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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의술명류열전9 512권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王金
왕금

按《開封府志》:王金,字芝山,陝西西安人。
개봉부지를 살펴보면 왕금은 자가 지산이며 협서 서안 사람이다.
年十七,遇道人墮水,救歸,敬事之。
17세에 도인이 물에 빠진 것을 만나서 구해주고 돌아가니 공경하면서 그를 섬겼다.
已,道人携入終南,授以秘術,試輒驗。
이미 도인이 그와 종남산에 들어가니 비전된 의술을 전수하니 시험삼아 하니 문득 효과가 있었다.
時屬世廟好方伎,金以白衣召見,爲言三元大丹,稱旨,與陶仲文、邵元節并膺榮寵,歷官太常,出入禁闥 금달: 궁중(宮中)의 합문(闔門)
二十年。
때에 세묘가 방기를 좋아하여 왕금이 백색 옷으로 봐서 알현하고 삼원대단을 말하여 뜻을 칭하니 도중문, 소원절과 응영총과 함께 태상을 오래 관직을 하며, 20년간 궁중을 출입하였다.
世廟賓天,廷議金等進藥不謹,論刑,新鄭高文襄公再疏申雪,得減戍閩海。
세묘 승하함에 정의금등이 약을 진상하였으나 삼가지 않아서 형벌을 의논하니 신정고 문양공이 다시 씻고자 청원하니 감량되어 민 바다에 수자리를 갔다.
後數年歸,依文襄以居,遂爲鄭人。
수년뒤에 돌아와서 문양에 의거하여 살고 정 사람이 되었다.
李空同與交厚,贈以芝山子詞云。
이공동과 더불어 두텁게 교유하여 지산자란 말을 주었다고 한다.
其子繼懷亦精醫藥。
자식인 계회 또한 의약에 정통하였다.

   沈惠
심혜

按《松江府志》:沈惠,字民濟,華亭人。
송강부지를 살펴보면 심혜는 자가 민제로 화정사람이다.
幼得異傳,爲小兒醫,能起死者。
어려서 기이한 전수를 얻어서 소아의가 되니 죽은 사람을 살려내었다.
嘗從浦南歸,聞岸上哭聲甚悲,問知某氏盛僅一子,自塾中歸,暴絕。
일찍이 포를 따라서 남쪽으로 돌아가니 강어귀에 곡하는 소리가 매우 슬프게 들리니 모씨의 겨우 장성한 한 자식이 돌아오다가 갑자기 절명하였다.
惠走視,其胷次尚溫,作湯劑灌之,遂甦。
심혜가 달려가서 보니 흉부가 곧 따뜻하니 탕을 만들어서 약제를 들이 부으니 곧 깨어났다.
有富家子患痘危劇,已治木矣,藥之而愈,取其棺以施貧兒。
부자집 아들이 두진으로 위급하여 나무로 관을 만드려고 하니 투약하여 낫게 하니 관을 취하여 가난한 아이에게 베풀었다.
惠以小兒醫多秘其書不傳,乃覃思博考,著書九種行世,詳見《藝文志》,學者以爲津梁 진량: 1, 나루와 다리. 2, [비유] 교량적인[안내] 역할을 하는 사물[방법].

심혜는 소아의로 많이 책을 숨겨서 전수하지 않으니 큰 생각과 넓은 사고로 저서 9종류가 세상에 행해지니 자세한 것은 예문지에 나타나니 학자가 교량적인 사물로 여겼다.
有老媼善治疳,惠拜受其方,媼亡,爲治後事。
늙은 할머니가 감질을 잘 치료하니 심혜가 절하여 처방을 받으니 할머니가 죽고 후사를 다스렸다.
惠爲人謹厚謙下,無貴賤貧富,必盡其心力,立身有繩檢。
심혜는 사람됨이 삼가고 두텁고 겸손하니 빈부귀천이 없어 모두 마음과 힘을 다하니 입신함에 기준이 있었다.
郡守子疾,惠入視,夫人從屏後告以病所由,惠若不聞,守訝之,對曰:
군수가 아들의 질병으로 심혜를 들어와 보게 하니 부인이 병풍뒤에서 병의 연유를 고하니 심혜가 듣지 않는 듯하다 의아해 하면서 대답했다.
夫人自向明府 명부: 수령으로 주석의 어른을 말함
(1) 명법(明法)을 간직하여 두는 곳.
(2) 태수(太守), 현령(縣令)을 이름.

言耳。
부인은 명부[태수]를 향해서 말할뿐입니다.
其以禮自處如此。
예로써 자처함이 이와 같았다.
晚自號虛明山人,徐文貞階有詩贈之。
만년에 허명산인이라고 부르니 서문정계가 시를 주었다.
臨終賦詩而逝。
임종에 시부를 보냈다.
同時有王節之,與惠并稱,兩人相得甚歡,遇有疑疾,必相質正。
동시에 왕절지가 있어서 심혜와 함께 칭해지니 두 사람이 서로 매우 기뻐하여 의심되는 질병을 만나면 반드시 서로 질문하였다.
節之子一鳳、二鵬,皆名醫。
절지의 아들인 왕일봉, 왕이붕은 모두 명의이다.
一鵬自有傳。
왕일붕은 스스로 전수함이 있다.

   張鶴溪
장학계

按《松江府志》:張鶴溪,忘其名,嘉靖中以醫名,善療奇疾。
송강부지를 살펴보면 장학계는 이름은 잊었지만 가정에 의사로 유명하여 잘 기이한 질병을 치료한다.
御史包節母,年六十七,暴中氣絕,積日不蘇,羣醫畢集,皆曰:
어사 포절의 어머니가 나이 67세로 갑자기 기절하여 날마다 깨어나지 않아서 여러 의사가 다 모아서 모두 말했다.
風中臟腑不可治。
풍사가 장부에 적중하여 치료할 수 없다.
鶴溪獨曰,此氣虛挾痰,可下人參劑,七日當甦,甦能言鬼神事。
장학계가 홀로 말하길 이는 기허에 담을 끼니 인삼제를 투하할 수 있고, 7일에 응당 깨어나니 깨어나면 귀신의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衆皆笑之。
여러 의사가 모두 그를 비웃었다.
既而和劑以進,如期乃寤,道鬼神事甚詳。
이미 화제를 진상하여 기간처럼 깨어나니 귀신의 일을 매우 자세하게 말했다.
衆醫始口噤走。
여러 의사가 비로소 입을 벌리지 못하고 도망하였다.

   龔信 【 龔廷賢】
공신 공정현

按《金谿縣志》,龔信,十一都下澌 澌(다할, 없어지다, 목쉰 소리 시; ⽔-총15획; sī)
里人,任太醫院,著《古今醫鑑》,併《雲林醫彀 彀(당길, 활을 쏘다 구; ⼸-총13획; gōu)
》。
금계현지를 살펴보면 공신은 11도하시리 사람이며 태의원에 임명되어 고금의감과 운림의구를 지었다.
子廷賢,著《萬病回春》。
아들인 공정현은 만병회춘을 지었다.

   王溥 溥(넓을, 광대하다 부; ⽔-총13획; pǔ)

왕부

按《觀城縣志》:王溥,邑之名醫,偉貌修髯,望之若仙,通異人授脈訣,用藥隨證輒效,不取酬,救濟甚衆。
관성현지를 살펴보면 왕부는 읍의 명의로 위엄있는 모습과 수염이 있어서 바라보면 신선과 같고, 기이한 사람과 통하여 맥결을 전수받으니 약을 사용함에 증상에 따라서 곧 효과가 있으니 보수를 취하지 않고 구제함이 매우 많았다.
嘉靖間,御史熊按東郡有疾,召問,對曰:
가정 사이에 어사 웅이 동군을 살펴보니 질병이 있어서 불러 물으니 대답하였다.
安神定志,不藥而愈。
정신을 안정시키며 뜻을 편안히 하면 약을 쓰지 않고 낫습니다.
熊深器重 기중: 크게 될 인물로 보아 그의 재주와 기량을 소중히 여김
焉。
웅이 매우 그를 그릇이 소중하다고 여겼다.
年踰八十,健行如飛,至九十七而卒。
나이가 80을 넘어서 나는 듯이 건강학 다니니 97세에 이르러서 죽었다.

   李秋
이추

按《南昌府志》:李秋,字思杏,南昌人,精岐黃之術。
남창부지를 살펴보면 이추는 자가 사행이며 남창 사람으로 기백과 황제의 의술에 정통하였다.
時寧獻王有《庚辛玉冊》,宗人李時珍有《本草綱目》,皆鏤板 누판: 판목(板木)에 글씨나 그림 등(等)을 새김
江右,秋購得其書,晨夕研究,用藥恒出意表,遂以醫名當代。
영헌왕이 경신옥책이 있어서 종친인 이시진이 본초강목이 있어서 모두 강 우측에 있으니 이추가 구대하여 책을 얻엇 새벽부터 저녁까지 연구하여 약을 사용함에 항상 의표를 내니 의사로 당대에 유명하였다.
爲人坦直樂易,藝愈高而接物愈謙,卑以自牧,兩與鄉飲,知府給以篤行善士之扁,年九十卒。
사람이 평탄하고 곧아서 즐기고 편안하여 의술이 더욱 높고 물건에 접하면 더욱 스스로 마소를 치는 사람처럼 겸손하니 양쪽에 고을에서 마시니 부에서 독실한 행실과 착한 선비를 아니 나이가 90에 죽었다.
親朋至今誦說不替。
친한 친구가 지금까지 말을 암송함을 바꾸지 않는다.

   李守欽
이수흠

按《氾水縣志》:李守欽,號肅菴。
범수현지를 살펴보면 이수흠은 호가 숙암이다.
聰明善悟,讀書損神,病將危,得蜀醫醫而愈之,即北面受其業。
총명하여 잘 깨달으니 독서하여 정신을 손상시키면 병이 장차 위급할 때 촉의를 얻어 치료하여 낫게 하니 북면하여 의업을 받았다.
走峨眉,邂逅異人,授岐伯要旨。
아미산을 가서 기이한 사람을 만나서 기백과 황제의 의학의 요지를 받았다.
歸從黃冠遊,尤精太素脈理,又能預知人事遠近,活者不可勝數。
돌아와 황관에서 노니 더욱 태소맥리를 정밀하게 하고, 또한 사람 일의 원근을 미리 아니 산 사람을 이루 다 세지 못한다.
諸王臺省,咸敬禮之。
여러 왕이 대에서 살피니 모두 공경하여 기를 예우하였다.
徙居榮澤觀中,有客自河北來,星冠羽扇,守欽識其非常人,即謹遇之。
영택관중에 이사와서 살아서 손님이 하북에서부터 오니 별 관과 깃털 부채로 이수흠이 보통사람이 아님을 아니 삼가 그를 맞이하였다.
數日談論,皆世外事。
수일동안 담론하니 모두 세상 밖의 일이다.
守欽善對,客甚敬之,曰:先生我師也。
이수흠이 잘 대면하니 손님이 매우 그를 공경하며 선생은 나의 스승입니다.
又曰:三日後,羅主事過此,我當去也。
또한 말하길 3일뒤는 나주사가 이를 지나니 내가 응당 가야 합니다.
因題詩於壁而別。
벽에 시를 제시하고 이별하였다.
越三日,果羅主事自南而北,經於榮澤,爲黃河泛漲 漲(불을, 막다 창; ⽔-총14획; zhǎng)
所阻,棲遲觀中,偶見所題,驚曰:
3일 지나서 과연 나주사가 남쪽에서 북으로 가서 영택을 지나니 황하가 범람하여 팽장하여 막으니 지관에 머물러서 우연히 제목을 보고 놀라 말했다.
此吾世父之筆,緣何題此哉?
이는 내 세부의 붓이니 어떤 연유로 이런 제목이 있는가?
始知客爲羅念菴也。
비로소 손님이 나념암임을 알았다.
人由是謂守欽能識仙客,號爲洞元真人。
사람들이 이로부터 이수흠이 신선손님을 안다고 말하니 호를 동원진인이라고 했다.
壽九十有八。
98세까지 장수하였다.
所著有《方書一得》、《太素精要》諸書行於世。
저서는 방서일득, 태소정요가 있어서 여러 책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鄭文賢
정문현

按《雲夢縣志》:鄭文賢,不知何許人,第從李于鱗遊。
운몽현지를 살펴보면 정문현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나 제종 이우린과 교유하였다.
于鱗有送文賢游大梁序,稱許文賢。
이우린은 정문현에게 대량서문을 보내니 문현이라고 칭하였다.
于鱗不輕許可,其言必信。
이우린은 허가를 가볍게 하지 않으니 말이 반드시 믿음이 있었다.
其序云:鄭生者,名文賢,楚之雲夢人也。
서문에서 말하길 정생은 이름이 문현이며 초나라 운몽 사람이다.
少慕伯陽之術,往往談長生。
젊어서 백양의 기술을 사모하여 왕왕 장생법을 말했다.
自雲夢來關中三千里,持一囊藥耳。
운몽에서부터 관중 3천리를 오니 한 주머니약을 지니었을 뿐이었다.
所至逆旅,醫小兒即食其嫗,醫老即食其子弟,醫女即食其夫,度三千里如在里巷中矣。
나그네가 되어 소아를 치료하여 할머니를 먹이며 노인을 치료하면 그 자제를 먹이며 여자를 치료하면 남편을 먹이니 3천리를 지나길 마을에 있는 듯이 했다.
然不爲糈 糈(양식, 정미 서; ⽶-총15획; xǔ)
也,其來關中,庶幾望見能爲長生者焉。
그러나 양식은 관중에 와서 거의 보면 장생할 수 있었다.
余蓋苦病三十年於茲,言醫也,即未嘗見醫視脈如生者焉,豈其診書異,有他禁方耶?
내가 병으로 이에 30년을 고생하여 의사를 말함에 일찍이 산것처럼 맥을 보는 의사를 아직 못보니 어찌 진기한 책이 다른 금기한 방서가 있겠는가?
生又自言醫且五十年於此,手指之附人脈,多於握匕箸,咀片如丘陵,即未嘗不精神與病者通,長桑君豈實視見垣一方人哉?
생이 또한 의학을 이에 50년을 말하니 손가락을 사람의 맥에 붙여서 수저와 젓가락을 많이 쥐니 편을 구릉처럼 씹어서, 일찍이 정과 신이 병자와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장상군이 어찌 실제로 담장 밖의 사람을 보았겠는가?
不察見脈而治病,其礙豈啻垣一方?
맥을 살피지 않고 병을 치료함에 장애가 어찌 비단 담장만 하겠는가?
關中故多賢豪人,即如大中丞何某博物君子,亦言生矣。
관중에 그래서 현인과 호걸이 많으니 대중승 하모씨는 사물에 박식한 군자로 또한 정생을 말한다.
余又言秦越人來長安游時事,生未嘗不輒苦其術而隱之不得。
내가 또한 진월인이 장안에 와서 놀때에 정생이 일찍이 곧 의술로 고통하여 숨어도 얻지 못하였다.
屬余在告將歸,生亦欲遊大梁,關中自大中丞許大司徒劉以下,皆賦詩贈之,而余序其右方云。
내가 장차 돌아갈 것을 고하니 정생이 또한 대량에서 노니 관중에 대중승 허대사도 유씨 이하가 모두 시부를 그를 주니 내가 우측에 서문을 썼다.

   麻東輝
마동휘

按《東昌府志》:麻東輝,高唐人。
동창부지를 살펴보면 마동휘는 고당 사람이다.
嘉靖間以醫遊郡城,洞究古方書,善脈,士大夫爭迎致爲上客。
가정간에 의사가 군성에 노니 고방서를 통찰해 연구하고 맥을 잘하니 사대부가 다투어 맞이하여 상객으로 삼았다.
堂邑李通政久病,衆醫以爲不治。
당읍 이통정이 오랜 병이 있어서 여러 의사가 치료치 못했다.
東輝診曰:病得之心火鬱積,勿藥,第屏念三十日而愈。
마동휘가 진찰하길 병이 심화의 울적함을 얻어서 약이 없이 30일간 생각을 물리치면 낫습니다.
後如所言。
뒤에 말처럼 되었다.
臨清副使某病,召東輝診脈曰:
임청부사가 어떤 병이 있어서 마동휘를 불러 진맥하게 했다.
大人無恙,將惟其子之憂。
대인은 병이 없고 자식의 근심만 있습니다.
是時子在里中,急遣人歸視,危就牀褥數日矣,竟不起。
이 때 자식이 마을에 있어서 급하게 사람을 파견하여 돌아오게 해서 보니 의급하게 침상이불에 수일간 있어서 일어나지 못했다.
郡有貴介公子壯而負氣,以無病,故試東輝,呼曰:
군에 귀개공자가 건장하여 거만하고 병이 없어서 마동휘를 시험삼아 불렀다.
而善脈,其脈我!
진맥을 잘하니 나를 진맥해보게.
東輝診而驚曰:子病矣,奈何不治?
마동휘가 진맥하고 놀라며 말하길 그대는 병이니 어찌 치료하지 않습니까?
公子嘻曰:甚矣,醫之利於以不疾爲功也。我日兼數人之食而病乎?
공자가 웃으며 심하구나! 의사가 질병이 아님을 치료한 공로에 이익을 삼는구나! 내가 몇 사람분의 식사를 함께 먹어서 병이 되는가?
笑而揮之。
웃으면서 가라고 지시했다.
後月餘,竟以痰卒。
한달 뒤에 마침내 담병으로 죽었다.
高唐諸生某,試於提學,偕儕輩數人諧 諧(조화할, 잘 어울리다 해; ⾔-총16획; xié)이 원문에는 詣(이를, 도착하다 예; ⾔-총13획; yì)
東輝問脈,東輝次第診已,徐曰:
고당이 모씨가 제학을 시험하여 모두 동료 몇 사람이 마동휘가 와서 진맥하게 하여 마동휘가 순서대로 진맥을 끝내니 서씨가 말했다.
生且食廩,無奈剝膚之災,以憂目前。
태어나서 또한 녹봉을 먹으며 피부를 벗기는 재앙이 있으니 목전에 근심이 있다.
生喜而懼。
기쁨이 생기면서 두려웠다.
甫出門,會所讎擲瓦擊之中眉額幾死,試果第一。
문을 나서자 모인 원수 정와격이 눈썹과 이마를 맞아서 거의 죽을듯하여 시험삼아 과연 그러했다.
東輝好飲,不治生產,所得金帛,輒給酒家,老而彌甚。
마동휘가 마시길 좋아하여 생산을 다스리지 않고 금과 비단을 얻으면 술집에 곧 줘버리니 늙어서 더욱 심하였다.
里人有奇證,趨請東輝,雖在酩酊 酩(술 취할 명; ⾣-총13획; mǐng)
酊(술 취할 정; ⾣-총9획; dǐng,dīng)
中,所醫無不立愈者,里人以爲神。
마을 사람에 기묘한 증상이 있어서 달려서 마동휘에게 청하면 비록 술독에 있어도 의학에 곧 낫지 않음이 없으니 마을 사람이 그를 신으로 여겼다.
강희제 ( 康熙帝 ) 때의 진몽뢰 ( 陳夢雷 ) 가 시작한 것을 옹정제 ( 雍正帝 ) 때의 장정석 ( 蔣廷錫 ) 이 이어받아 1725 년에 완성
진몽뢰 (陳夢雷)는 중국 청나라 때 사람. 자(字)는 칙하(則霞), 또는 성재(省齋)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후(閩侯) 태생. 강희(康熙) 연간에 진사가 되어 편수(編修)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 무고를 당해 하옥(下獄)되고 유배되었다. 10여 년 후에 풀려났는데, 옹정(雍正) 초년(初年)에 다시 귀양을 갔으며, 귀양지에서 죽었다. 『도서집성·의부전록(圖書集成·醫部全錄)』 등의 편수를 주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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