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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179 배척문4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薛己醫案》曰:江陰舉人陳鳴岐寓京,患背疽,用大補之劑而愈。
설기의안에서 말하길 강음거 사람인 진명기는 서울에 살아서 배저를 앓아서 대보하는 약제를 사용하여 나았다.
翌日,設席作謝,對談如常。
다음날에 자리를 설치하여 감사하는데 평상처럼 대담을 하였다.
是晚,得家信,大拂其意,惱怒,發熱作渴,食梨子少許。
저녁에 집안의 소식을 듣고 크게 가려고 하며 번뇌와 분노로 발열하여 갈증이 생겨서 배를 조금 먹었다.
至夜,連瀉數次。
밤이 되어서 연달아 수차례를 설사하였다.
早,促予視,脈已脫矣,竟至不起。
아침에 내가 보길 재촉하여 맥이 이미 허탈하여 마침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夫梨者利也,疏利下行之物,凡脾胃虛寒產婦金瘡者,皆當忌之。
배는 날카롭고 성글고 날카롭게 하행하는 음식물이니 비위가 허한한 임산부가 금창이 있으면 모두 응당 꺼린다.

留都鄭中翰,仲夏患發背,已半月,瘡頭十餘枚,皆如栗許,漫腫堅硬,根大如盤,背重如負石,即隔蒜灸五十餘壯,其背頓輕。
유도 정중한이 여름에 발배를 앓아서 이미 보름이며 창두가 10여매로 모두 좁쌀과 같고 만종으로 단단하며 뿌리가 쟁반크기로 등이 돌을 짊어진 듯이 무거우니 격산구 50여장으로 등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彼因輕愈,不守禁忌,三日後大作,瘡不起發,喜得作痛,用活命飲四劑,勢少退;
저것은 가볍게 나아서 금기를 지키지 않아서 3일 뒤에 크게 일어나니 창이 일어나지 않고 기쁘게 통증이 생기니 활명음 4제를 사용하니 세력이 조금 쇠퇴하였다.
用香砂六君子湯四劑,飲食少進。
향사육군자탕 4제를 사용하여 음식을 조금 먹었다.
彼恃知醫,自用敗毒藥二劑,飲食益少,口流涎沫,若不自知,此脾虛之甚也。
저들이 의학을 알아서 스스로 패독약 2제를 사용하여 음식을 조금 덜 먹고 입에서 침이 흐름을 스스로 알지 못하니 이는 비허가 심해짐이다.
每用托裏藥內參、芪各三錢,彼密自揀去大半,後雖用大補藥加薑、桂,亦不應;
매번 탁리약을 사용하여 인삼, 황기를 각 12g을 넣고 비밀스럽게 반을 가려서 제거하여 뒤에 비록 대보약에 건강, 육계를 넣어 사용하여도 또한 반응치 않았다.
遂以參、芪各一斤,歸、朮各半斤,乾薑、桂、附各一兩,煎膏一罐,三日飲盡,涎頓止,腐頓潰,食頓進;再用托裏健脾藥,腐肉自脫而愈。
인삼 황기 각 600g, 당귀, 백출 각 300g, 건강, 육계, 부자 각 40g을 고약으로 달여 한 사발에 넣고 3일에 다 마시니 침이 갑자기 멎고 썩은 것이 갑자기 터지며 음식을 갑자기 먹게 되었다. 다시 탁리하고 비를 건장케 하는 약을 사용하니 썩은 살이 스스로 떨어져서 나았다.

南都聘士葉公玉表兄聶姓者,患發背,時六月,腐肉已去,瘡口尺許,色赤而焮,發熱不食,欲嘔不嘔,服十宣散等藥,自爲不起。
남도의 초빙한 선비 섭공 옥표형 섭씨는 발배를 앓음이 6개월이 되어 썩은 살이 이미 되고 창구가 1척 정도이며 적색으로 화끈거리며 발열로 먹지 못하니 구토하려고 하여도 구토하지 못하며 십선산등의 약을 복용하여 스스로 일어나지 못했다.
葉請余決之。
섭씨가 나에게 해결하길 청했다.
其脈輕診則浮而數,重診則弱而濇,此潰後之正脈。
맥이 가벼이 진맥하면 부맥이면서 삭맥이나 무겁게 진맥하면 약하면서 색맥이니 이는 터진 뒤에 바른 맥이다.
然瘡口開張,血氣虛也;
그러나 창구가 열러 자라면 혈과 기가 허하다.
欲嘔而不嘔,脾胃虛也;
구토하려고 하여도 토하지 못함은 비위가 허함이다.
色赤焮腫,虛火之象也。
적색으로 화끈거리며 부음은 허화의 형상이다.
尚可治。
오히려 치료할 수 있었다.
遂與十全大補湯,加酒炒黃蘗、知母、五味、麥門及飲童便,飲食頓進,肌肉頓生。
십전대보탕을 투여하여 술로 볶은 황백, 지모, 오미자 맥문동과 동변을 마시면 음식이 갑자기 들어가며 기육이 갑자기 생긴다.
服至八劑,瘡口收如粟許。
8제까지 복용하면 창구가 좁쌀 모양으로 수렴한다.
又惑於人言,又服消毒藥二劑,以爲消餘毒,反發熱昏憒;
혹 사람 말에 의혹되며 또한 독을 소멸하는 약 2제를 복용하면 나머지 독을 소멸케 하며 반대로 발열하면서 혼미하고 심란해진다.
急進前藥,又二十餘州乃愈。
급하게 앞의 약을 진상하며 또한 20여주에 낫는다.

後兩目因作善事,一晝夜不睡,致勞發熱,似睡不睡,與前藥二劑,愈加發熱,飲食不進,惟飲熱湯。
뒤에 양쪽 눈으로 좋은 일을 하며 한 낮과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피로로 발열하며 자는듯하나 잠자지 못하고 앞의 약 2제를 투여하여 나은 뒤에 발열하면 음식을 먹지 못하니 오직 뜨거운 탕을 마신다.
後以前藥加附子一錢,二劑復愈。
뒤에 앞의 약에 부자 4g을 가미하여 2제면 다시 낫는다.

高秋官貞甫孟秋發背,色黯而硬,不痛不起,脈沉而細,四肢逆冷,急用大艾隔蒜灸三十餘壯,不痛;
높은 가을에 관리 정포 맹추에 발배가 되어 암색으로 단단하여 통증이 없고 일어나지 않고 침맥이면서 세맥이며 사지가 역랭하며 급하게 큰 쑥을 사용하여 마늘간격으로 뜸을
遂用艾如粟大者七壯,著肉灸,始知痛。
쑥을 좁쌀 크기로 7장을 뜨며 살뜨는 곳에 붙이면 비로소 통증을 안다.
與六君子湯二劑,每劑入附子二錢,不應;
육군자탕 2제를 투여하며 매번 약제에 부자 8g을 넣으니 반응이 없다.
後劑又加肉桂二錢,始應。
뒤 약제에 또한 육계 8g을 가미하여 비로소 반응한다.

石武選廉伯患發背,內服防風通聖散,外敷涼藥,汗出不止,飲食不進,且不寐,瘡盈尺,色黯而堅硬,按之不痛,氣息奄奄.
석무선렴백이 발배를 앓고 방풍통성산을 내복하며 외부로 찬약을 붙이며 땀이 나길 그치지 않으니 음식을 먹지 않고 또한 잠자지 않고 창이 1척을 채우면 색이 어둡고 단단하여 누르면 아프지 않고 숨이 곧 끊어지려고 하였다.
此陽氣已脫,脈息如無,急隔蒜灸一時許,背頓輕,四圍高不知痛,中央肉六寸許一塊,已死。
이는 양기가 이미 벗어나며 맥과 숨이 없는 듯하여 급하게 격산구를 2시간정도 뜨니 등이 갑자기 가벼워지며 사방 주위가 높아서 통증을 알지 못하니 중앙살이 6촌정도 한 덩어리가 져서 이미 죽었다.
服香砂六君子湯一劑,翌日復灸一次,痛處死血得解,令砭去。
향사육군자탕1제를 복용하니 다음날에 다시 한차례 뜸을 뜨니 통처가 사혈이 풀어져서 폄석으로 제거하였다.
予歸後,爲他醫所惑,未砭,其血復凝,又傅辛溫活血藥。
내가 돌아간 뒤에 다른 의사가 의혹하여 폄석을 하지 않으니 혈이 다시 엉겨서 또한 신온한 혈을 활발케 하는 약을 붙였다.
翌日,依予言砭之,出黑血二盞許。
다음날에 내 말을 믿고 폄석을 하여 흑색 피를 두잔정도 출혈케 했다.
彼云:背強頓去。以前藥加薑、桂服一鍾,即鼾睡,覺來肢體少健,但飲食仍不思,吞酸仍有,瘡仍不痛。
저들이 말하길 등이 뻣뻣하면 갑자기 없어졌다. 앞의 약에 건강, 육계를 가미하여 한종지를 복용하면 코를 골며 자며 깬 뒤에 지체가 조금 건강하며 다만 음식이 생각이 없으며 신물을 삼키며 창이 아프지 않다.
彼以爲陰毒乃如此。
저는 음독이 되어 이와 같이 된다.
予曰:此氣血虛極,寒邪淫於內,無陽營於患處,故肌肉死也,非陰毒。若陽氣一回,胃氣即甦,死肉即潰,可保無慮矣。
내가 말하길 이는 기와 혈이 허증이 지극하여 안에서 한사가 넘치며 환부에 양의 영위가 없으므로 기육이 죽으며 음독이 아니다. 만약 양기가 한번 회복하면서 위기가 깨어나며 죽은 살이 터지면 염려가 없음을 보장한다.
以前藥二劑,各加薑、桂、附子二錢服之,略進米飲,精神復舊,患處竟熱,脈略有力,此陽氣略回矣。
앞의 약 2제를 건강, 육계, 부자 8g을 가미하여 복용하니 대략 미음을 먹고 정과 신이 예전으로 회복하며 환부가 뜨겁다고 느껴지며 맥이 대략 힘이 있으니 양기가 대략 회복한다.
是日,他醫謂瘡瘍屬火證,況今暑令,乃敷芙蓉根等涼藥,即進粥二碗,服消毒藥,死肉即潰。
이 날에 다른 의사가 창양이 화증에 속한다고 하는데 하물며 지금은 더운 계절로 부용뿌리등의 찬약을 붙이면서 죽 2사발을 먹으면 독을 소멸하면 죽은 살이 곧 터진다.
予意芙蓉乃寒涼之藥,與脾胃何益?
내가 부용이 찬 약이라고 뜻하는데 비위에 어찌 유익이 있겠는가?
飲食即時而進?
음식이 즉시 먹을 수 있겠는가?
消毒乃辛散之劑,與陽氣何補?
독을 소멸하고 신미로 발산하는 약제는 양기에 어찌 보하겠는가?
死肉即時而潰?
죽은 살이 즉시 터지겠는가?
此蓋前桂、附之功至,而脾胃之氣復,故飲食進,陽氣旺,故死肉腐也。
이는 앞의 육계 부자의 공로가 지극하고 비위의 기가 회복하므로 음식을 먹고 양기가 왕성하므로 죽은 살이 썩는다.
苟虛寒人若內無辛熱回陽之藥,輒用寒涼攻毒之劑,豈可得生耶?
진실로 허한한 사람이 만약 안에 신열로 양기를 회복하는 약이 없으며 문득 한량하여 독을 공격하는 약제를 사용하니 어찌 살 수 있겠는가?
若以爲火令屬陽之證,內有熱而施辛溫補益之劑,豈不致死而反生耶?
만약 화령이 양증에 속하며 안에 열이 있어서 신온한 보익하는 약제를 시행하면 어찌 죽음에 이르러 반대로 살지 않겠는가?
殊不知此乃捨時從證之治法也。
이는 때를 버리고 증상을 따르는 치법임을 알지 못했겠는가?

一男子發背,膿始潰,腫未消,已十七日,脈微而靜。
한 남자가 발배가 있어서 농이 비로소 터지며 종기가 아직 소멸하지 않고 이미 17일로 미맥이면서 안정되었다.
予曰:膿毒未盡,脈先弱,此元氣虛,宜補之,否則後必生變。
내가 말하길 농독이 다하지 않고 맥이 먼저 약하니 이는 원기가 허함이니 의당 보해야 하며 아니면 뒤에 반드시 변증이 생긴다.
彼惑於人言,乃服敗毒藥,腐肉雖潰,瘡口不完。
저것이 사람 말에 의혹되어 패독약을 복용하며 썩은 살이 비록 무너지며 창구가 완전하지 않음을 치료한다.
忽腹中似痛,後去白垢,肛門裏急,復求治。
갑자기 배 속아 아픈 듯하며 뒤에 백색 때를 제거하며 항문으로 이급후중하여 다시 치료를 구했다.
予曰:此裏虛然也。非痢非毒,當溫補脾胃爲善。
내가 말하길 이는 속이 허약해서이다. 이질도 아니며 독도 아니니 의당 비위를 온보함이 최선이다.
因諸瘍醫皆以爲毒未盡,仍服敗毒藥而死。
여러 양의가 모두 독이 미진하다고 하여 패독약을 복용케 하니 죽게 되었다.

賀少參朝儀背胛患疽,大如豆粒,根畔木悶不腫,肉色如常。
하소참 조의가 등과 견갑에 저를 앓아서 크기가 콩알크기로 뿌리가 마비되어 답답하고 붓지 않고 살 색이 평상과 같았다.
予曰:此氣虛毒甚之證,雖用補劑,亦不能收斂。
내가 말하길 이는 기허로 독이 심한 증상이니 비록 보제를 사용하여도 또한 수렴하지 못한다.
先用活命飲二劑,背強少和;
먼저 활명음 2제를 사용하여도 등이 뻣뻣함이 조금 나아졌다.
又二劑,疽少赤;
또 2제만에 저가 조금 적색이 되었다.
用大補劑,瘡出黑血杯許,繼有鮮血,微有清膿。
대보제를 사용하니 창에서 흑색 피가 한 잔정도 나오니 계속하여 선혈이 나오며 약간 맑은 농이 있었다.
予曰,可見氣血虛極矣。
내가 말하길 기와 혈이 허증이 지극함을 알겠다
他醫以爲屬氣血有餘之證,密用攻毒藥一鍾,即嘔逆腹內陰冷而死。
다른 의사가 기혈이 유여한 증상으로 여겨서 비밀리에 독을 공격하는 약 한 종지를 사용하니 곧 구역하면서 배 속이 안이 차지면서 죽었다.

少司寇周玉巖背患疽在胛,已四日,瘡頭如粟,重如負石,堅硬不起,自以爲小恙,外敷涼藥,內服連翹消毒散,去後四次,形體倦怠,自汗盜汗,口乾不寐,請予治。
소사구 주옥암이 등에 저가 견갑에 있길 이미 4일로 창두가 좁쌀과 같고 무겁기가 돌을 짊어진 듯하여 단단하여 일어나지 못하니 스스로 작은 병으로 여겨서 찬 약을 외용으로 붙이며 안으로 연교소독음을 복용한지 4차례가 지나서 형체가 권태롭고 자한과 도한으로 입이 건조하며 잠을 자지 못하며 나에게 치료를 청하였다.
予曰:瘡不宜硬,色不宜黯。
내가 말하길 창이 단단하지 않아야 하고 색이 어둡지 않아야 하네.
公曰:初起時赤而軟,自用前二藥以致如此。
공이 말하길 초기에는 적색으로 연하나 스스로 앞의 두약을 사용하니 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予曰:凡瘡外如麻,內如瓜,毒結於內,非小患耳。
내가 말하길 창의 밖에 사과 같은 것은 안이 오이와 같고 독이 안에 결체하니 작은 질환이 아닙니다.
脈輕診似數,按之則微,未潰脈先弱,主後難斂。
가벼이 진맥하니 삭맥같으나 누르니 미맥이며 터지지 않는 맥이 먼저 약하니 주로 뒤에 창구가 수렴하기 어렵습니다.
因與鄉雅不能辭,遂隔蒜灸二十餘壯,乃知痛;
고을 아에서 사양치 않고 격산구를 20여장을 하여 통증을 알았다.
又十餘壯,背覺少和;
또한 10여장에 등이 약간 평화롭다고 느꼈다.
服六君子湯加黃芪、藿香、當歸、麻黃根、浮麥二劑,渴止汗少斂,瘡色仍黯堅硬;
육군자탕에 황기, 곽향, 당귀, 마황근, 부소맥을 가미한 2제로 갈증이 멎고 땀이 조금 거두어져서 창의 색이 어둡고 단단하였다.
又服辛溫活血之藥,瘡始起,渴止汗斂,所結死血得散。
신온하여 혈을 활발케 하는 약을 복용하니 창이 비로소 일어나며 결체한 사혈이 흩어지게 되었다.
良久,汗復出,口復乾。
한참 뒤에 땀이 다시 나며 입이 건조함을 회복하였다.
又服數劑,外皮雖潰,清膿尚未潰通,而內膿欲走別處,彼用藥圍之。
몇제를 복용하지 않고 외부 피부가 비록 터지나 맑은 농이 아직 터져 관통하지 않으며 안의 농이 다른 곳에 달리려고 하니 저것에 약을 사용하여 둘러쌌다.
予曰:裏虛而膿不能潰於外,圍藥逼毒入內。
내가 말하길 이허증에 농이 밖으로 터지지 않으니 약을 둘러싸서 독을 핍박하여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至十二日,脈浮,按之如無,再用前藥二劑,加薑、桂服之即安寐。
20일에 이르러 부맥이면서 누르면 없는 듯하여 다시 앞의 약 2제를 사용하여 건강, 육계를 가미하여 복용하니 곧 편안해졌다.
又二日,脈忽脫,再與前藥,加附子七分,服二劑。
또한 2일에 맥이 갑자기 허탈하고 다시 앞의 약을 투여하여 부자 2.8g을 가미하여 2제를 복용했다.
公曰:背今日始屬吾也。
공이 발하길 등이 금일에 비로소 나에게 속한 듯하다.
形體亦健,頗有生意。
형체가 또한 건강하여 자못 살 뜻이 있었다.
因予先日有言難以收斂,更醫治。
내가 먼저에 수렴하기 어렵다고 하여 다른 의사가 치료케 했다.
乃雜用清熱解毒,及敷涼藥,遂致裏虛,元氣下陷,去後如痢,用治痢消毒藥而死。
잡다하게 청열하고 해독하는 약에다 찬 약을 붙여 사용하니 이허증에 이르러서 원기가 아래로 빠지니 탈락한 뒤에 이질이 더해져 이질을 치료하고 독을 소멸케 하는 약을 사용하여 죽게 되었다.
姜舉人發背,十日正,腐潰作渴,喜熱湯飲,此中氣虛,不能生津液而口乾,宜預補之,否則不能收斂。
강거인이 발배로 10일에 바로 썩어 떨어져 갈증이 생겨서 뜨거운 탕을 마시길 좋아하니 이는 중기가 허함이니 진액을 생성치 못하며 입이 건조하여 미리 보하려고 하니 아니면 수렴치 못했다.
後瘡口果不收。
뒤에 창구가 과연 수렴치 못했다.
猶以毒爲未盡,用敗毒藥兩劑,瘡口不完,清利腹痛,又服清涼之劑而死。
독이 미진하여 패독약 2제를 사용하니 창구가 완전치 않고 맑을 변을 하리하며 복통이 있어서 청량한 약제를 복용하니 죽었다.

王序班發背,元氣虛弱,用托裏藥而始起,用大補藥而始潰。
왕서반이 발배로 원기가 허약하여 탁리약을 사용하여 비로소 일어나니 크게 보하는 약을 사용하니 비로소 터졌다.
彼惑他議,敷涼藥,致腹內不和,裏急後重,去後如痢,大孔作痛。
저들이 의심하여 다른 논의를 하며 찬 약을 붙여서 배 안이 불화하게 되어 이급후중이 생겨서 제거된 뒤에 이질처럼 되며 큰 구멍에 통증이 생겼다.
予曰:此裏虛,非痢。
내가 말하길 이는 이허증이니 이질이 아니다.
仍用敗毒治痢藥而死。
패독하고 이질을 치료하는 약을 사용하니 죽었다.
凡瘡大潰之後,大便後有白膿,或止便白膿,或瀉痢,此腸胃氣虛也;
창이 크게 터진 뒤에 대변이 뒤에 백색 농이 있고, 혹은 대변의 백색 농이 중지하거나 혹은 설사와 이질이 있으니 이는 위장기가 허함이다.
裏急後重,血虛也。
이급후중은 혈허증이다.
若果痢,亦不可用清涼敗毒之藥。
만약 과연 이질이면 또한 청량하여 패독하는 약을 사용하지 못하겠는가?
況仲景先生云:治痢不止者當溫之;下痢腹痛急,當救裏,可與理中四逆附子輩。
하물며 장중경 선생이 말한 이질을 치료함에 그치지 않으면 의당 따뜻하게 해야 한다. 하리복통으로 급하면 이증을 구해야 하니 이중탕, 사역탕, 부자탕의 무리를 투여한다고 했다.
大孔痛,當溫之。
대공통은 의당 따뜻하게 해야 한다.
東垣先生治痢元氣陷下者,未嘗不用溫補之藥。
이동원선생은 이질이 원기가 하함함을 치료해야 하니 일찍이 온보하는 약을 사용하지 않음이 없었다.
然瘡膿潰既久,血氣既弱,不用溫補,吾不得而知也。
그러므로 창의 농이 터짐이 이미 오래되고 혈과 기가 이미 약하여 온보약을 사용치 않으면 내가 알 수 없다.

一男子年四十餘歲,發背未潰,即作渴,脈數腫高,色紫面赤,小便如膏,予以加減八味丸料加酒炒知母、黃蘗爲丸,每日空心并食前以童便送下百丸,用八珍湯加五味子、麥門冬、黃芪酒炒、知母、赤小豆食遠煎服,逐日又以童便代茶飲之,渴止瘡潰而愈。
한 남자가 40여세에 발배가 터지지 않고 곧 갈증이 생겨서 삭맥이면서 부종이 높고, 자색이면서 안면이 적색이면서 소변이 기름과 같고 내가 가감팔미환의 재료에 술로 볶은 지모, 황백을 환을 만들어, 매일 빈 속에 식전에 동변으로 백환을 연하하니 팔진탕에 오미자, 맥문동, 술로 볶은 황기, 지모, 적소두를 음식과 멀리 달여 복용하니 하루마다 또한 동변을 차대신 마시게 하니 갈증이 중지되고 창이 터져서 나았다.
吾治得生者此人耳。
내가 살 사람을 치료한 것이 이 사람 뿐이다.

留都機房紀姓者,背瘡,胃氣虛,用溫補藥而飲食進,大補藥而瘡腐愈。
유도기 방 기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배창과 위의 기가 허하여 온보약을 사용하여 음식을 먹게 하며 크게 보하는 약으로 창이 썩고 낫게 되었다.
後患腿瘡,予用養血化痰之劑,少止。
뒤에 대퇴창을 앓아서 내가 혈을 기르며 담을 변화케 하는 약제를 사용하여 조금 중지케 했다.
彼嫌功緩,他醫以爲濕熱。
그가 공이 느림을 싫어하여 다른 의사가 습열로 여겨 치료했다.
服麻黃左經湯一劑,汗出不止。
마황좌경탕 1제를 복용하니 땀이 나길 그치지 않았다.
予曰:必發痙而死。
내가 말하길 반드시 풍병이 발생하여 죽을 것입니다.
已而果然。
이미 과연 그러하였다.

一男子患背瘡,痛甚,服消毒藥愈熾,予爲隔蒜灸之而止,與仙方活命飲二劑頓退,更與托裏藥潰之而愈。
한 남자가 배창을 앓아서 통증이 심하여 독을 소멸하는 약을 복용하고 더욱 치성하여 내가 격산구방법으로 중지케 하니 선방활명음 2제를 돈복케 하여 다시 탁리약으로 터지게 하여 낫게 했다.

一男子背瘡已四日,瘡頭如黍,焮痛背重,脈沉實,與黃連內疏湯二劑少退,更與仙方活命飲二劑而消。
1남자가 배창이 이미 4일로 창두가 기장과 같고 화끈거리며 아프고 등이 무겁고 침실한 맥으로 황련내소탕 2제로 조금 쇠퇴하여 다시 선방활명음 2제를 투여하니 나았다.

一男子背瘡,焮腫作痛,脈浮數,與內托復煎散二劑少退,與仙方活命飲四劑痛止而潰,再與托裏藥而愈。
한 남자가 배창을 앓아서 화끈거리며 붓고 아프니 부삭맥으로 내탁부전산 2제를 투여하니 조금 물러나며 선방활명음 4제를 투여하니 통증이 멎고 터지니 다시 탁리약을 투여하여 낫게 하였다.
강희제 ( 康熙帝 ) 때의 진몽뢰 ( 陳夢雷 ) 가 시작한 것을 옹정제 ( 雍正帝 ) 때의 장정석 ( 蔣廷錫 ) 이 이어받아 1725 년에 완성
진몽뢰 (陳夢雷)는 중국 청나라 때 사람. 자(字)는 칙하(則霞), 또는 성재(省齋)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후(閩侯) 태생. 강희(康熙) 연간에 진사가 되어 편수(編修)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 무고를 당해 하옥(下獄)되고 유배되었다. 10여 년 후에 풀려났는데, 옹정(雍正) 초년(初年)에 다시 귀양을 갔으며, 귀양지에서 죽었다. 『도서집성·의부전록(圖書集成·醫部全錄)』 등의 편수를 주재하였다.
번역자 튼살 흉터를 치료하는 하루 두끼식사 창안자 이미지한의원 www.imagediet.co.kr 02-336-7100원장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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