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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의술명류열전5 508권 송나라2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王况
왕황

按《揮塵余話》:王况,字子亨,本士人,爲南京宋毅叔壻。
휘진여화를 살펴보면 왕황은 자가 자형이며 본사 사람으로 남경 송의숙의 사위이다.
毅叔既以醫名擅南北,况初傳其學未精,薄遊京師,甚悽然。
송의숙은 이미 의사로 유명하여 남북에 맘대로 하여, 왕황은 초기에 학문을 전하여도 정밀하지 않고 엷게 경사에 유학하여 매우 슬픈듯하였다.
會鹽法忽變,有大賈覩揭示,失驚吐舌,遂不能復入,經旬食不下咽,尩 尩(절름발이, 곱사등이 왕; ⼪-총8획; wāng)
羸日甚。
회염법이 갑자기 변하고 큰 장사치가 게시를 보니 놀라 토설하여 혀를 다시 넣지 못하니 10일이 지나도 음식을 연하하지 못하니 곱사등이로 파리함에 날로 심해졌다.
國醫不能療,其家憂懼,牓於市曰:
나라의 의사가 치료하지 못하고 집에서 근심하고 두려워하니 시장에 방을 하여 말했다.
有治之者,當以千萬爲謝。
그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천만으로써 사례하겠습니다.
况利其所售之厚,姑往應其求。
왕황은 이익이 장사치에게 두터워서 가서 구함을 응하였다.
既見賈之狀,忽發笑不能制,心以謂未易措手也。
이미 장사치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생겨서 억제하지 못하니 마음이 쉽지 않게 손을 쓰게 되었다.
其家人怪而詰之,况謬爲大言答之曰:
집 사람이 놀라서 그를 힐문하자 왕황은 잘못 큰 말로 대답하여 말했다.
所笑者,輦轂 轂(바퀴, 수레, 차량 곡; ⾞-총17획; gǔ,gū)
之大如此,乃無人治此小疾耳。
웃음은 천자의 수레가 이처럼크니 작은 질병을 치료할 사람이 없었을 뿐입니다.
語主人家曰:試取《針經》來!
주인집에 말하길 시험삼아 침경을 가지고 오시오.
况謾檢之,偶有穴與其疾似是者,况曰:
왕황이 속여 검사하니 우연히 경혈을 질병에 이와 비슷함이 있으니 왕황이 말했다.
爾家當勒狀與我,萬一不能活,則勿尤,我當爲若針之,可立效。
당신 집에 굴레 모양이 나와 같으니 만약 살아나지 않으면 탓하지 말고, 나는 응당 자침을 할 것이니 곧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主病者,不得已亦從之。
병을 주관함에 부득이하게 또한 그것을 따랐다.
急針舌之底,抽針之際,其人若委頓위돈: 힘이 빠짐. 기세가 꺾임
狀,頃刻舌遂伸縮如平時矣。
급하게 혀의 밑바닥을 자침하여 침을 뽑을 때에 그 사람이 힘이 빠진 모양으로 곧 혀가 평상시처럼 신축하였다.
其家大喜。
그 집안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였다.
謝之如約,又爲之延譽,自是翕然名動京師。
약속대로 그를 사례를 하고 또한 명예롭게 해주니 이로부터 화한 모양으로 경사에 이름이 발동하였다.
既小康,始得盡心肘後之書,卒有聞於世。
이미 조금 편안하고 비로소 마음을 다하여 위급한 책[주후방]을 하여 갑자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事之偶然有如此者。
일이 우연히 이와 같았다.
况後以醫得幸,宣和中爲朝請大夫,若《全生指迷論》一書,醫者多用之。
왕황은 뒤에 의사로써 요향을 얻어서 선화중에 조정에 대부로 청해져서 전생지미론 1책을 쓰니 의사가 많이 사용하였다.

   楊介
양개

按《古今醫統》:楊介,號吉老,泗州人,世醫,名聞四方。
고금의통을 살펴보면 양개는 호가 길로임 사주사람으로 대대로 의사하여 이름이 사방에 알려졌다.
有郡守病喉癰成流注,久不愈,召介治。
군수가 후옹병으로 유주가 생성하여 오래되어도 낫지 않아서 양개를 불러 치료케 했다.
知其嗜食所致,惟與生薑一味啖之,食至一斤,始知辛辣而癰愈。
좋아하는 것을 알고 오직 생강 1약미만으로 먹게 하여 600g정도 먹게 되니 비로소 신랄함을 알고 후옹이 나았다.
守異而問之,答曰:
이상하여 질문하니 양개가 대답하였다.
公好食鷦鷯 鷦(뱁새, 황작 초; ⿃-총23획; jiāo)
鷯(굴뚝새, 메추라기 료{요}; ⿃-총23획; liáo,liào)
,鷦鷯好食半夏,遺毒於喉間,非薑無以釋半夏之毒,用之遂愈。
공이 굴뚝새를 먹어서 굴뚝새는 반하를 잘 먹으니 독을 후두 사이에 남겨서 생강이 아니면 반하의 독을 풀지 못하니 사용하면 곧 낫습니다.
宋徽宗嘗苦脾疾,諸醫用理中湯不效,介以冰煎服而愈。
송나라 휘종이 일찍이 비질병으로 고생하니 여러 의사가 이중탕을 사용하여도 효과가 없자 양개가 얼음을 달여 복용시키니 나았다.
著《傷寒論脈訣》。
양개는 상한론맥결을 저술하였다.
按《春渚紀聞》:有名士爲泗倅 倅(백 사람 졸{원음(原音);채}{버금 쉬}; ⼈-총10획; cuì)
者,臥病既久,其子不慧。
춘저기문을 살펴보면 이름난 선비가 사졸이 되어서 병으로 눕길 이미 오래되어 자식이 지혜가 없었다.
郡有太醫生楊介,名醫也,適自都下還,衆令其子謁之,且約介就居第診視。
군에 태의생 양개가 있어서 명의로 도읍으로부터 다시 와서 여러 사람이 자식으로 하여금 배알하게 하니 또한 양개와 약속하길 진찰하고 보도록 했다.
介亦謙退,謂之曰:聞尊君服藥,且更數醫矣,豈小人能盡其藝耶?
양개가 또한 겸손하게 물러나서 말하길 존귀한 그대가 약을 복용하고 또한 몇 의사를 바꾸었다고 하니 어찌 소인이 의술을 다하겠습니까?
其子曰:大人疾勢雖淹久,幸左右一顧,且作死馬醫也。
자식이 말하길 대인의 질병의 세력이 비록 오래갔으나 다행이 좌우를 한번 돌아보니 또한 죽은 말 의사를 만들었습니다.
聞者無不絕倒。
듣는 사람이 끊어져 넘어지지 않음이 없었다.

   鄧仲霄
등중소

按《永豐縣志》:鄧仲霄,西門葛溪橋人,原係河南開封祥符籍。
영풍현지를 살펴보니 등중소는 서문갈계교 사람이니 원래 하남개봉상부적에 관계한다.
宋宣和年間及第,授翰林,陞太子贊善,通醫術,冶太子宮妃疾,皆有效驗。
송나라 선화년에 급제하여 한림을 받아서 태자찬선에 올라서 의술에 능통하여 태자궁비의 질병을 치료하여 모두 효험이 있었다.
敕授太醫院使,俾統天下郡州縣市村鎮之醫。
태의원사에 제수받아서 천하의 군주현시촌진의 의사를 거느렸다.
文天祥贊曰:董氏業醫一偏,鄧氏儒醫兩全。本來仁心一點,便是太極一丸。噫!肇統先哲,垂範後賢。種德皆春意,休說杏林仙。
문천상이 찬미하여 말하길 동씨는 의업을 치우쳐하여 등씨는 유의로 양쪽을 온전히 하였다. 본래 어진 마음은 한 점으로 곧 태극의 한 환이다. 아아! 선대 철인에 비롯하니 뒤의 현인에 본보기를 드리웠다. 덕을 파종하면 모두 봄의 뜻인 행림신선이라고 말한다.
後從隆佑孟后,由贛 贛(줄, 하사하다 공; ⾙-총24획; gàn,gǎn,gòng)
過永豐,始居此焉。
뒤에 융우맹후를 따라서 영풍을 지나니 비로소 이에 기거하였다.

   金湯二嬰女
금탕이영녀

按《永豐縣志》:宋宣和二年正月甲子,長安金湯二姓,皆產一嬰女,五日能言,七日能書,手錄《女科醫方》一卷,時以爲異。
영풍현지를 살펴보면 송나라 선화 2년 정월 갑자에 장안 금씨 탕씨 두 성이 모두 한 어린 여자를 출산하여 5일에 말하고, 7일에 글을 하며, 손으로 여과의방 1권을 기록하니 그 때 기이함이 있었다.
聞於朝,欽宗皇帝召至宮中,問其故,嬰女對曰:
조정에 소문이 들려서 흠종 황제가 궁중까지 부르며 그 연고를 질문하니 어린 여자아이가 대답하였다.
世人之疾,莫甚於婦人;婦人之疾,莫甚於產厄。上帝不忍,命我救之,故編醫方,以傳於世。
세상사람의 질병은 부인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부인의 질병은 출산의 흉액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상제가 참지 못하시고 나에게 명령하여 구하도록 하므로 의방을 편찬하여 세상에 전하려고 합니다.
帝嘆悅,錄其方授孟太后,厚賜而遣之。
황제가 한탄하며 기뻐하여 처방을 기록하여 맹태후에게 주고 두터이 하사하여 보냈다.
踰七月,二女俱亡,事聞復厚恤其家。
7월이 넘자 2아이가 모두 없어져서 일에는 다시 그 집안을 두터이 긍휼했다고 한다.
及靖康改元,欽宗北狩,孟太后間關避難,出其方以濟人,無不效驗。
정강개원에 흠종이 북쪽에 수렵갈 때 맹태후가 관에서 피난하여 처방을 내서 사람을 구제하니 효험이 없음이 없었다.
時湯執中、金吉甫皆以醫官扈駕,遂家永豐。
때로 탕집중, 금길보가 모두 의관으로 어가를 호위하여 영풍을 집으로 하였다.
今豐邑金湯二姓女科,蓋本於此。
풍읍의 금씨와 탕씨 두 성의 여과는 이에 근본한다.
周必大虞集皆有題跋其卷。
주필대는 대우집에서 모두 그 권을 발제로 하였다.

   張明德
장명덕

按《山西通志》:張明德,字顯道,襄陵道者,性不喜華麗,精於醫,常施於人,而尤急窮困,故遠邇求者無虛。
산서통지를 살펴보면 장명덕은 자가 현도이며 양릉도이며 성품이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의학에 정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항상 베풀어서 더욱 곤궁함을 급하게 하여 멀고 가깝게 구하는 사람이 빈 틈이 없었다.
太原提刑種師道來求醫,隨診授藥即愈。
대원에 제형종 사도가 의학을 구하러 오니 진료를 따라서 약을 주니 곧 나았다.
師道悅,遂以朝廷所降妙應大師敕旨與之,以酬其勞。
사도가 기뻐하며, 조정에 오묘한 대사가 하강하여 교지를 내려 수여하여 노고에 보답하였다.

   朱肱
주굉

按《古今醫統》:朱肱,號無求子,吳興人,善醫,尤邃 邃(깊을, 심오하다 수; ⾡-총18획; suì)
於傷寒,潛心數十年,窮經義之要,成《活人書》奏進道君,朝授奉議郎醫學博士。
고금의통을 살펴보면 주굉은 호가 무구자로 오흥 사람이며 의학을 잘하고 사한병에 더욱 심오하고 마음을 잠기길 수십년 하여 경전 뜻의 중요함을 다하여 활인서를 생성하여, 상주하여 임금에게 말하니 조정이 봉의낭의학박사를 수여하였다.
按《醫學入門》:無求子,官奉議,深於傷寒,著《活人書》。
의학입문을 살펴보면 무구자는 관직이 봉의로 상한에 심오하여 활인서를 지었다.
治南陽太守疾,時醫用小柴胡散,連進三服,胷滿。
남양태수 질병을 치료함에 시의가 소시호산을 사용하여 연달아 3번 복용케 하나 가슴이 그득하였다.
公曰:宜煎汁,乃能入經絡,攻病取快。今爲散,滯膈上,宜乎作滿。
공이 말하길 달인 즙으로 경락에 들어가게 하여 병을 공격하면 경쾌할 것입니다. 지금 산제로 횡격막 위가 정체하니 창만이 생긴다.
因煮二劑與之,頓安。
2제를 달여 투여하니 갑자기 편안해진다.

   任元受
임원수

按《老學菴筆記》:任盡言,字元受,事母盡孝。
노학엄필기를 살펴보면 임진언은 자가 원수이며 어머니를 모심에 효성을 다하였다.
母老多疾病,未嘗離左右。
어머니가 나이들어 질병이 많아서 일찍이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元受自言:老母有疾之憂,或以飲食,或以燥濕,或以語話稍多,或以憂喜稍過,盡言皆朝暮候之,無毫髮之差,五臟六腑中,盡皆洞見曲折,不待切脈而知,故用藥必效,雖名醫不逮。
임원수가 스스로 말하길 노모가 질병의 근심이 있어서 혹은 음식을 먹고 혹은 습을 건조케 하며, 혹은 말로 조금 많이 하며, 혹은 근심과 기쁨을 조금 과다하게 하니 말을 다함에 모두 아침 저녁으로 살피니 털끝만큼의 차이가 없으며, 5장6부중에 모두 다 곡절을 통찰하여 보니 진맥을 하지 않으며, 아니 약을 사용함에 반드시 효과가 있으니 비록 명의라고 이르지 않는다.
張魏公作都督,欲辟之入幕,元受力辭曰:
장위공이 도독이 되어서 피하려고 막에 들어가니 임원수가 힘을 받아 말하였다.
盡言方養親,使得一神丹,可以長年。必持以遺老母不以獻公也,况能舍母而與公軍事耶?
임진언은 어버이를 기름에 일신단을 얻어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노모를 남겨 공에 헌납할 수 없는데 하물며 어머니를 버리고 공과 더불어 군사를 하겠습니까?
魏公太息而許之。
위공은 한숨쉬며 그것을 허락하였다.

   李惟熙
이유희

按《東坡志林》:舒州有醫人李惟熙者,爲人清妙,善論物理,云:
동파지림을 살펴보면 서주에 의사 이유희가 있어서 사람이 청묘하여 잘 물리를 논의하여 말했다.
菱 菱(마름, 모나다 릉{능}; ⾋-총12획; líng)
芡皆水物,菱寒而芡暖者,菱開花背日,芡開花向日故也。
마름과 가시연밥이 물의 물건이니 마름은 차고 가시연밥은 따뜻하니 마름은 개화할 때 태양을 등지고, 가시연밥은 개화할 때 해를 향하기 때문이다.
又云:桃杏花雙仁輒殺人者,其花本五出,六出必雙仁。
또한 말하길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쌍인으로 문득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꽃이 본래 5으로 나오는데 6으로 나오면 반드시 쌍인이 된다.
舊說草木花皆五出,惟梔子與雪花六出,此殆陰陽之理。
예전 말에 초목의 꽃이 모두 5으로 나오는데 치자와 설화는 6으로 나오니 이는 음양의 이치이다.
今桃杏六出雙仁皆殺人者,失常故也。
지금 복숭아와 살구가 쌍인이 나옴은 사람을 죽이니 일상을 잃었기 때문이다.
木果之蠹者必不沙爛,沙爛者必不蠹而能浮,不浮者亦殺人。
모과가 좀먹으면 반드시 모래처럼 문드러지지 않으니 사란은 반드시 좀먹지 않고 뜰 수 있으니 뜨지 않으면 또한 사람을 죽인다.
余嘗考其理,既沙爛矣,則不能蘊蓄而生蟲;
내가 일찍이 그 이치를 살펴보면 이미 사란되면 쌓아 저장하지 못하고 벌레게 생긴다.
瓜至甘而不蠹者,以其沙爛也。
참외가 달게되면 좀먹지 않으니 사람이 되는 까닭이다.
此雖末事,亦理有不可欺者。
이는 비록 끝의 일이나 또한 이치가 속일 수 없다.

   陸曮 曮(해가 돌, 태양이 운행하다 엄; ⽇-총24획; yǎn)

육엄

按《船窻夜話》:陸曮,奉化人,以醫術行於時。
선창야화를 살펴보면 육엄은 봉화사람이며 의술이 당시에 유행하였다.
新昌徐氏婦病產,不遠二百里輿致之,及門,婦已死,但胷堂間猶微熱,陸入視之曰:
신창 서씨가 부인병으로 출산하니, 200리를 멀다고 하지 않고 수레로 이르니, 문에 다다르니 부인이 이미 죽어서 다만 흉당사이에 약간 열이 있어서 육엄이 들어가 보고 말했다.
此血悶也,能捐 捐(버릴, 없애다, 주다, 바치다 연; ⼿-총10획; juān)
紅花數十斤,則可以活。
이는 혈민이니 홍화 수십근을 따야 살 수 있다.
主人亟購如數,乃爲大鍋以煮,候湯沸,遂以三木桶盛湯於中,取牕 牕(창 창; ⽚-총15획; chuāng)
格籍婦人寢其上,湯氣微又進之,有頃,婦人指動,半日遂甦。
주인이 빨리 수대로 구매하여 큰 솥에 달여서 탕이 끓길 기다려서 3나무통으로 중간에 탕을 담아서 창에 이르러 부인의 침구 위에 두어 탕의 기운이 약간 있을때 또 진상하여 한참 뒤에 부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반일에 드디어 깨어났다.
蓋以紅花能活血故也。
홍화는 혈을 활발하게 하기 때문이다.
강희제 ( 康熙帝 ) 때의 진몽뢰 ( 陳夢雷 ) 가 시작한 것을 옹정제 ( 雍正帝 ) 때의 장정석 ( 蔣廷錫 ) 이 이어받아 1725 년에 완성
진몽뢰 (陳夢雷)는 중국 청나라 때 사람. 자(字)는 칙하(則霞), 또는 성재(省齋)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후(閩侯) 태생. 강희(康熙) 연간에 진사가 되어 편수(編修)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 무고를 당해 하옥(下獄)되고 유배되었다. 10여 년 후에 풀려났는데, 옹정(雍正) 초년(初年)에 다시 귀양을 갔으며, 귀양지에서 죽었다. 『도서집성·의부전록(圖書集成·醫部全錄)』 등의 편수를 주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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