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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의술명류열전4 507권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鄭榮
정영

按《宋史》趙自然傳:大中祥符中有鄭榮者,本禁軍,戌壁州還,夜遇神人謂:汝有道氣,勿火食。
송사 조자연전을 살펴보면 대중상부중에 정영이 있어서 금군에 본을 두고 벽주에 수자리가서 돌아오니, 야간에 신인을 만나서 말하길 당신은 도의 기운이 있으니 화식을 하지 마시오.
因授以醫術,救人。
그로 기인하여 의술을 받아서 사람을 구제하였다.
七年,賜名自清,度爲道士,居上清宮。
7년에 이름을 자청으로 하사받아 도사로 헤아려지니 상청궁에 거처하였다.
所傳藥能愈大風疾,民多求之,皆刺臂血和餅給焉。
전해지는 약이 대풍질을 치료하니 백성이 많이 그것으로 구제되니 모두 팔뚝을 찌르고, 피와 떡을 공급받았다.

   龐安時
방안시

按《宋史》本傳:龐安時,字安常,蘄州蘄水人。
송사 본전을 살펴보면 방안시는 자가 안상으로 기주 기수사람이다.
兒時能讀書,過目輒記。
아동일때에는 독서를 잘하여 눈으로 보면 곧 기억하였다.
父世醫也,授以脈訣,安時曰:是不足爲也。
아버지가 대대로 의사로 맥결을 받아서 방안시가 말하길 이는 부족합니다.
獨取黃帝、扁鵲之脈書治之。
홀로 황제, 편작의 맥서를 취하여 치료하였다.
未久,已能通其說,時出新意,辨詰不可屈,父大驚。
오래지 않아서 이미 그 학설을 통달하고 때로 새로운 뜻을 내니 변별하고 힐문하여도 굽히지 않아서 아버지가 크게 놀랐다.
時年猶未冠,已而病聵,乃益讀《靈樞》、《太素》、《甲乙》諸秘書。
약관이 되지 않는 시기에 이미 귀머거리병을 치료하고 영추, 태소, 갑을경의 여러 비밀스런 책을 독서했다.
凡經傳百家之涉其道者,靡不通貫。
경서와 전 제자백가의 방도를 섭렵하니 관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嘗曰:世所謂醫書,予皆見之,惟扁鵲之言深矣。
일찍이 말하길 세상에 의서를 말함을 나는 모두 그것을 보니, 오직 편작의 말이 심오하다.
蓋所謂《難經》者,扁鵲寓術於其書,而言之不詳,意者使後人自求之歟?
이른바 난경은 편작이 그 책에 의술을 붙이니 말이 상서롭지 않고 뜻은 후대 사람이 스스로 구한 것이 아닌가?
予之術蓋出於此,以之視淺深,決死生,若合符節。
나의 의술이 모두 이에서 나왔으니 그것을 얕고 깊음을 보면, 생사를 결정하니 부절처럼 부합된다.
且察脈之要,莫急於人迎寸口,是二脈陰陽相應,如兩引繩,陰陽均,則繩之大小等,故定陰陽於喉手,配覆溢於尺寸,寓九候於浮沉,分四溫於傷寒。
맥을 관찰하는 요점은 인영, 촌구보다 급함이 없으니, 두 맥이 음양이 상응함이 양쪽으로 줄을 당김과 같으니, 음과 양이 균등하면, 줄의 크기가 같으니 손으로 음과 양을 결정하니, 처과 촌이 엎어지고 넘침에 배치하면 부침에는 9후맥이니 상한병에서 사온을 구분한다.
此皆扁鵲略開其端,而予參以《內經》諸書,考究而得其說,審而用之,順而治之,病不得逃矣。
이는 모두 편작이 대략 그 끝을 열음이니 내가 내경의 여러 책을 참고하여 고찰하고 연구하여 학설을 얻으니, 살펴서 사용하고, 따라서 치료하니, 병이 도망가지 못한다.
又欲以術告後世,故著《難經辨》數萬言;
또한 의술로 후세에 고하려고 하여 난경변 수만말을 지었다.
觀草木之性,與五臟之宜,秩其職任,官其寒熱,班其奇偶,以療百疾,著《主對集》一卷;
본초의 약성을 보아 오장의 의당함과 함께 직분과 임무를 차례대로 하고, 한열을 관장하고 기방과 우방을 변별하여 모든 질병을 치료하여 주대집 1권을 지었다.
古今異宜,方術脫遺,備陰陽之變,補仲景論;
고대와 지금 의당함이 다르며 방술이 탈락되어 빠지니 음양의 변화에 대비하려고 장중경의 논의를 보충하였다.
藥有後出,古所未知,今不能辨,嘗試有功,不可遺也,作《本草補遺》。
약에 뒤로 나옴이 있어서 고대에 알지 못하고, 지금 변별하지 못하니 시험삼아 공로가 있어서 뺄 수 없으니 본초보유를 지었다.
爲人治病,率十愈八九。
다른 사람을 위해 병을 치료함에 대략 10에 8~9의 비율로 나았다.
踵門求診者,爲辟邸舍居之,親視飦 飦(죽 전; ⾷-총12획; zhān)
粥藥物,必愈而後遣;
문이 닿게 진룔르 구함에 집을 피하여 살고, 친한 사람이 죽과 약물을 보면 반드시 나은 뒤에 보냈다.
其不可爲者,必實告之,不復爲治。
치료할 수 없으면 반드시 실제로 고하며 다시 치료하지 않았다.
活人無數。
사람을 살림은 수도 없다.
病家持金帛來謝,不盡取也。
환자가 금과 비단을 가지고 사례하러 오면 다 취하지 않았다.
嘗詣舒之桐城,有民家婦孕將產七日而子不下,百術無所效。
일찍이 동성에 뜻을 펴서 민가의 부인과 임신부가 장차 7일출산일이 지나도 출산하지 않으니 모든 기술이 효과가 없었다.
安時之弟子李百全適在旁舍,邀安時往視之,才見即連呼不死,令其家人以湯溫其腰腹,自爲上下拊 拊(어루만질, 사랑하다 부; ⼿-총8획; fǔ)
摩,孕者覺腸胃微痛,呻吟間生一男子,其家驚喜而不知所以然。
방안시의 제자 이백전이 때에 곁의 집에 있어서 급하게 방안시에게 가서 보게 하니 겨우 보니 호흡을 연달아 하고 죽지 않아서 집안 사람에게 탕으로 허리와 배를 따뜻하게 하라고 하고, 스스로 상하로 안마하니 임신부가 위장이 약간 아픔을 느끼고, 신음하느 사이에 한 남자아이를 낳으니 집안이 놀라고 기뻐서 그렇게 한 이유를 몰랐다.
安時曰:兒已出胞,而一手誤執母腸,不復能脫,故非符藥所能爲。吾隔腹捫兒手所在,針其虎口,既痛即縮手,所以遽生,無他術也。
방안시가 말하길 아이가 이미 자궁을 나와서 한손으로 잘못 어머니의 장을 잡고, 다시 탈출하지 못하니, 그래서 약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배를 격에 두고 소아의 손이 있는 곳을 문지르며 호구를 자침하니 이미 통증으로 손을 움츠리니 그래서 급히 태어나며 다른 의술은 아닙니다.
取兒視之,右手虎口針痕存焉。
아이를 취해 보니 우측 호구혈에 침의 흔적이 존재하였다.
其妙如此。
그의 오묘함이 이와 같았다.
有問以華佗之事者,曰:術若是,非人所能爲也,其史之妄乎?
화타의 일을 질문하자 의술이 이와 같으니 다른 사람이 할 바가 아닌데 역사가 허망하겠는가?
年五十八而疾作,門人請自視脈,笑曰:
나이 58세에 질병이 생겨서 문인이 스스로 맥을 봄을 청하니 웃으면서 말했다.
吾察之審矣,且出入息亦脈也,今胃氣已絕,死矣!
내가 관찰하고 살피니 또한 출입의 숨 또한 맥이니 지금 위기가 이미 끊어져서 죽을 것이다.
遂屏卻藥餌,後數日,與客坐語而卒。
약과 식이를 물리치니 수일 뒤에 손님과 함께 앉아 말하다 죽었다.
按《續明道雜志》:蘄水縣,有高醫龐安時者,治疾無不愈,其處方用意,幾似古人,自言心解,初不從人授也。
속명도잡지를 살펴보면 기수현은 고명한 의사 방안시가 있어서 질병 치료에 낫지 않음이 없고, 처방과 뜻을 사용함이 고대 사람과 거의 비슷하니 스스로 마음으로 해석하고 초기에 다른사람의 받음이 없다고 말했다.
蘄有富家子竊出游,偶鄰人有鬬 鬬(만날 투; ⾾-총24획; dòu)
者,排動屋壁,富人子方驚懼,疾走出,惶惑突入市,市方陳刑尸,富人子走仆尸上,因大驚,到家發狂,性理遂錯,醫巫百方不能已。
기주에 부자집 아들이 몰래 나와 놀다 우연히 이웃 사람이 만남을 보고, 집벽의 움직임을 물리쳐 부자집 아들이 바로 놀라서 빨리 달려 나오니, 당혹감에 갑자기 시장에 들어가서 시장에 형벌받은 시체를 늘어놓으니 부자집 아들이 시체위를 달리다 넘어져서 크게 놀람으로 집에 도달하여 발광하여 성품과 이치가 착오가 나며, 의사와 무당이 백방으로도 낫게 하지 못했다.
龐爲劑藥,求得絞囚繩,燒爲灰以調藥,一劑而愈。
방안시가 약제로 구하여 죄수묶는 끈을 얻어서 태워 재를 약에 섞어서 한 제를 주니 나았다.
龐得他人藥,嘗之入口,即知此何物及其多少,不差也。
방안시가 다른 사람의 약을 얻어서 맛보고 입에 넣으니 어떤 약물이 이름을 아나 조금도 낫지 않았다.
按《東坡雜記》:蘄州龐安常,善醫而聵,與人語,書在紙,始能答。
동파잡기를 살펴보면 기주에 방안상은 의학을 잘하고 귀머거리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말하니 책은 종이에 있어서 비로소 대답하였다.
東坡笑曰:吾與君皆異人也,吾以手爲口,君以眼爲耳,非異人而何?
소동파가 말하길 나와 당신은 모두 기이한 사람이니 나는 손이 입이 되고, 그대는 눈이 귀가 되니 기이한 사람이 아니면 무엇인가?
按《書蕉》:龐安常,名安時,蘄水人,宋神哲間名醫也。
서초를 살펴보면 방안상은 안시의 이름이며 기수 사람으로 송나라 신종과 철종 사이의 명의이다.
於書無所不讀,而尤精於傷寒,妙得長沙遺旨。
책에선 읽지 않음이 없고 상한병에 더욱 정밀하여 오묘하게 장사태수 장중경의 유지를 얻었다.
性豪侈,每應人延請,必駕四巨舟,一聲伎,一廚傳,一賓客,一雜色工藝之人,日費不貲 貲(재물, 대속하다 자; ⾙-총12획; zī)

성품이 호걸과 사치하여서 매번 다른 사람이 청하면 반드시 수레 4개와 큰 배를 동원하니, 한 소리내는 기생과, 한쪽은 요리사와, 한쪽은 빈객과, 한쪽은 잡색의 공예하는 사람으로 하니 날마다 낭비하여 재물이 없었다.
按《仇池筆記》:龐安常爲醫,不忠於利,得善書古畫,喜輒不自勝。
구지필기를 살펴보면 방안상은 의사가 되어 이익에 충성되지 않고, 좋은 책과 고대의 그림을 얻으면 기뻐하며 문득 스스로 이기지 않았다.
九江胡道士頗得其術,與予用藥,無以酬之,爲作行草數紙而已,且告之曰:
구강호도사가 자못 의술을 얻어서 나에게 약을 사용하여 보수를 받지 않고 행초 몇 종이를 만들었을 뿐이니 또한 고하여 말했다.
此安常故事,不可廢也。
이는 방안상의 고사이니 폐기할 수 없다.
參寥子病,求醫於胡,自度無錢,且不善書畫,求予甚急,予戲之曰:
참료자가 병이 들어서 호의 의사에게 구하니 스스로 돈이 없음을 헤아리고 또한 글과 그림을 잘못하여 나에게 매우 급함을 구하니 내가 희롱하여 말했다.
子粲可皎徹之徒,何不下轉語作兩首詩乎?龐胡二君與吾輩遊,不日索我於枯魚之肆矣。
자찬은 교철의 무리이니 어찌 말을 돌려 양쪽 수시를 하지 않는가?
按《澹山雜識》:龐安時,蘄州蘄水人也。
담산잡식을 살펴보면 방안시는 기주 기수 사람이다.
隱於醫,四方之請者,日滿其門。
의사에 숨어서 사방에 청하니 날마다 그의 문이 그득하였다.
安時亦饒於田產,不汲汲於利,故其聲益高。
방안시가 또한 전산보다 배가 불러서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으니 그래서 명성이 더욱 높았다.
余嘗見其還自金陵,過池陽,先君命余往謁之,隨行四五大官舟,行李之盛,侔 侔(가지런할, 힘쓰다 모; ⼈-총8획; móu)
部使者。
내가 일찍이 금릉에서 돌아와 지양을 지나서 먼저 군이 나에게 배알하러 가라고 명령하여 사오대관주를 수행하여 오얏이 성하여 부사에게 힘쓰라고 했다.
一舟所載聲樂也,一舟輜重也,一舟廚傳也,一舟諸色技藝人,無不有也。
한 배에는 소리와 음악하는 무리를 싣고, 한배에는 무겁게 하고, 한 배에는 요리사를 싣고, 한 배에는 여러 기생의 기예인을 실으니 있지 않음이 없었다.
然其人自適,不肯入京。
사람이 지나다가 서울 들어가길 긍정치 않았다.
醫之妙,亦近世所無也。
의학에 오묘하여 또한 근세에 없다.

   單驤 驤(머리 들, 뛰어오르다 양; ⾺-총27획; xiāng)

단양

按《仇池筆記》:蜀人單驤者,舉進士不第,顧以醫聞。
구지필기에 살펴보면 초나라 사람인 단양은 진사에 과거봐서 급제하지 않자 의학을 돌아봤다.
其術雖本於《難經》、《素問》,而別出新意,往往巧發奇中,然未能十全也。
의술이 비록 난경과 소문에 근본하나 따로 새로운 뜻을 내어서 왕왕 기교가 기이하게 적중되어 십분 완전하지 않았다.
仁宗皇帝不豫,詔孫兆與驤入侍,有間,賞賚不貲。
인종 황제는 편치 않아서 손조와 단양을 불러 모시게 하니 사이에 상을 주고 선물하지 않았다.
已而大漸,二子皆坐誅,賴皇太后仁聖,察其非罪,坐廢 좌폐: 獲罪罷職. 白白廢棄不用
數年,今驤爲朝官而兆已死矣。
이미 매우 점차 되어 두 사람이 모두 앉아서 벌을 받으니 황태후가 인자하고 성스러움에 의뢰하여 죄가 없음을 살피게 하여 몇 년 폐기하니, 지금 단양은 조정관리가 되고 손조는 이미 죽었다.
予來黃州,鄰邑人龐安常者,亦以醫聞,其術大類驤,而加之以針術絕妙,然患聾,自不能愈,而愈人之病如神。
내가 황주에 와서 인근 고을 사람이 방안상으로 또한 의학으로 유명하니 의술이 크게 단양과 유사하고 또한 침구술이 지극히 오묘함을 더하니 그래서 이롱을 앓아도 스스로 낫게 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병은 귀신처럼 나았다.
驤、安常皆不以賄 賄(뇌물, 선물, 예물 회; ⾙-총13획; huì)
謝爲急,又頗博通古今,此所以過人也。
단양과 방안상은 모두 예물이 급하지 않고 또한 자못 고금에 박통하여 이는 그래서 의술이 다른 사람을 넘어섰다.
元豐五年三月,予偶患左手腫,安常一針而愈,聊 聊(귀 울, 의지하다, 힘입다 료{요}; ⽿-총11획; liáo)
爲記之。
원풍 5년 3월에 내가 우연히 좌측 손이 붓게 되어 방안상이 일침으로 낫게 하니 이에 힘입어서 기록한다.

   孫兆
손조

按《醫學入門》:孫兆,宋尚藥奉御丞。
의학입문을 살펴보면 손조는 송나라 상약봉어승이다.
有顯官耳鳴,公診之曰:心脈大盛,腎脈不能歸耳。
현관이 이명이 있어서 공이 진찰하고 말하니 심맥이 크게 성하니 신맥이 돌아가지 못할 뿐입니다.
以藥涼心,腎脈復歸,耳鳴立愈。
심장을 차게하는 약으로 신맥을 복귀시키니 이명이 곧 나았다.

   張立德子
장립덕자

按《東坡雜記》:眉山有穎臣者,長七尺,健飲啖,倜儻 倜(대범할 척; ⼈-총10획; tì)
儻(빼어날 당; ⼈-총22획; dǎng)
人也。
동파잡기를 살펴보면 미산에 영신이 있으니 키가 7척이고, 건강하게 먹고 마시니 주척사람이다.
忽得消渴疾,日飲水數斗,食倍常而數溺,服消渴藥而逾年疾日甚,自度必死,治棺衾,囑其子於人。
갑자기 소갈질병을 얻어서 날마다 물을 몇되를 마시니 음식이 보통의 배로 되어 자주 소변을 보고, 소갈약을 복용하여도 해를 건너서 질병이 날로 심해지니 스스로 반드시 죽는다고 헤아리길 관과 이불을 만들어 다른사람에게 자식을 부탁하였다.
蜀有良醫張立德之子,不記其名,爲診脈,笑曰:君幾誤死矣!
촉에 훌륭한 의사인 장립덕의 아들이 이름은 기록할 수 없는데 진맥하고 웃으면서 말하길 그대는 거의 잘못 죽게 되었습니다.
取麝香當門子以酒濡之,作十許丸,取枳枸子爲湯飲之,遂愈。
사향 당문자(알갱이로 된)것을 술로 적셔서 10여환을 만들어서 지구자를 탕으로 마시니 곧 나았다.
問其故。
그 이유를 물었다.
張生言消渴、消中皆脾衰而腎敗,土不能勝水,腎液 液이 浹(두루 미칠, 통하다 협; ⽔-총10획; jiā)
不上泝 泝(거슬러 올라갈, 향하다 소; ⽔-총8획; sù)
,乃成此疾。
장생이 소갈을 말하니 소모한 중에 모두 비가 쇠약하고 신이 패하니 토가 수를 이기지 못하고 신액이 위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니 이 질병을 생성하였다.
今診穎臣脈熱而腎且衰,當由果酒食過度,虛熱在脾,故飲食兼人而多飲水,水既多不得不多溺也,非消渴也。
지금 영신의 맥이 열하고 신 또한 쇠약하다고 진단되어 과일과 술과 음식을 과도하게 먹음에 연유하니 허열이 비에 있으므로 음식을 다른 사람의 배를 먹고, 물을 많이 마시니 물이 이미 많아 많이 빠지지 못하니 소갈이 아닙니다.
麝香能敗酒,瓜果近輒不實。
사향은 술을 패하게 하며 참외와 과일은 가까이 가면 열매 맺지 못합니다.
而枳枸亦能勝酒,屋外有此木,屋中釀酒不熟;
지구는 또한 술을 이기며 집 밖에 이 나무가 있으면 집 속에 양주가 익지 않습니다.
以其木爲屋,其下亦不可釀酒。
그 나무로 집을 하면, 그 아래 또한 술을 빚지 않게 합니다.
故以此二物爲藥,以去酒果之毒也。
그래서 이 두 물건을 약으로 삼으니 술과 과일의 독을 제거합니다.
강희제 ( 康熙帝 ) 때의 진몽뢰 ( 陳夢雷 ) 가 시작한 것을 옹정제 ( 雍正帝 ) 때의 장정석 ( 蔣廷錫 ) 이 이어받아 1725 년에 완성
진몽뢰 (陳夢雷)는 중국 청나라 때 사람. 자(字)는 칙하(則霞), 또는 성재(省齋)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후(閩侯) 태생. 강희(康熙) 연간에 진사가 되어 편수(編修)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 무고를 당해 하옥(下獄)되고 유배되었다. 10여 년 후에 풀려났는데, 옹정(雍正) 초년(初年)에 다시 귀양을 갔으며, 귀양지에서 죽었다. 『도서집성·의부전록(圖書集成·醫部全錄)』 등의 편수를 주재하였다.
번역자 튼살 흉터를 치료하는 하루 두끼식사 창안자 이미지한의원 www.imagediet.co.kr 02-336-7100원장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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