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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1회 2회

나관중의 속칭 삼국지라 불리는 삼국연의 1회 2회 한문 한글 번역 각주까지 있는 책입니다. 예시문 조서는 손견을 오정후로 봉하였다. 封劉虞爲幽州牧,領兵往漁陽征張舉、張純。 봉유우위유주목 령병왕어양정장거 장순. 유우를 유주목으로 봉하며, 어양에 가서 반란군 장거와 장순을 정벌하러 가라고 명령했다. 代州劉恢以書薦玄德見虞。 대주유회이서천현덕현우. 대주의 유회는 글로 유현덕을 벼슬아치로 천거하고 류우를 보게 했다. 虞大喜,令玄德爲都尉 都尉: 무관과 문관 양쪽에 있으며 전문적인 직무에 종사 ,引兵直抵賊巢,與賊大戰數日,挫動銳氣。 우대희 령현덕위도위 인병직저적소 여적대전수일 좌동예기. 류우는 매우 기뻐서 현덕을 도위로 삼고 병사를 인솔하여 직접 적의 소굴에 이르러 적과 수일간 크게 싸우나 예기를 꺽..
나관중의 속칭 삼국지라 불리는 삼국연의 1회 2회 한문 한글 번역 각주까지 있는 책입니다.
예시문
조서는 손견을 오정후로 봉하였다.
封劉虞爲幽州牧,領兵往漁陽征張舉、張純。
봉유우위유주목 령병왕어양정장거 장순.
유우를 유주목으로 봉하며, 어양에 가서 반란군 장거와 장순을 정벌하러 가라고 명령했다.
代州劉恢以書薦玄德見虞。
대주유회이서천현덕현우.
대주의 유회는 글로 유현덕을 벼슬아치로 천거하고 류우를 보게 했다.
虞大喜,令玄德爲都尉 都尉: 무관과 문관 양쪽에 있으며 전문적인 직무에 종사
,引兵直抵賊巢,與賊大戰數日,挫動銳氣。
우대희 령현덕위도위 인병직저적소 여적대전수일 좌동예기.
류우는 매우 기뻐서 현덕을 도위로 삼고 병사를 인솔하여 직접 적의 소굴에 이르러 적과 수일간 크게 싸우나 예기를 꺽으려 움직였다.
張純專一凶暴,士卒心變,杖下頭目刺殺張純,將頭納獻,率衆來降。
장순전일흉폭 사졸심변 장하두목자살장순 장두납헌 솔중래항.
장순은 오로지 한 흉포한 사람으로 병사의 마음이 변하여 막대기로 치고 머리와 눈을 쳐 장순을 찔러 죽이며 머리를 바치니 대중이 모두 항복하러 왔다.
張舉見勢敗,亦自縊 縊(목맬 액; ⽷-총16획; yì)
死。
장거견세패 역자액사.
장거도 세력이 패함을 보고 또한 스스로 목매 죽었다.
漁陽盡平。
어양진평.
어양이 모두 평정되었다.
劉虞表奏劉備大功,朝廷赦免鞭督郵 독우(督郵):한나라 때 태수(太守), 군수(郡守) 등의 보좌관으로 설치된 관직으로 동,서,남,북,중 5부로 나누어 소속 현을 보살피며 순찰하게 하였다. 각 현(縣) 의 행정 감독이 주 임무. 당나라 때 폐지
之罪,除下密丞 下密丞-청주 북해국 하밀현의 현승
,遷高堂尉。
유우표주유비대공 조정사면편독우지죄 제하밀승 천고당위.
유우는 유비가 큰 공로를 세움을 표로 상주하니 조정에서는 독우를 채찍질한 죄를 사면하며하밀승에 제수하며 고당위에 옮겨갔다.
公孫瓚又表陳玄德前功,薦爲別部司馬 별부사마(別府司馬):대장군 휘하에 직속되지 않은 독립 부대의 장
,守平原縣令,頗有錢糧軍馬重整중정: 1.[동사] 재조정하다. 재정돈하다.
重整纲纪 기강을 쇄신하다.
舊日氣象。
공손찬우표진현덕전공 천위별부사마 수평원현령 피유전량군마중정구일기상.
공손찬은 또한 유현덕의 앞의 공로를 표로 진정하여 별부사마, 평원을 지키는 현령으로 천거하니 자못 돈, 군량, 말이 있어서 가지런하며 예전의 기상이 있었다.
劉虞平寇有功,封太尉。
류우평구유공 봉태위.
류우는 도적을 평정함에 공로가 있어서 태위에 봉해졌다.
中平六年下四月,靈帝病篤,招大將軍何進入宮,商議後事。
중평육년하사월 영제병독 초대장군하진입궁 상의후사.
중평 6년(己巳년,189年) 4월에 한나라 영제가 병으로 위독하여 대장군 하진을 불러 궁궐에 들어오게 하여 후사를 상의하였다.
那何進起身屠家﹔
내하진기신도가.
어찌 하진이 몸을 푸주간에서 출세했을까?
因妹入宮爲貴人 귀인(貴人):황제 비(妃)의 관명(官名). 첫째가 황후(后)이고, 둘째가 귀인, 셋째가 미인(美人).
,生皇子辯 영제(靈帝)가 죽고 황자(皇子) 유변(劉辯)이 제위에 올랐는데, 이가 곧 소제(小帝)로 하진(何進) 대장군의 여동생인 하태후의 자식이다.
,遂立爲皇后,進由是得權重任。
인매입궁위귀인 생황자변 수립위황후 진유시득권중임.
누이가 궁궐에 들어가 귀인이 되어 황태자 변을 낳고, 황제후손으로 세우니 이로부터 궐력을 얻고 중임되었다.
帝又寵幸 寵(괼 총; ⼧-총19획; chǒng)幸(다행 행; ⼲-총8획; xìng):특별히 은총함
王美人,生皇子協。
제우총행왕미인 생황자협.
황제는 또한 왕미인을 총애하여 황자 협을 낳았다.
何后嫉妒,鴆鴆(짐새 짐; ⿃-총15획; zhèn) 짐새(毒鳥食蛇其羽畫酒飮之卽死)
殺王美人。
하후질투 짐살왕미인.
하후는 질투하여 짐새의 독으로 왕미인을 죽였다.
皇子協養於董太后宮中。
황자협양어동태후궁중.
황자 협은 동태후의 궁중에서 길러졌다.
董太后 동태후(董太后) ? ~ 189:영제 유굉의 모친. 하간 사람 한 환제 유지가 죽은 뒤 아들이 없어 유굉이 제위를 계승하고 그녀를 궁으로 맞아들여 태후로 세웠다. 왕미인이 하황후에게 짐주로 독살당한 후, 그녀는 일찍이 그아들 유협을 부양하였다. 중평 6년(189년), 영제가 죽고 소제가 세워졌는데 그녀는 하태후와 권력을 다투다가 하진에게 협박당하여 하간으로 보내졌다. 오래지 않아 짐주로 독살당하였다. 解瀆亭侯 유장의 부인으로 영제를 낳았다. 아들이 환제의 양자가 되어 제위를 잇게 되자 태후가 되었다. 독살당한 왕마인의 소생 유협을 키웠으며, 헌제(유협)를 편들다 대장군 하진(何進)에게 독살되어 죽었다.
乃靈帝之母,解瀆亭侯劉萇 萇(나무 이름 장; ⾋-총12획; cháng)
之妻也。
동태후내영제지모 시해독정후유장지처.
동태후는 영제의 어머니로 해독정후 유장의 처이다.
初因桓帝無子,迎立解瀆亭侯之子,是爲靈帝。
초인환제무자 영립해독정후지자 시위영제.
초기에 환제가 자식이 없어 해독정후의 자식을 맞이해 세운 것이 영제가 되었다.
靈帝入繼大統,遂迎養母氏於宮中,尊爲太后。
영제입계대통 수영양모씨어궁중 존위태후.
영제는 계속하여 대통을 이어서 양모를 궁중에 맞이하여 존중하여 태후로 삼았다.
董太后嘗勸帝立皇子協 헌제(獻帝) : 협황자(協皇子). 잠시 재위한 소제(少帝)를 이어 9세에 천자가 됨. 재위 189-220년
爲太子。
동태후상권제립황자협위태자.
동태후는 일찍이 황제에게 황자 협을 태자로 삼게 권했다.
帝亦偏愛協,欲立之。
제역편애협 욕립지.
황제 또한 협을 편애하여 그를 세우려고 했다.
當時病篤,中常侍蹇碩奏 奏(아뢸, 상소, 모이다 주; ⼤-총9획; zòu)
曰:
당시병독 중상시건석주왈.
당시 병이 위독하여 중상시 건석에게 말했다.
“若欲立協,必先誅何進,以決後患。”
약욕립협 필선주하진 이결후환.
만약 협을 세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하진을 죽여야 후환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帝然其說,因宣進入宮。
제연기설 인선진입궁.
황제가 그 말을 그렇다고 여겨 하진을 입궁케 하였다.
進至宮門,司馬潘隱 潘隱: 건석의 부하 사마. 중평 6년(189년), 한 영제의 병이 중하자, 건석은 먼저 하진을 죽이고 유협을 태자로 삼을 것을 권하였다. 영제가 그 말을 따라 선포하고 입궁하자 반은이 몰래 하진에게 알리어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謂進曰
진지궁문 사마반은위진왈.
하진이 궁궐문에 이르자 상군사마인 반은이 하진에게 말했다.
:“不可入宮。蹇碩欲謀殺公。”
불가입궁 건석욕모살공.
“입궁하지 마십시오. 건석이 공을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進大驚,急歸私宅,招諸大臣,欲盡誅宦官。
진대경 급귀사택 초제대신 욕진주환관.
하진이 크게 놀라서 급히 사택에 돌아가서 여러 대신을 불러서 환관을 다 죽이려고 했다.
座上一人挺身 정신: 1.[동사] 몸을 곧게 세우다. 2.[동사] 정진(挺進)하다. 앞장서다. 용감하게 나서다.
挺身而起 용감하게 일어서다.
出曰:
좌상일인정신출왈.
좌상이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켜 앞서 나와 말했다.
“宦官之勢,起自仲、質之時﹔朝廷滋蔓極廣,安能盡誅?倘機不密,必有滅族之禍:請細詳之。”
환관지세 기자중질지시. 조정자만극광 안능진주? 당기불밀 필유멸족지화. 청세상지.
“환관의 세력이 중제와 질제의 시대에서 시작했습니다. 황관은 조정에 자양한 넝쿨처럼 지극히 넓으니 어찌 다 죽이겠습니까? 혹시 기밀이 비밀스럽지 않으면 반드시 멸족의 화가 있으니 청컨대 상세히 하십시오.”
進視之,乃典軍校尉曹操也。
진시지 내전군교위조조야.
하진이 그를 보니 전군교위 조조였다.
進叱曰: “汝小輩安知朝廷大事!”
진질왈 여소배안지조정대사.
하진이 질책하면서 말하길 “너 같은 소인배가 어찌 조정대사를 알겠는가?”
正躊躇間,潘隱至,言:
정주저간 반은지 언.
바로 주저하는 사이에 사마인 반은이 이르러 말했다.
“帝已崩。今蹇碩與十常侍商議,秘不發喪,矯詔 矯詔 : 임금의 명령(命令)이라고 속임
宣何國舅入宮,欲決後患,冊立皇子協爲帝。”
제이붕. 금건석여십상시상의 비불발상 교조선하국구입궁 욕결후환 책립황자협위제.
“황제가 붕어하셨습니다. 지금 건석과 십상시가 상의하니 비밀로 상례를 하지 않고 교조[황제 명령으로 속여]하여 하진 국구를 궁궐에 들어가게 해 후환을 해결할려고 하여 황자 협을 황제로 책봉해 세우려고 합니다.”
說未了,使命至,宣進速入,以定後事。
설미료 사명지 선진속입 이정후사.
말이 아직 끝나기 전에 사신이 이르러 속히 하진을 들어오려고 하여 후사를 결정하고자 했다.
操曰:“今日之計,先宜正君位,然後圖賊。”
조왈 금일지계 선의정군위 연후도적.
조조가 말하길 “지금의 계책은 먼저 군위를 세운 연후에 적을 도모해야 합니다.”
進曰:“誰敢與吾正君討賊?”
진왈 수감여오정군토적.
하진이 말하길 “누가 감히 나와 함께 바른 군주를 세우고 적을 토벌하겠는가?”
一人挺身出曰:“愿借精兵五千,斬關入內,冊立新君,盡誅閹豎,掃清朝廷,以安天下!”
일인정신출왈 원석정병오천 참관입내 책립신군 진주엄수 소청조정 이안천하.
한 사람이 몸을 앞세우고 나와서 말하길 “원컨대 정병 5천을 빌려주면 관을 베고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군주를 책봉해 세우며 다 내시들을 죽이고 조정을 맑게 청소하여 천하를 안정시키겠습니다.”
進視之,乃司徒袁逢 원성의 동생은 원봉(袁逢)이며 원봉의 아우가 원외(袁)인데 모두 삼공의 지위에 올랐다.
之子,袁隗 隗(험할, 높다 외; ⾩-총13획; wěi,wéi) 원씨 가문은 환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원소의 삼촌 원외(袁隗)는 원소에게 "가문을 멸망시킬 작정이더냐"라고 크게 꾸짖었다는 일화가 있다.
之姪 侄(어리석을 질; ⼈-총8획; zhí,dié,xì)은 원문은 姪(조카 질; ⼥-총9획; zhí)이다.

진시지 내사도원봉지자 원외지질.
하진이 그를 보고 사도 원봉의 자식인 원외의 조카였다.
名紹 袁紹, ?~202: 자는 본초(本初)이고, 위저우[豫州] 루난군[汝南郡] 루양현[汝陽縣;지금의 허난성 상수이현(商水縣)] 사람이다.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른 명문 귀족 출신으로서 영제(靈帝)가 죽자 대장군 하진(何進)의 명을 받아, 조조(曹操)와 함께 강력한 군대를 편성하였다. 동탁(董卓)을 초대하여 당시 정치적 부패의 요인인 환관들을 일소하려 하였으나,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어 하진이 살해되었다. 이 계획이 실패하자 독자적으로 환관 2000여 명을 살해하였으나, 동탁이 먼저 수도 뤄양[洛陽]에 들어가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190년 허베이[河北]에서 동탁 토벌군의 맹주가 되었으며, 이에 동탁이 뤄양성을 소각하고 창안[長安]으로 천도함으로써 그는 허베이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한편, 조조(曹操)와는 처음에 제휴하였으나 반목하게 되었고, 조조가 허[許;지금의 허난성 쉬창현(許昌縣)]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두 세력은 화베이[華北] 지역을 양분하고 서로 견제하였다. 그러나 200년 관도전투(官渡戰鬪)에서 조조의 군대에 패함으로써 형세가 기울었으며, 패전 후 병을 얻어 202년 여름에 사망하였다. 원담(袁譚)·원희(袁熙)·원상(袁尚)·원매(袁買) 등의 아들을 두었는데, 원매는 원소의 아들이 아니라 원상의 조카라고도 한다. 장남인 원담을 탐탁치 않게 여겨 형의 양자로 입적시켜 후계에서 배제하였으므로 그가 죽은 뒤 생전에 총애하던 셋째 아들 원상이 뒤를 이었다. 원담은 조조에게 투항하여 원상을 협공하였고, 204년 근거지인 업(鄴)이 함락되면서 원소 가문의 세력은 와해되었다. 원상은 오환족(烏桓族)과 힘을 합쳐 조조와 맞서다가 패한 뒤 남은 병력을 이끌고 요동(遼東)으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그를 경계한 공손강(公孫康)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字本初,現爲司隸校尉 사례교위(司隷校尉):치안을 담당하던 관직. 원래 사례라 하던 것을 한무제 때 사례교위로 명칭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특별 수사의 성격을 가진 경찰 기관이었으나 후에 수도와 그 주변의 모든 범죄자를 검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어 그 세력이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후한 때는 군(郡) 이외의 지방 관청에 대한 감독관의 임무도 맡고 하남(河南) 외에 6군(郡)을 통할했다.

명소 자본초 현위사예교위.
이름은 원소이며 자는 본초로 현재 사예교위였다.
何進大喜,遂點御林軍 국왕의 신변과 궁궐의 방위를 책임지는 국왕 직속 근위대인 어림군(御林軍) 또한 좌림군(左林軍)과 우림군(右林軍)으로 나뉘어 있는데, 총 지휘자는 좌우림장군(左右林將軍)
五千。
하진대희 수점어림군오천.
하진은 크게 기뻐하며 어림군 5천을 보내주었다.
紹全身披挂。
소전신피괘.
원소는 전신을 무장하였다.
何進引何顒 顒(공경할 옹; ⾴-총18획; yóng)
、荀攸 순유 공달(筍攸 公達 157~214), 출신지 : 불명, 직위 : 황문시랑 - 상서령 순욱(荀彧)의 종제. 관직은 상서령(尙書令)을 지냈다. 외우내현(外愚內賢)하였고 계모(計謀)가 많았다. 조조(曹操)를 따라서 정벌에 참가하여 기발한 공을 많이 세운다. 후에 조조의 위왕(魏王) 등극을 반대하다가 미움을 받아 58세로 죽었다.
、鄭泰 鄭泰: 후한의 대신. 하진을 따라 영제를 대신해 유변을 제위에 세운다. 후에 하진이 영웅들을 불러모아 환관무리를 없애려 하자 동탁을 경사로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하진에게 거절당하자 낙향함.
等 大臣三十餘員,相繼而入,就靈帝柩 柩(널, 사람의 시체를 넣은 상자 구; ⽊-총9획; jiù)
前,扶立太子辯即皇帝位。
하진인하옹 순유 정태등 대신삼십여원 상계이입 취영제구전 부립태자변즉황제위.
하진은 하옹, 순유, 정태등의 대신 30여명과 서로 계속하여 들어가서 영제의 관 앞에 이르러 태자 변을 도우니 곧 황제로 즉위하였다.
百官呼拜已畢,袁紹入宮收蹇碩。
백관호배이필 원소입궁수건석.
모든 관리는 황제즉위로 부르며 절하길 이미 끝내니 원소는 궁궐에 들어가서 건석을 거두었다.
碩慌走入御園,花陰下爲中常侍郭勝所殺。
석황주입어원 화음하위중상시관승소살.
건석은 황망하게 어원에 달아나 들어가 꽃그늘 아래에서 중상시인 곽승에게 피살당했다.
碩所領禁軍 禁軍 : 황제의 친위병(親衛兵)을 가리킨다. 한대(漢代)에는 남군(南軍)과 북군(北軍)이라 불렀다.
,盡皆投順。
석소령금군 진개투순.
건석은 금군을 맡아서 모두 다 투항하고 순종하였다.
紹謂何進曰:“中官結黨。今日可乘勢盡誅之。”
소위하진왈 중관결당 금일가승세진주지.
원소는 하진에게 말하길 “중관(환관)이 결당하였습니다. 지금 세력을 타고 모두 다 죽여야 합니다.”
張讓等知事急,慌入告何后曰:
장양등지사급 황입고하후왈.
장양등이 일이 급함을 알고 황급히 들어와 하태후에게 고하였다.
“始初設謀陷害大將軍者,止蹇碩一人,并不干臣等事。今大將軍聽袁紹之言,欲盡誅臣等,乞娘娘 娘(아가씨, 어머니 낭{랑}; ⼥-총10획; niáng)娘 :왕비(王妃)나 귀족(貴族)의 아내에 대(對)한 높임을
憐憫!”
시초설모함해대장군자 지건석일인 병불간신등사. 금대장군청원소지언 욕진주신등 걸낭냥린민.
시초에는 모함으로 대장군을 피해를 준 이가 건석 한 사람에 불과하나 신들의 일을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대장군이 원소의 말을 들으면서 신등을 다 죽이고자하니 마마님께서는 불쌍하게 여기십시오.
何太后曰:“汝等勿憂,我當保汝。”
하태후왈 여등물우 아당보여.
하태후가 말하길 “너희들은 근심하지 말고 내가 응당 너희를 보호할 것이다.”
傳旨宣何進入。
전지선하진입.
어지를 전하여 대장군인 하진을 들어오게 했다.
太后密謂曰:“我與汝出身寒微,非張讓等,焉能享此富貴?今蹇碩不仁,既已伏誅 伏誅: 형벌(刑罰)을 받아 죽음을 당(當)함
,汝何聽信人言,欲盡誅宦官耶?”
태후밀위왈 아여여출신한미 비장량등 언능향차부귀? 금건석불인 기이복주 여하청신인언 욕진주환관야?
하태후가 은밀하게 말하길 “나와 너의 출신은 미천하며 환관 장량 등이 아니면 어찌 이런 부귀를 누렸겠는가? 지금 건석이 어질지 않아서 이미 엎드려 죽으니 어찌 사람 말을 믿어 들어서 환관들을 다 죽이려고 하는가?”
何進聽罷,出謂衆官曰:
하진청파 출위중관왈.
하진이 듣길 마치고 나와 여러 관리에게 말했다.
“蹇碩設謀害我,可族滅其家。其餘不必妄加殘害。”
건석설모해하 가족멸기가 기여불필망가잔해.
“건석이 나를 해하려고 모의하여 그 집안을 가족을 다 멸하였다. 나머지 환관은 반드시 망령되게 잔혹한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
袁紹曰:“若不斬草除根,必爲喪身之本。”
원소왈 약불참초제근 필위상신지본.
원소가 말하길 “만약 풀을 베는데 뿌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반드시 몸을 망하게 하는 근본입니다.”
進曰:“吾意已決,汝勿多言。”
진왈 오의이결 여물다언.
하진이 말하길 “내 뜻이 이미 결정되니 너희들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
衆官皆退。
중관개퇴.
여러 관리가 모두 물러갔다.
次日,太后命何進參錄尚書事 錄尙書事:궁정의 문서를 맡던 관직으로 후한 장제(章帝) 때 태부(太傅)와 태위(太尉)에게 이 직무를 겸하게 하여 시작된 관직. 화제(和帝) 이후 상설 기관이 되고, 그 관위(官位)는 삼공(三公) 위에 있었다. 즉 어린 황제가 즉위할 때마다 그를 대신하여 집정하고 재상직을 겸하였다. 현대의 내각총리(內閣總理)와 같은 직책.
,其餘皆封官職。
차일 태후명하진참녹상서사 기여개봉관직.
다음날에 태후가 하진에게 명령하여 녹상서사의 일을 참여하게 명하며 나머지를 모두 관직에 봉하였다.
董太后宣張讓等入宮商議曰:
동태후선장양등입궁상의왈.
동태후는 장양들의 사람에게 궁궐에 들어와 상의케 하였다.
“何進之妹,初始我擡 抬(볼기 칠 태; ⼿-총8획; tāi)의 원문은 擡(들, 들어 올리다 대; ⼿-총17획; tái)이다.
대거: 1. 가마를 메다. 2.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나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다. 3. 아첨하다. 추어주다. 4, 마작에서 두세 사람이 짜고 한사람의 돈을 몽땅 따다.
舉他。今日他孩兒即皇帝位,內外臣僚,皆其心腹:威權太重,我將如何?”
하진지매 초시아대거타. 금일타해아즉황제위 내외신료 개기심복 위권태중 아장여하?
“하진의 누이를 시초에 내가 천거하였다. 지금 그가 어린아이일 때 황제위치에 올라서 내외이 신료가 모두 그[하진]의 심복이다. 권위가 매우 무거우니 내가 장차 어찌해야 하는가?”
讓奏曰:“娘娘 낭낭: 왕비(王妃)나 귀족(貴族)의 아내에 대한 높임을 나타내는 말
可臨朝,垂簾 帘(술집의 기 렴{염}; ⼱-총8획; lián)의 원문은 簾이다.
聽政﹔封皇子協爲王﹔加國舅董重大官,掌握軍權﹔重用臣等:大事可圖矣。”
양주왈 낭낭가임조 수렴청정 봉황자협위왕 가국구동중대관 장악군권 중용신등 대사가도의.
장양은 주청하길 “낭낭[하태후]은 조정에 임하여 정치를 수렴청정했습니다. 황태자 협을 봉하여 왕을 만들었습니다. 나라의 장인[국구]으로 동중이 매우 귀중한 관직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신등을 중용하였으니 큰일을 도모할만합니다.”
董太后大喜。
동태후대희.
동태후는 매우 기뻐하였다.
次日設朝,董太后降旨,封皇子協爲陳留王,董重爲驃騎將軍 표기장군(驃騎將軍):대장군 다음가는 무관직. 일곱 장군 가운데 우두머리로서 녹봉은 4,200석. 수나라 때는 응양랑장(膺揚郞將)으로 명칭이 바뀌어 차차 권한이 떨어지다가 나중에는 무산계(武散階)의 명칭으로 화했다.
,張讓等共預朝政。
차일설조 동태후강지 봉황자협위진류왕 동중위표기장군 장양등공예조정.
다음날 조회를 개설하니 동태우가 어지를 내리니 황자협을 진류왕[뒷날 헌제]으로 봉하며 동중을 표기장군에, 장양등을 함께 조정을 맡게 했다.
何太后見董太后專權,於宮中設一宴,請董太后赴席 赴席: 연회에 참석하다=坐席=赴宴f

하태후견동태후전권 어궁중설일관 청동태후부석.
하태후가 동태후가 권력을 마음대로 함을 보고 궁중에 한 잔치를 만들어 동태후가 자리에 다다르게 청하였다.
酒至半酣 酣(즐길, 연회가 무르익다 감; ⾣-총12획; hān,hán,hàn)
,何太后起身再拜曰:
주지반감 하태후기신재배왈.
술이 반쯤 무르익었을때 하태후가 몸을 일으켜 두 번 절하고 말했다.
“我等皆婦人也,參預朝政,非其所宜。昔呂后고황후 여씨(高皇后 呂氏, ? ~ 기원전 180년)는 전한 고조의 황후이며 전한 혜제의 어머니이다. 이름은 치(雉). 자는 아후(娥姁). 남편인 고조 사후, 황태후・태황태후가 되어, 여후(呂后), 여태후(呂太后) 등으로 불린다. '중국 3대 악녀'로 당나라의 측천무후, 청나라의 서태후와 나란히 이름을 같이 한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정식 황후이며, 또한 중국 최초의 황태후, 태황태후이기도 하다. 단부(현재의 산둥 성)의 유력자인 여공의 딸로 태어났다. 성인이 된 후에 당시 패현 사수의 정장이던 유방에게 시집을 가고, 여동생인 여수(呂須)는 번쾌(樊噲)에게 시집을 갔다. 1남1녀(혜제・노원공주)를 얻었다. 진나라 말기의 혼란기에 일어난 초한전쟁이 일어난 직후에는 패현에서 시아버지인 유태공이나 아이들과 같이 남편이 없는 집을 지키고, 시아버지와 농사를 도와 아이들을 키웠다. 하지만, 초한전쟁이 격화되어 팽성의 전투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붙잡혀서, 여치는 시아버지인 유태공과 같이 초나라 진영에 잡혀 인질이 되어버렸다(하지만 혜제와 노원공주는 어떻게든 유방과 합류하여 관중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이 때에 유방의 아이를 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이후의 초한전쟁은 유방의 지배하에 있던 한신 등에 의한 초나라 진영에 모인 각국에 대한 와해 공작과 평정, 태공과 여치의 신병을 해방하는 것이 초점이 되었고, 항우 측이 유리하면서도 교착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기원전 203년에 들어서서는 한신 등에 의한 와해 공작이 성공하여, 형세는 역전되었다. 궁지에 빠진 항우는 유방과 강화하였고, 여치는 태공과 함께 유방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용서되었다. 다음 해인 기원전 202년, 유방은 항우를 멸망시키고, 전한 왕조를 열고 황제(고조)가 되어, 여치는 황후가 된다(여후). 하지만 아직 정치 상황은 유방이 스스로 반란의 토벌을 하지 않을 정도로 불안정하였고, 궁중에서는 후계자를 놓고 암투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후는 황후로서 남편의 부재중에 반란을 일으키려 한 한신을 처형하는 한편, 자신의 친정(여씨) 및 장량등 중신들의 도움을 빌려, 황태자가 된 유영의 지위의 안정에 힘을 다했다. 고조가 죽고 유영(혜제)가 즉위하면서, 여황후는 황태후로 그 후견을 맡았다. 하지만, 고조의 후계자를 둘러싼 다툼은 뿌리 깊어서, 혜제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여태후는 초왕 유여의를 독살하고, 유여의의 모비인 척부인의 손과 다리를 자르고 눈을 도려내었으며 약으로 귀·목소리를 없애고, 변소에 두어 '인간 돼지'(人猪·人彘)라고 부르게 했다고 사서에 적혀 있다. 이 일에 충격를 받은 혜제는 정무를 방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여태후는 그 아들인 공(소제)을 황제로 세우고, 태황태후가 되었다. 친정인 여씨 일족과 진평, 주발 등 한나라 건국 공신들의 협력으로, 정치의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이 때부터 각지에서 제후왕으로 봉해져 있던 유방의 서자들을 차례차례로 살해하여 그 뒤에 자신의 조카 등 여씨 일족을 봉했고, 자신에게 반항적인 소제 공을 살해하고 상산왕 홍(소제)을 세우는 등의 행동을 취해, 공신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또 공신들도 스스로 처형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여태황태후 자신도 이 일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조카인 여산 등에게 공신들의 동향에 신경쓰러도록 실컷 타일러 더욱 더 여씨 일족이 중앙의 병권을 잡는 중직에 기용하여 만전을 기한 후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고황후(高皇后)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평, 주발 등의 공신들은 황족인 제왕의 유아들과 남은 유씨 왕들과 협력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여씨 일족을 모두 주살하였고, 유방의 5남인 대왕 유항(문제)을 새로운 황제로 책립하였다. 그리고, 소제 홍도 혜제의 친자가 아니고 여태황태후가 어딘가에서 데리고 온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문제의 책립 전후에 살해당했다. 그리고 여동생이자 전한의 개국 공신 번쾌의 아내인 여수도 채찍형으로 살해되었고, 여수의 아들인 번항도 살해당했다. 결국 이 숙청으로 여씨의 피를 이은 사람들 중에서 살해되지 않은 것은 딸인 노원공주와 장이의 아들 장오와의 사이에 태어난 장언 뿐이었다.
因握重權,宗族千口皆被戮。今我等宜深居九重﹔朝廷大事,任大臣元老自行商議,此國家之幸也。愿垂聽焉。”
아등개부인야 참예조정 비기소의. 석여후인악중권 종족천구개피륙. 금아등의심거구중. 조엊대사 임대신원로자행상의 차국가지행야 원수청언.
“우리들[하태후, 동태후]은 모두 부인이니 조정에 참여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예전에 한나라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가 중요한 권력을 쥐어서 종족 천여명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매우 깊은 구중궁궐에 있습니다. 조정대사는 대시 원로가 스스로 상의하게 맡김이 이는 국가의 행운입니다. 원컨대 청을 들어주십시오.
董后大怒曰:“汝鴆 酰(아실 선; ⾣-총13획; xiān)의 원문은 鴆이다.
死王美人,設心嫉妒。今倚汝子爲君與汝兄何進之勢,輒敢亂言!吾敕驃騎斷汝兄首,如反掌耳!”
동후대노왈 여짐사왕미인 설심질투. 금의여자위군여여형하진지세 참람난언. 오칙표기단여형수 여반장이.
동태후가 크게 분노하여 “너는 죽은 왕미인을 짐독으로 독살해서 질투의 마음을 내었다. 지금 너의 자식을 임금이 되어 너의 오라비 하진의 세력에 의존하니 문득 감히 어지러운 말을 하는구나! 나는 표기장군을 칙령하여 네 오라비의 목을 베기가 손바닥 뒤집듯이 쉽다.”
何后亦怒曰:“吾以好言相勸,何反怒耶?”
하후역노왈 오이호언상권 하반노야?
하태후가 또한 분노하여 “나는 좋은 말로 서로 권하는데 어찌 반대로 분노하는가?”
董后曰:“汝家屠沽 屠(잡을 도; ⼫-총12획; tú)沽(술을 팔 고; ⽔-총8획; gū): 즉 도살업을 하는 집이나 술을 파는 집
小輩,有何見識!”
동후왈 여가도고소배 유하견식!
동태후가 말하길 “너의 집안이 백정이나 술을 파는 소인배 무리이니 어찌 식견이 있겠는가?”
兩宮互相爭競,張讓等各勸歸宮。
양궁호상쟁경 장양등각권귀궁.
저자:나관중 자 관중. 호 호해산인(湖海散人). 본명 본(本). 산시성[山西省] 루링[廬陵] 사람. 1364년에 살았다는 기록 외에 전기(傳記)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최하급의 관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송원시대(宋元時代)에 유행한 강담(講談)의 이야기책을 기초로 하여 구어체 장편소설을 지은 선구자로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및 시내암(施耐庵)과의 공저인 《수호지(水滸誌)》의 2대 걸작을 비롯하여 《수당연의(隋唐演義)》 《잔당오대사연의(殘唐五代史演義)》 《평요전(平妖傳)》 등의 작품이 있다.

희곡에는 3편의 작품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조태조용호풍운회(趙太祖龍虎風雲會)》 하나뿐이다.
번역자는 한방 피부과 전문의로 서울 마포구 신촌에 있는 흉터 튼살을 치료하는 이미지한의원 www.imagediet.co.kr 02-336-7100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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