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卷五百十一
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511권
醫術名流列傳
의술명류열전
明 二
명나라 두 번째
戴思恭
대사공
按《明外史》本傳:戴思恭,字原禮,浦江人,以字行,受學於義烏朱震亨。
명외사 본전을 살펴보면 대사공은 자가 원례로 포강 사람으로 글자로 행하여 의오 주진형에 학문을 받았다.
震亨師金華許謙,以上接朱子之傳;
주진형이 금화 허겸을 스승으로 삼아서 주자의 전수를 위로 받았다.
又學醫於宋內侍錢塘羅知悌,知悌得之荊山浮屠,浮屠則河間劉守真門人也。
또한 송내시 전당 나지제에 의학을 배워서 나지제가 형산부도를 얻어서 부도는 하간 유수진의 문인이다.
震亨醫學大行,時稱爲丹溪先生。
주진형은 의학으로 크게 유행하여 때에 단계선생이라고 호칭하였다.
一見思恭,愛其才敏,盡以醫術傳之,思恭遂以醫鳴。
한번 대사공을 보고 재주가 명민함을 아껴서 다 의술을 전해주니 대사공이 의학으로 유명하였다.
洪武時征爲御醫,有所療治,立效,太祖愛重之。
홍무시기에 정벌하여 어의가 되어 치료하면 곧 효과가 있어서 태조가 그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다.
燕王患瘕,韓奭治不效,太祖遣思恭往治。
연나라 왕이 징하병을 앓아서 한석이 치료하나 효과가 없어서 태조가 대사공을 파견하여 가서 치료케 하였다.
問所用藥,良是。
약을 사용함을 물으니 곧 옳다고 했다.
思恭念何以不效,乃問王何嗜?
대사공이 생각하길 어째서 효과가 없는가 하니 왕에게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曰:嗜莊芹。
왕은 장근을 좋아한다고 했다.
思恭曰:得之矣。
대사공이 말하길 알겠다고 했다.
投一劑,夜暴下,視之,乃細蝗 蝗(누리, 황충 황; ⾍-총15획; huáng)
也。
한제를 투여하니 밤에 보니 작은
晉王末疾,思恭療之,愈已再發,即卒。
진왕이 사지질병으로 대사공이 치료하니 나으면 이미 재발하며 곧 죽었다.
太祖怒,逮治王府諸醫,思恭從容進曰:
태조가 분노하여 왕부의 여러 의사를 와서 치료케 하니 대사공이 조용히 나아가며 말했다.
臣嘗奉命視王疾,啓王曰:
신일 일찍이 왕명을 받고 왕의 질병을 보니 계왕이 말했습니다.
疾今即愈,但毒在膏肓,即復作,不可療也,今果然矣。
질병이 지금 나으나 다만 독이 고황에 있어서 다시 생기면 치료할 수 없으니 지금 과연 그러합니다.
諸醫由是免死。
여러 의사가 이로 연유하여 죽음을 면케 하였다.
一妃嗜燒酒致腹痛,治之而瘥。
한 비가 소주를 좋아하여 복통에 이르니 치료하니 나았다.
思恭曰:十年必復發,發則難救。
대사공이 말하길 10년이면 반드시 다시 재발하니 발병하면 구제하기 어렵습니다.
後果驗。
이후에 과연 그러했다.
思恭時已老,風雨輒免朝。
대사공이 이미 늙어서 풍우에 곧 조정벼슬을 면하고자 했다.
太祖得疾,少間出御右順門,召諸醫侍疾,無狀者悉付獄,獨慰思恭曰:
태조가 질병을 얻어서 조금 어우순문에 나와서 여러 의사를 불러 질병을 모시게 하니 증상이 없이 모두 옥에 붙으니 홀로 대사공을 위로하며 말했다.
汝仁義人也,事無預汝,毋恐!
당신은 인의가 있는 사람이니 일이 당신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두려워하지 말게.
已而駕崩。
이미 황제는 죽었다.
太孫嗣位,罪諸醫,獨擢思恭太醫院使。
태손이 대이어 황제에 오르니 여러 의사를 죄를 주고 대사공을 태의원사로 홀로 발탁하였다.
遼簡王聞太祖語,大書仁義二字賜之。
요간왕이 태조의 말을 듣고 크게 인의란 두 글자를 써서 하사하였다.
肅莊王、慶靖王咸爲贊味以賜。
숙장왕, 경정왕은 모두 찬미를 하사하였다.
永樂初,以年老乞骸骨,奏四上,乃許。
영락초기에 나이가 늙어서 해골을 빌어서 사상에 연주하길 허락하였다.
三年夏,遣使者徵入,免其拜,特召乃進見。
3년 여름에 사자를 파견하여 불러 들이니 절함을 면하고 특별히 불러 나아가 알현케 했다.
其冬復告歸,遣官護送,賚金幣,踰月而卒,年八十三歲,遣行人致祭。
겨울에 다시 돌아갈 것을 보고하니 관리를 파견하여 호송하니 금과 폐물을 선물하고 한달이 넘어서 죽으니 나이가 83세로 파견한 사람이 제사를 하였다.
所著有《證治要訣》、《證治類元》、《類證用藥》總若干卷,皆隱括丹溪之書爲之。
저서는 증치요결, 증치유원, 증류용약이며 모두 약간권으로 모두 주단계의 은밀하게 묶은 책이다.
又訂正丹溪《金匱鉤元》三卷,間附以己意,人謂無愧其師云。
또한 주단계의 금궤구현 3권을 정정하여 자기의 의견을 사이에 붙여서 다른 사람이 스승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按《宋濂集》:醫之爲道至矣,故周官有疾醫視萬民四時之病,春之痟 痟(두통, 소갈증 소; ⽧-총12획; xiāo)
首,夏之癢疥,秋之瘧寒,冬之欬嗽上氣,皆分而治之,驗其狀而制其祿,甚爲不輕也。
송렴집을 살펴보면 의사의 도리가 지극하니 그래서 주관에 질의는 만백성의 사계절의 병을 보아 봄에는 두통, 여름에는 개창의 가려움, 가을에는 학질 오한, 겨울에는 기침 상기를 보게 하니 모두 구분하여 치료하니 증상을 징험하여 기록하게 하니 매우 가볍지 않았다.
後世官寖 寖(잠길, 점차, 차차 침; ⼧-총13획; jìn)
失職,故於其術,每擇之不精。
후세에는 관리가 점차 관직을 잃어 의술이 매번 선택함에 정밀하지 않았다.
有人於此,能合於古者之道,豈不猶空谷足音공곡족음: =공곡공음: 아무도 없는 골짜기에 울리는 사람 발자국 소리라는 뜻으로, 쓸쓸할 때에 손님이나 기쁜 소식이 오는 것. 또는 그 손님이나 소식을 이르는 말
之可喜者乎?
이에 사람이 있으니 고대의 의도에 합하나 어찌 빈 골짜기의 발걸음소리의 반가운 소식처럼 기쁘겠는가?
如吾同縣戴原禮氏是已。
내 같은 현의 대원례와 같다.
原禮生儒家,習聞詩禮之訓,惓惓 권권: 충성스럽다. 간절하다. =卷卷
有志於澤物,乃徒步至烏陽,從朱先生彥修學醫。
원례는 유가에서 탄생하여 시례의 교훈을 익히고 들어서 만물을 혜택을 줌에 정성스러워서 이사간 발걸음이 오양에 이르니 주언수선생을 따라서 의학을 닦았다.
先生見其穎悟倍常,傾心授之。
선생이 싹수를 보고 깨달음이 보통의 배가 됨을 알고 마음을 다하여 그에게 전수했다.
原禮自是識日廣,學日篤,出而治疾,往往多奇驗。
대원례는 이로부터 앎이 날로 넓어지고 학문이 날마다 독실해지니 나가서 질병을 치료함에 기묘한 효험이 많았다.
予請得而詳道之。
내가 청하길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原禮從叔仲章,六月患大熱,面赤口譫語,身發紅斑,他醫投以大承氣湯而熱愈極。
대원례는 숙중장을 따라서 6월에 고열을 앓아서 안면이 적색이 되고 말을 섬어를 하고 몸에 홍반이 발생하니 다른 의사가 대승기탕을 투여하니 열이 더욱 심해졌다.
原禮脈之,曰:左右手皆浮虛無力,非真熱也。
대원례가 진맥하고 말하길 좌우의 손이 모두 부허맥이며 힘이 없으니 진짜 열이 아닙니다.
張子和云:當解表而勿攻裏。
장자화가 말하길 표를 풀고 리를 공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此證似之,法當汗。
이증이 그것과 유사하니 법에 발한하였다.
遂月附子、乾薑、人參、白朮爲劑,烹液冷飲之,大汗而愈。
부자, 건강, 인삼, 백출을 약제로 삼아서 삶은 액을 차게 마시게 하니 크게 땀이 나면서 나았다.
諸暨方氏子婦,瘧後多汗,呼媵 媵(보낼, 전송하다, 몸종 잉; ⼥-총13획; yìng)
人易衣不至,怒形於色,遂昏厥若死狀,灌以蘇合香丸而甦。
제기 방씨의 자식의 부인이 학질 뒤에 땀이 많고 옷을 갈아입을려고 불러도 이르지 않자 안색에 분노함을 드러내니 혼궐하여 죽은 모양으로 소합향환을 부어서 깨어나게 했다.
自後聞人步之重,鷄犬之聲,輒厥逆如初。
뒤에 사람의 걸음의 무게나 닭과 개의 소리만 들으면 문득 처음처럼 궐역하였다.
原禮曰:脈虛甚,重取則散,是謂汗多亡陽,正合經意。
대원례가 말하길 맥의 허증이 심하니 거듭 취하여 흩어지니 이는 땀이 많으면 망양이라고 하니 바로 내경의 뜻과 합함이다.
以黃芪、人參日補之,其驚漸減,至浹旬而安。
황기, 인삼으로 날마다 보하니 놀람이 점차 감소하고 10일정도 이르자 편안하였다.
松江朱仲文,長夏畏寒,身常挾重纊 纊(솜, 솜옷, 누에고치 광; ⽷-총21획; guāng)
,食飲必熱如火方下咽,微溫則嘔,他醫授以胡椒煮伏雌之法,日啖鷄者三,病愈亟。
송강 주중문이 장하에 한기를 두려워하여 몸이 항상 두텁게 거듭 솜옷을 입으니 음식이 반드시 불처럼 뜨거워 목구멍을 넘기니 미온이 있으면 토하니 다른 의사가 호초를 주어서 엎어진 여자의 방법으로 달여 날마다 닭 3마리를 먹으니 병이 빨리 나았다.
原禮曰:脈數而大,且不弱。劉守真云火極似水,此之謂矣。
대원례가 말하길 삭맥이면서 대맥이며 또한 약하지 않습니다. 유수진이 말한 화가 지극하면 수와 같음이 이것을 말함입니다.
椒發陰經之火,鷄能助痰,只以益其病爾。
호초는 음경락의 화를 발생케 하며 닭은 담을 도우니 다만 병을 더할 뿐입니다.
以大承氣湯下之,晝夜行二十餘,頓減纊之半;
대승기탕으로 사하함에 낮과 밤으로 20번 설사하니 경감하나 반입니다.
復以黃連導痰湯益竹瀝飲之,竟瘳。
다시 황련도담탕으로 죽력을 더해 마시게 하니 나았습니다.
姑蘇朱子明之婦,病長號數十聲,暫止復如前,人以爲厲所憑,莫能療。
고소 주자명의 부인은 병이 길게 수십번 부르나 잠깐 예전처럼 재발이 중지하여 다른 사람이 사나움에 빙의가 되었다고 하여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原禮曰:此鬱病也。痰閉於上,火鬱於下,故長號則氣少舒。經云火鬱則發之是已。
대원례가 말하길 이는 울병입니다. 담이 위에서 막고 화가 아래에서 울체하므로 길게 부르면 기가 조금 느슨해집니다. 내경에 말한 화가 울체하면 발설케 한다는 것입니다.
遂用重劑涌之,吐痰如膠者無算,乃復初。
중제를 사용하여 토하게 하니 아교같은 담을 토하길 수없이 하니 처음으로 회복하였다.
樂原忠妻亦蘇人,因免乳後病驚,身翩 翩(빨리 날, 나부끼다 편; ⽻-총15획; piān)
翩然如升浮雲之上,舉目則室廬旋運,持身弗定,他醫飲以補虛治驚皆不驗。
낙원충의 처 또한 사람을 깨어나니 젖을 면한 뒤에 놀란 병으로 몸이 뜬 구름 위에서 나부끼듯하여서 눈을 뜨고 집과 오두막이 빙빙 도니 몸을 지탱함에 안정되지 않아서 다른 의사가 허증을 보하여 놀람을 치료하여도 모두 효험이 없다.
原禮曰:左脈雖芤且濇,神色不動,是因驚致心包絡積污血耳,法宜下之。
원례가 말하길 좌측 맥이 비록 규맥이면서 색맥이나 정신과 색이 동요하지 않으니 놀람에 기인하여 심포락에 오염된 혈이 이르니 법에 의당 사하해야 했다.
下積血如漆者一斗,即愈。
적혈을 칠과 같이 한 말을 사하하면 나았다.
留守衞吏陸仲容之內子病熱,妄見神鬼,手足瞤動,他醫用黃連清心湯不中。
우수위사 육중용의 내자가 열병이 있어서 망령되이 귀신을 보니 손발을 떨려 움직이니 다른 의사가 황련청심탕으로 사용하나 적중치 않았다.
原禮視之曰:形瘦而色不澤,乃虛熱耳。法當以李杲甘溫除大熱之法爲治,即經所謂損者溫之者也。
대원례가 보고 말하길 형체가 마르고 안색이 윤택하지 않으니 허열입니다. 법에 이고가 감미와 온기로 대열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니 경에서 말한 손상된 사람은 따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服參、芪而安。
인삼, 황기를 복용하니 편안했다.
他若此者甚衆。
다른 것은 이처럼 한 것이 매우 많았다.
予備聞賢士大夫恒言之,今不能悉數也。
내가 현명한 사대부에게 항상 이 말을 들으니 지금은 다 수를 셀 수 없다.
嗚呼!有人於此,可不謂之合於古道者乎?
아아 이에 사람이 있으니 고대의 도와 합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醫之爲道,本於《素問》、《內經》。
의학이 도가 됨이 소문, 내경에 근본한다.
其學一壞於開元,再壞於大觀,習俗相仍,絕不知究甚微指,惟執一定之方,類刻舟而求劍者,人訾 訾(헐뜯을, 생각하다, 헤아리다 자; ⾔-총12획; zǐ,zī)
之,則曰:我之用此,不翅足矣,又何事《內經》爲?
의학이 개원에 한번 붕되되고, 대관에 다시 무너지니 습속이 서로 기인하여 끊어져서 미묘한 뜻을 연구하여 알지 못하니, 오직 일정한 처방을 잡고 각주구검과 유사하니 사람이 그를 헐뜯으니 내가 이를 사용함은 날개와 발이 없으니 또 어찌 내경을 섬기겠는가?
宋之錢仲陽獨得其秘,於遺經而擴充之;
송나라의 전중양이 홀로 그 비밀을 알고 내경을 남겨서 확충하였다.
金之張、劉、李諸家,又從而衍繹之,於是《內經》之學大明。
금나라의 장원소, 유하간, 이고의 여러 의가가 또한 따라서 연역하니 이에 내경의 학문이 크게 밝아졌다.
劉之學,朱先生得之最深,大江以南,醫之道本於《內經》,實自先生發之。
유하간의 학문과 주단계 선생은 가장 깊으며, 양자강 이남은 의학이 내경에 근본하나 실제로 선생으로부터 발원하였다.
原禮乃其高弟,其用心也篤,故造理爲特精。
대원례는 수제자로 마음씀이 독실하므로 이치에 나아감에 매우 정밀하였다.
其傳授有要,故察證無不中,亦可謂賢也已矣。
전수함에 중요함이 있으니 증상을 찾음에 적중되지 않음이 없고 또한 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近來京師縉紳家,無不敬愛之,服其劑者,沉痾豁然如洗。
근래의 경사의 벼슬아치들이 그를 공경하고 아끼지 않음이 없으니, 약제를 복용하면 오래된 고질병이 씻은 듯이 통한듯 했다.
或欲薦爲醫官,辭不就,遂賦詩以餞 餞(전별할, 음식을 권하다 전; ⾷-총17획; jiàn)
其東還,且請余爲序。
혹자가 천거하여 의관이 되니 말에 나아가지 않고, 부와 시로 전별하여 동쪽으로 돌아오게 하니 또한 내가 서문을 짓게 청하였다.
昔者司馬遷作倉公傳,載其應詔所對,自齊御史成至公乘項處,凡二十有三,書治病之狀甚具。
예전에 사마천이 창공전을 지어서 반응을 조서가 대응함을 기재하니 제나라 어사성에서 공에 이르기까지 뒷목을 타니, 23으로 병을 치료하는 형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썼다.
予倣此義,稍陳原禮療疾奇中者繫之首簡,并告周官疾醫四時治證之概,世之知言君子必有所擇焉。
내가 이뜻을 모방하니 조금 진원례가 질병을 치료함에 기이한 적중을 늘어놓아 머리책에 연계하니 주나라 관직에서 질의가 사계절에 증상을 치료하는 개괄을 고하니, 세상에 군자들은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原禮之從父能軒翁,予之同志友也,幸以予言質之。
대원례가 아버지를 따라서 헌옹이 되니 나의 동지인 벗이 다행히 내 말로 그것을 질정하였다.
按《震澤紀聞》:戴元禮,浙之金華人,爲醫得丹溪之傳,洪武中官太醫院。
진택기문을 살펴보면 대원례는 절강의 금화사람으로 의사로 단계의 전수를 받으니 홍무중에 태의원의 관직을 하였다.
尚書嚴震直病,上語元禮,曰:好。
상서 엄진직이 병으로 대원례에게 말하길 좋다.
治之不愈且抵罪。
치료가 낫지 않고 또한 죄에 이르렀다.
應手而愈。
손에 반응하는대로 나았다.
按《金臺紀聞》:金華戴元禮,國初名醫。
금대기문을 살펴보면 금화의 대원례는 나라 초기의 명의이다.
常被召至南京,見一醫家迎求溢戶,酬應不閒,元禮意必深於術者,因注目焉。
항상 불러서 남경에 이르러 한의사가 맞이하여 호구가 넘치질 구하니 보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按方發劑,皆無他異,退而怪之,日往觀焉。
바로 약제가 발동하나 다른 이상한 것이 없어서 물러나 괴이하게 여기니 날마다 가서 보았다.
偶一人求藥者,既去,追而告之曰:臨煎時,下錫一塊。
우연히 한 사람이 약을 구하니 이미 없어지니 따라가서 고하니 달일 때 주석 한덩어리를 넣으라고 했다.
麾 麾(대장기, 지휘하다, 손짓하다 휘; ⿇-총15획; huī)
之去。
가라고 손짓하였다.
元禮始大異之。
대원례는 비로소 크게 이상하게 여겼다.
念無以錫入煎劑法,叩之,答曰:是古方爾。
주석이 들어가서 달인 약제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물어보니 대답하길 이는 고대 방법일 뿐이다.
元禮求得其書,乃餳 餳(엿, 쌀강정 당; ⾷-총18획; xíng,qíng,táng)
字耳。
대원례가 책을 구해 얻으니 쌀강정이란 글자 뿐이었다.
元禮急爲正之。
대원례가 급히 그것을 바로잡았다.
嗚乎!不辨餳錫而醫者,世胡可以弗謹哉?
아아! 쌀강정과 주석을 변별하지 못하고 의학을 하니 세상에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按《金華府志》:戴思恭受業丹溪,丹溪一見奇之,悉語以濂洛授受之懿,及醫藥諸家要旨,遂以醫道鳴於時。
금화부지를 살펴보면 대사공이 단계로부터 의업을 받으니 주단계가 한번 보고 기이하게 여기며, 모두 말로 염락이 주고 받은 아름다움을 말하니 의약과 여러 의가의 요지를 모두 의도가 이 때에 이름났다고 하였다.
洪武中徵入朝,將屬以太醫院事,原禮以老病辭,授除迪功郎,職御醫。
홍무에 불려 조정에 들어가니 장차 태의원사에 속하니 대원례가 늙어서 병으로 사양하니 유공랑을 제수받으니 어의의 직책에 있었다.
永樂初超陞太醫院使,既就職,以耄不任事,屢請乞骸骨 걸해골: 심신은 주군에게 바친 것이지만 뼈만은 돌려달라는 즉, 자신의 몸을 해치지 말고 돌아가게 해달라는 뜻이다.
진(秦)나라가 멸망하자 천하를 다투었던 크고 작은 군웅(群雄) 중에서 차츰 초(楚)나라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통일을 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을 벌일 때 유방이 항우에게 쫓겨 고전(苦戰)하고 있었다. 유방은 지난해(BC 203년)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전영(田榮)·진여(陳餘)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관중(關中)을 합병하고, 의제(義帝) 시해(弑害)에 대한 징벌을 명분으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을 공략하였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으로 도망쳤다.그로부터 수개월 후 유방은 군량 수송로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가 어렵게 되어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하였다. 그러면서 형량을 국경으로 삼기로 하였다. 항우도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었으므로 이 제의에 응하려고 하였다. 이때 범증(范增)이 유방의 사정이 절박함을 알아차리고 오히려 형양을 포위할 것을 건의하였고 항우도 이에 따르기로 하였다.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단순하고 성급한 항우의 성격을 이용하여 군신(君臣) 이간책(離間策)을 쓰기로 하고, 황금을 뿌려 많은 첩자를 초나라 진영으로 보내어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소문은 항우의 귀에까지 들어가 범증을 의심하게 되고 항우는 유방과 강화하기 위해 은밀히 유방에게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대신들과 함께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여 항우의 사신들을 정중히 맞이하였다. 진평은 사신에게 "아부(亞父; 범증을 지칭함)께서는 안녕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항우의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오"라고 대답하였다.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며 "나는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소" 하고는 잘 차린 음식을 형편없는 음식으로 바꿔 차려 오게 하고는 방을 나가버렸다. 사신은 돌아오자마자 항우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고 확신하고는 그를 믿지 않게 되었다. 범증이 아무리 유방을 급습하라고 권해도 못 들은 체하였다. 결국 범증은 항우의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노여워하며 말하였다. "천하의 대세는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이제는 전하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원컨대 신의 해골을 내려주시면 초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 범증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던 중에 홧병으로 인하여 등창병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유방군에 포위되어 대패하였으며, 겨우 오강(烏江)으로 빠져나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사기(史記)》〈평진후전(平津侯傳)〉이나《한서(漢書)》 〈조충국전(趙忠國傳)〉 등에는 '걸해골'이라 되어 있는데,《사기(史記)》 〈항우본전(項羽本傳)〉과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등에는 '원사해골(願賜骸骨)'이라고 되어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걸해골'을 줄여서 '걸해(乞骸)' 또는 '걸신(乞身)'이라고 하는 사례가 있다.
,許之。
영락 초기에 태의원사에 올라가서 관직에 나아가며, 늙어도 일을 하지 않아서 자주 해골을 청하니 허락하였다.
瀕行,諭原禮曰:朕復召汝,汝其來也。
물가를 행차하니 대원례에게 비유하여 말하길 짐은 다시 그대를 부르겠으니 그대는 오시오.
既歸家,甫旬餘,以疾卒。
이미 집에 돌아가길가 10여일에 질병으로 죽었다.
諭祭於家,製文褒獎備至。
집에서 제사를 지내니 문장을 지어 권장하니 대비함이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