 비자룡즉사어난군지중의.
후주는 조운이 죽음을 듣고 방성대곡을 하고 말했다. “내가 예전에 어렸을 때 조자룡이 아니면 어지러운 전쟁[당판파]중에 죽을뻔했다.”
即下詔追贈大將軍,謚封順平侯,敕葬於成都錦屏山之東﹔
즉하조추증대장군 시봉순평후 칙장어성도금병산지동.
후주는 곧 조서를 내려 대장군으로 추증하며 시호로 순평후로 봉하며 칙령을 내려서 성도 금병산의 동쪽에 장례를 치르게 했다.
建立廟堂,四時享祭。
건립묘당 사시향제.
사당을 건립하고 사계절동안 조운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後人有詩曰:
후인유시왈
후대 사람이 시로써 말했다.
常山有虎將,智勇匹關, 張:
상산유호장 지용필관장.
상산에 호랑이 같은 장수[조운]가 있으니 지혜와 용기가 관우, 장비에 필적하네.
漢水功勳 勛(공 훈; ⼒-총12획; xūn)의 원문은 勳이다.
在,當陽姓字彰 鄣(나라 이름, 막아내다 장; ⾢-총14획; zhāng)의 원문은 彰(밝을 창; ⼺-총14획; zhāng)이다.
。
한수공훈재 당양성자장.
조운은 한수에 공로가 있으니 당양에서 성명을 드날렸다.
兩番扶幼主,一念答先皇。
양번부유주 일념답선황.
두 번 어린 군주[후주 유선]를 도와주니 한번 생각에 선대 황제[유비]에 보답한다.
青史 청사 :역사(歷史). 기록(記錄)
書忠烈,應流百世芳。
청사서충렬 응유백세방.
청사[역사]의 기록에 충렬이 있으니 응당 유방백세 流芳百世:환온(312~373)은 선성(宣城) 태수를 지낸 환이(桓彛)의 아들로, 자는 원자(元子)이다. 동진 명제(明帝)의 사위가 되었고, 여러 차례에 걸쳐 북방 이민족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동진의 실권자가 되었다.
환온은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자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싹텄다. 어느 날 그는 베개를 쓰다듬으며 "꽃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더러운 이름인들 만세에 남길 수 있겠는가(不能流芳後世, 不足復遺臭萬載邪)?"라고 탄식하였다.
하다.
却說 後主思念趙雲昔日之功,祭葬甚厚﹔
각설 후주사념조운석일지공 제장심후.
각설하고 후주는 조운이 예전의 공로를 생각하고 제사와 장례가 매우 두터웠다.
封趙統爲虎賁中郎,趙廣爲牙門將,就令守墳。
봉조통위호분중랑 조광위아문장 취령수분.
조운의 아들인 조통을 호분중랑으로 조광을 아문장으로 봉하며 무덤을 지키게 했다.
二人辭謝而去。
이인사사이거.
두 사람은 사례하고 갔다.
忽近臣奏曰:“諸葛丞相將軍馬分撥已定,即日將出師伐魏。”
홀근신주왈 제갈승상장군마분발이정 즉일장출사벌위.
갑자기 근처 신하가 상주하였다. “제갈량 승상께서 장차 군인과 말이 이미 출정을 함을 결정하니 곧장 군사를 내어서 위나라를 정벌하려고 합니다.”
後主問在朝諸臣,諸臣多言未可輕動。
후주문재조제신 제신다언미가경동.
후주는 조정의 여러 신하에게 물으니 여러 신하는 많이 아직 감히 가벼이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
後主疑慮未決。
후주의려미결.
후주는 의심하고 염려하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忽奏丞相令楊儀齎[出師表]至。
갑자기 승상의 상주로 양의를 시켜 출사표를 가지고 이르렀다고 했다.
後主宣入,儀呈上表章。
후주선입 의정상표장.
후주가 양의를 들어오게 하니 의식으로 표장을 올렸다.
後主就御案上拆視,其表曰:
후주취어안상탁시 기표왈
후주가 책상에서 찢어 보니 출사표는 다음과 같았다.
先帝慮漢、賊不兩立,王業不偏安 偏安: 시골에 살며 평안한 마음으로 지냄(중원을 잃고) 겨우 남은 작은 영토에서 일시적인 안일을 탐하다. 일부 지방에 안거함을 만족해하다. 偏安一隅 조그만 영토에 안거함을 만족해하다.
,故託臣以討賊也。
선제려한 적불량립 왕업불편안 고탁신이토적야.
‘선제[유비]께서는 한나라가 적[魏]과 양립하지 못함을 염려하시며 왕업은 조금 치우친 곳에서 안일할 수 없으므로 신에 의탁하여 적을 토벌하게 하셨습니다.’
以先帝之明,量臣之才,故知臣伐賊,才弱敵強也。
이선제지명 량신지재 고지신벌적 재약적강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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