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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의술명류열전7 510권 명나라1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卷五百十
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510권

 醫術名流列傳
의술명류열전

  明
명나라

   葛乾孫
갈건손

按《明外史》本傳:葛乾孫,字可久,長洲人。
명외사 본전을 살펴보면 갈건손은 자가 가구로 장주 사람이다.
父應雷,以醫名。
아버지인 갈응뢰는 의사로 유명하였다.
時北方劉守真、張潔古之學,未行於南。
때가 북방 유수진, 장결고의 학문이 아직 남쪽에 유행하지 않았다.
有李姓者,中州名醫,官吳下,與應雷談論,大駭歎,因出張、劉書與相討究,自是二家之學,盛行於南。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은 중주의 명의로 오나라에 관직을 두고 갈응뢰와 담론하여 크게 놀라 감탄하여 장결고, 유수진의 책을 더불어 서로 토론하며 연구하여 이 두 의가의 학문에서부터 남쪽에 성행하게 되었다.
應雷著《醫家會同 《醫家會同》 本書醫術名流列傳卷五百九葛應雷傳內作《醫學會同》。
》二卷,官浙江醫學提舉。
갈응뢰는 의가회동 2권을 지어서 절강 의학제에 관직으로 천거되었다.
乾孫體貌魁碩,膂力絕人,好擊刺戰陣之法,後折節讀書,兼通陰陽律歷星命,爲文章有名,屢試不偶,乃傳父業。
갈건손의 몸과 용모는 우두머리로 완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 격투기와 찌름과 전쟁의 진치는 방법을 좋아하여 뒤에 부절로 의학을 하며 음양율력성명에 통달하여 문장을 함에 유명하여 자주 시험하나 짝짓지 못하여 아버지의 의업을 이었다.
然不肯爲人治疾,或施之,輒著奇效,名與金華朱丹溪埒 埒(바자울, 만지다, 같다 랄{날}; ⼟-총10획; liè)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해 질병을 치료함을 긍정하지 않고 혹은 시행하나 문득 기묘한 효과가 드러나면 이름이 금하 주단계와 같았다.
一書生傷寒不汗,發狂循河走,乾孫捽 捽(잡을, 겨루다, 맞아 싸우다 졸; ⼿-총11획; zuó,zú)
置水中,良久出之,裹以重棉,乃汗而解。
한 서생이 상한에 땀이 나지 않아서 발광하여 강으로 달리니 갈건손이 물 속에 맞이하여 한참뒤에 나오니 거듭 솜으로 싸서 땀을 내서 풀었다.
富家女病四肢痿痹,目瞪 瞪(바로 볼, 주시하다, 멍하다 징; ⽬-총17획; chéng,zhèng)
不能食,衆醫治不效,乾孫命悉去房中香奩 奩(화장 상자, 궤짝 렴{염}; ⼤-총14획; lián)
流蘇 유소: 장식용 매듭이나 노리개에 달려 있는 술
之屬,掘地坎,置女其中,令家人俟女手足動有聲則告。
부자집 여식의 병으로 사지가 늘어지고 마비되어 눈을 멍하게 하여 먹지 못하니 여러 의사의 치료가 효과가 없어서 갈건손이 모두 방 속의 향과 화장상자 노리개를 치우게 하고 땅 구덩이를 파서, 여자를 그 속에 두어서 집 사람들이기 여자의 손발을 움직여 소리가 나면 보고케 하였다.
久之,女果舉手足而呼,投藥一丸,明日,女自坎中出矣。
오래되어 여자는 과연 손발을 들고 불러서 약 한 환을 던지니 다음 날에 여자가 스스로 구덩이 속에서 나왔다.
蓋此女平日嗜香,而脾爲香氣所蝕,故得是證。
이 여자는 평일에 향을 즐겨서 비는 향기가 파먹게 되므로 이런 증상을 얻었다.
其療病不用方藥如此。
병을 치료하는데 방약을 사용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至正時,天下大亂,乾孫推己祿命不利,慨然謂其友曰:
정시가 되어 천하가 크게 혼란하여 갈건손이 자기를 추천하는 복록과 명이 불리하니 비분강개하여 친구에게 말했다.
聞中原豪傑并起,而我不得與,命也。今六氣淫厲,吾犯咸池,殆將死矣。
중원의 호걸이 함께 일어난다고 들었으나 나는 함께 할 수 없음이 명이다. 지금 6기가 넘쳐 사나워지니 내가 함지를 범하니 나는 장차 죽을 것이다.
一日,見武士引弓,取挽之及彀 彀(당길, 활을 쏘다 구; ⼸-총13획; gōu)
,歸即下血,命子煮大黃四兩飲之。
하룻날 무사가 활을 당김을 보고 취하여 당겨서 돌아와 하혈하니 자식에게 대황 4량을 달이게 하여 마셨다.
子密減其半,血不下,詰知其故,語之曰:
자밀이 반으로 감량하니 혈이 하혈하지 않으니 그 연고를 알고자 힐문하니 그에게 말했다.
無傷!我命盡來年,今則未也。
다치지 않았다. 나는 내년에 명이 다할 것이니 지금은 아니다.
再服二兩而愈。
다시 대황 2량을 복용하니 나았다.
明年果卒。
다음해에 과연 죽었다.
按《異林》:葛可久,吳人也,性豪爽,好博,少遇異人授以醫術,不事方書,中輒神異。
이림을 살펴보면 갈가구는 오나라 사람으로 성품이 호걸이며 박학을 좋아하여 젊어서 기이한 사람을 만나서 의술을 전수받아서 방서를 일삼지 않고 그 중에 문득 신이함이 있었다.
道有狂犬,可久謂人曰:
길에 미친 개가 있으면 갈가구는 다른사람에게 말했다.
誰當擒之,即可療。
누가 개를 사로잡으면 치료할 수 있다.
惡少果環執之,可久砭其腎,犬臥良久,差。
악한 소년들이 과연 포위하여 잡으니 오래되어 그의 신을 폄하하니 개가 눕힌지 한참만에 나았다.
有羣少戲里中,望見可久,一少年從牖躍入室,曰:
여러 소년들이 마을 속에서 희롱하니 갈가구를 바라보니 한 소년이 창문으로 방에 뛰어들어가서 말했다.
召可久診視之,不驗則羣噪 噪(떠들썩할, 시끄럽다 조; ⼝-총16획; zào)
之。強可久。
갈가구를 불러 진찰하여 보게 하니 효험이 없으니 무리들이 그를 비웃으니 가구를 강제로 하게 했다.
可久診之曰:腸已斷矣,當立死耳。
갈가구가 그를 진찰하고 말하길 장이 이미 끊어졌으니 곧 죽을 뿐입니다.
有頃,少年果死。
한참뒤에 소년이 과연 죽었다.
朱彥修嘗治浙中一女子,瘵且愈,頰上兩丹點不滅。
주언수가 일찍이 절강에서 한 여자를 치료했는데 노채가 또한 나으니 뺨 위가 양쪽에 붉은점이 소멸하지 않았다.
彥修技窮,謂主人曰:
언수가 기술이 다하여 주인에게 말했다.
須吳中葛公耳。然其人雄邁不羈,非子所致也,吾遣書往,彼必來。
오에 갈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영웅되어 만나려도 얽어매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글을 보낼 것이니 그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主人悅,俱供帳舟楫以迎。
주인이 기뻐하여 모두 장막과 배를 제공하여 환영하였다.
使至,葛公方與衆博大叫,使者俟立中庭,葛公瞠 瞠(똑바로 볼, 눈을 휘둥그레 하고 보다 당; ⽬-총16획; chēng)
目視之曰:
사신이 오니 갈공이 바로 대중과 크게 부르짖으니 사자는 중정에서 기다려서 눈을 휘둥그레 하고 보았다.
爾何爲者?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使者奉牘跪上之,葛公省書,不謝客行,亦不返舍,遂登舟。
사자는 편지를 받들어 꿇어 앉고 갈공이 글을 살피니 객의 행차를 사양하지 않고 또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배를 타버렸다.
比至,彥修語其故,出女子視之,可久曰:
이에 이르니 언수가 연고를 말하니 여자를 내보내고 보니 갈가구가 말했다.
法當刺兩乳。
법에는 응당 양쪽 젖을 찔러야 합니다.
主人難之。
주인이 그것을 어려워했다.
可久曰:請覆以衣。
가구가 말하길 청컨대 옷으로 덮으십시오.
援針刺之,應手而滅。
이에 자침하니 손에 반응하는대로 소멸하였다.
主人贈遺甚豐,可久笑曰:
주인이 매우 풍부하게 선물을 보내니 갈가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我爲朱先生來,豈責爾報耶?
나는 주선생이 오게 했는데 어찌 당신은 보답을 하려고 하십니까?
悉置不受。
다 두고 받지 않았다.
江浙行省左丞某者,患癱疾,彥修曰:
절강에 성좌승지 모씨가 중풍반신불수병을 앓으니 언수가 말했다.
按法不治。
법을 따르면 치료하지 못합니다.
可久曰:尚可刺。
갈가구가 말하길 오히려 자침할 수 있습니다.
彥修曰:雖可刺,僅舉半體耳,亦無濟也。
언수가 말하길 비록 자침할 수 있으나 겨우 반신만 들을 뿐이니 또한 구제할 수 없습니다.
家人固請,遂刺之,卒如彥修言。
집안 사람이 진실로 청하여 자침하니 마침내 주언수의 말과 같았다.
彥修且計日促之行,曰:當及家而絕矣。
언수가 또한 날을 계산하여 행차하니 집에 이르러 죽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已而果然。
이미 과연 그러하였다.
三子治驗并顯。
3사람은 치험이 함께 드러났다.
按《霏 霏(눈 펄펄 내릴, 조용히 오는 비 비; ⾬-총16획; fēi)
雪錄》:葛可久,姑蘇人,治方脈術,與丹溪朱彥修齊名。
비설록을 살펴보면 갈가구는 고소 사람으로 치료처방과 맥의 기술이 단계 주언수와 이름을 나란히 했다.
嘗炒大黃過焦,悉棄去不用,其謹如此。
일찍이 대황을 볶다가 너무 태워서 모두 버려서 사용하지 않으니 이처럼 삼갔다.
人來迎致,不問貧富皆往。
사람이 맞이하러 와도 빈부를 불문하고 모두 왕진했다.
貧人以楮鏹 鏹(돈, 돈꿰미에 꿰어둔 돈 강; ⾦-총19획; qiāng,jiǎng)
來貿藥,準病輕重,注善藥,緘 緘(봉할, 새끼, 줄 함; ⽷-총15획; jiān)
以畀 畀(줄, 넘기다, 수여하다 비; ⽥-총8획; bì)
之而歸其直。
가난한 사람이 닥나무꿰미의 돈으로 약을 남겨두어 병의 경중을 기준으로 좋은 약을 주니 봉하고 주니 곧음에 돌아갔다.
或楮鏹有不佳者,易佳者使供饘 饘(진하게 쑨 죽 전; ⾷-총22획; zhān)
粥。
혹은 닥나무돈꿰미가 좋지 않음이 있어서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죽을 제공 하였다.
蓋仁人之用心也。
어진 사람이 마음을 씀이다.
按《古今醫統》:葛可久,名乾孫,震父之子,醫實跨竈과조: 1 준마가 달릴 때 뒷발굽이 앞발 자국을 건너뛰어 디디다. [말의 앞발굽이 땅을 디딘 자국을 ‘灶(부엌 조; ⽕-총7획; zào)’라고 한 데서 나온 말임] 2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뛰어나다.

고금의통을 살펴보면 갈가구는 이름이 건손으로 진부의 자식으로 의학이
性甚仁厚,求療不分貴賤,輒盡心藥之,無有不效。
성품이 매우 어질고 두터워 치료함에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문득 마음을 다하여 투약하면 효과가 없음이 없었다.
著有《醫學啟蒙論》、《十二經絡》、《十藥神書》行世。
저서는 의학계몽론, 십이경락, 십약신서가 있어서 세상에 유행하였다.

   貝元瓚 瓚(제기, 술그릇, 옥잔 찬; ⽟-총23획; zàn)

구원찬

按《上虞縣志》:貝元瓚,字彥中,宋僉判欽世之七世孫,元醫學教諭良友之子。
상우현지를 살펴보면 구원찬은 자가 언중으로 송 검판 흠세의 7세손으로 원의학교유 양우의 자식이다.
世家北城,以醫活人,咸呼爲存仁先生。
대대로 북성에 살아서 의사로 사람을 살리니 모두 구원찬을 부르길 존인선생이라고 했다.

   范益
범익

按《古今醫統》:范益,燕京人,醫甚精,尤神於脈。
고금의통을 살펴보면 범익은 연경사람으로 의학에 매우 정밀하여 맥에 더욱 신기하였다.
年七十時,有老嫗居西山,請診其女,益以倦騎乘爲辭。
나이 70에 노구가 서산에 살아서 여자를 진찰하길 청하자 범익은 권태로워 말을 타고 사양했다.
嫗 嫗(할미, 늙은 여자 구; ⼥-총14획; yù)
出,頃之携二少女至,益診而詰之曰:
할미가 나가자 한 참뒤에 두 소녀가 오니 범익이 진찰하여 힐문하였다.
此非人脈,乃妖質耳。
이는 사람 맥이 아니니 요괴의 바탕일 뿐이다.
嫗跪告曰:妾本狐類,久住世間,得日月之精氣,故能變幻人形。二女偶患疾苦,知君仁厚,存活爲心,故敢求藥。君既洞察,詎敢欺乎?
할머니가 꿇어앉고 말하길 첩은 본래 여우 부류로 오래 세간에 머물러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서 그래서 사람 형체로 변환하였습니다. 두 여자는 우연히 질병을 앓아서 군이 인자하고 후덕함을 아니 살리려는 것을 마음에 두니 그래서 감히 약을 구했습니다. 그대가 이미 통찰하시니 어찌 감히 속이겠습니까?
益遂與藥,隨叩其所以往來禁城,如入無人之境,何也?
범익이 약을 주니 머리를 조아리고 금성에 왕래하여 마치 사람이 없는 경계에 들어가듯이 하니 어째서인가?
嫗曰:此時真主已在濠梁,京城諸神,俱已往彼,是故得以出入也。
할미가 말하길 이는 실제로 진주가 이미 호량에 있고 경성의 여러 신이 모두 이미 저기에 가니 그래서 출입할 수 있습니다.
逾年,太祖果克燕京。
해가 넘자 태조는 과연 연경을 다스렸다.
若益者,真神醫也。
범익은 진실로 신의이다.

   胡重禮
호중례

按《儀真縣志》:胡重禮,明初以醫名,尤妙太素脈。
의진현지를 살펴보면 호중례는 명나라 초기에 의사로 유명하니 더욱 태소맥을 오묘해 하였다.
有久瘧不止者,求視其脈,曰:
오래된 학질이 그치지 않자 구하여 맥을 보고 말했다.
此瘧母也.
이는 학모이다.
須百劑方愈。
100제를 먹이니 바로 나았다.
病者服至半中止,而病未瘳。
병자가 중반에 이르러 복용을 중지하자 병이 낫지 않았다.
他日,就孫醫脈之,曰:
다른 날에 손에 나가아 맥을 치료하며 말했다.
此須五十劑乃可。
이는 50제이면 가능합니다.
如言而病已。
말처럼 병이 나았다.
蓋孫即重禮壻,傳業於重禮者。
손은 곧 호중례의 사위로 호중례에게 의업을 전수받았다.
聊舉一端,以見其藝精如此。
한 실마리를 들면 예술의 정밀함이 이와 같이 나타난다.
강희제 ( 康熙帝 ) 때의 진몽뢰 ( 陳夢雷 ) 가 시작한 것을 옹정제 ( 雍正帝 ) 때의 장정석 ( 蔣廷錫 ) 이 이어받아 1725 년에 완성
진몽뢰 (陳夢雷)는 중국 청나라 때 사람. 자(字)는 칙하(則霞), 또는 성재(省齋)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후(閩侯) 태생. 강희(康熙) 연간에 진사가 되어 편수(編修)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 무고를 당해 하옥(下獄)되고 유배되었다. 10여 년 후에 풀려났는데, 옹정(雍正) 초년(初年)에 다시 귀양을 갔으며, 귀양지에서 죽었다. 『도서집성·의부전록(圖書集成·醫部全錄)』 등의 편수를 주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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