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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503권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
고금도서집성의부전록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은 중국 청나라 장정석(蔣廷錫) 등의 편찬으로 1723년에 간행된 의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의 일부분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부터 청나라 초기의 문헌까지 의학문헌 100여 종을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고전 의서에 대한 주석, 각과 질병의 변증논치(辨證論治) 및 의학과 관련 있는 예문(藝文), 기사(記事)와 의학자의 전기(傳記) 등을 포괄한다. 전 520권이며, 기초이론, 분과 치료, 논술과 처방 등 내용이 풍부하며, 서술이 체계적이고 전면적이다. 영인본이 나와 있다.
이 책의 정식 명칭은 [欽定古今圖書集成]으로 황제가 친히 명령하여 고금의 모든 도서를 모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략 康熙 연간에 陳夢雷(1651~1723) 등이 편찬하기 시작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가 蔣廷錫(1669~1732) 등이 이어받아 근 50년 만인 雍正4년 1726년에야 완성하였다.전서의 총 권수 1만 권, 1억6천만여자로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백과전서이다. 목록만 해도 40권에다가 經史子集의 문헌 3523종이 포괄되어 있다. 역사정치, 문화예술, 과학기술, 제자백가 등 상고시대로부터 淸初까지 동양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는데, 天文을 기록한 曆象彙篇, 지리·풍속의 方輿彙篇, 제왕·백관의 明倫彙篇, 의학·종교 등의 博物彙篇, 문학 등의 理學彙篇, 과거·음악·군사 등이 들어있는 경제휘편의 6휘편으로 크게 나뉘어 진다.



이를 다시 32典 6,109部로 세분하였고 각 부는 彙考·총론·도표·列傳·藝文·選句·紀事·雜錄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의부전록’은 바로 이『고금도서집성』중의 일부로 정확히는 博物彙篇 藝術典(2917~2928冊)에 들어있다. 초간본은 武英殿聚珍版 구리활자판인데 매우 희귀하며, 이 책이 조선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상당히 극적이다. 1776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규장각을 세워 학술자료를 모으게 하고 박제가, 이덕무와 같은 능력 있는 북학파 학자들을 檢書에 등용하는 학예진흥책을 벌였다. 당시 사은부사로 북경에 갔던 徐浩修(1736~1799)는『古今圖書集成』전질을 구해오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대단한 귀중본으로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서 마침내 중개인을 앞세워 翰林院에 뇌물을 주고서야 기어코 銅活字初印本 1질을 구할 수 있었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皆有窩에 소장케 하였다. ‘개유와’란 ‘모든 것이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찬탄할 만하다.



또 규장각은 애초에 訥齋 梁誠之(1414~1482)가 세조 재위초기에 설립을 奏請한 바 있으나 실행되지 못했던 것인데 정조대에 이르러서야 이룩되었다. 『의방유취』의 교정 책임자였을 뿐만 아니라 지역보건의료제도의 설비, 軍陣醫 확대를 주창하여 의서 출판과 의료정책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던 양성지의 국가도서관리제도 계획안이 실현되어 마침내 『도서집성』의 수장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기막힌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이용되는 流布本은 1884년 上海圖書集成局에서 간행된 것으로 오류가 많고 1890년 上海同文書局이 영인한 것에는 고증이 첨부되어 있어 비교적 정확하다고 한다. 색인으로는 일본 문부성에서 펴낸 [고금도서집성분류목록]이 있고 L. 자일스가 [An Alphabetical Index]를 대영박물관에서 간행한 바 있다. 또『古今圖書集成續錄初稿』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이들 다양한 판본과 참고서가 수장되어 있어 참조할 수 있다.실용적인 목적이 뛰어나서였는지 전서와는 별도로 의학부분은 훨씬 더 많이 인쇄되었는데, 초인본을 축쇄영인한 것이 있고 표점과 교정을 가한 연활자본 등 몇 종의 편집본이 나온 바 있으나 교감이 정확치 않고 임의로 산삭한 부분이 있어 고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계의 衆評이다. 또 이들 후대의 편집본을 펴내면서 ‘의부전록’ 혹은 ‘의부전서’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이름으로 원서명을 고려한다면 ‘고금도서집성醫部’가 정확한 표현이다.

예시문
古今圖書集成 醫部全錄卷五百三
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503권

 總論
총론

  吳文定公家藏集
오문정공 가장집

   醫僧庸妄治病速死
의사와 승려가 망령되면 병을 치료함에 빨리 죽고자 한다.

陳汝中嘗病脾胃鬱火之證,求治於盛用美,診其脈曰:
진여중이 일찍이 비위병과 울화의 증상을 보고 성용미에게 치료를 구하니 맥을 진찰하고 말했다.
如此冶可生,如彼治即死;如此治可以少生,如彼治則致速死。
이처럼 치료하면 살 수 있고 저처럼 치료하면 곧 죽습니다. 이처럼 치료하면 조금 살 수 있고, 저처럼 치료하면 빨리 죽게 됩니다.
既而治之,汝中遲其效。
이미 치료하나 진여중은 효과가 느렸다.
或以浮屠善醫薦者,汝中惑其說,遂求冶,飲其藥,嘔血一升而死。
혹자가 승려가 좋은 의사를 천거하여 진여중이 그 말을 의혹하여 치료를 구하니 약을 마시고 한 되를 피를 토하고 죽었다.
噫!醫以用藥,藥以攻病,病不能去而反以致死,則何以醫藥爲哉?
아아! 의사가 약을 사용하며, 약으로써 병을 공격하니 병이 제거되지 못하면 반대로 죽음에 이르니 어째서 의약이 되는가?
彼浮屠者,乃庸妄人也,目不識醫經,口不辨藥性,指不察脈候,人之虛實,病之新久,一切置之不問,而惟毒藥攻擊,其殺人蓋亦多矣。
저 승려는 용렬하고 망령된 사람이니 눈으로는 의경을 알지 못하고 입으로 약성을 변별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는 맥후를 살피지 못하니 사람의 허실과 병의 새롭고 오래됨과 일체 불문에 두고, 오직 독약으로 공격하여 사람을 죽임이 또한 많았다.
今予咎汝中之不善擇醫而致速死,特書此以爲世人輕服藥者之戒。
지금 당신이 진여중이 잘 의사를 선택하지 못하고 빨리 죽게 됨을 탓하나 특별히 이글을 써서 세상 사람이 경솔하게 약을 복용함을 경계로 하였다.

  醫學集成
의학집성

【 明 傅滋 [明 傅滋 原缺,據文補。]

명나라 부자

   醫學須會羣書之長
의학은 반드시 여러 책의 장점을 모아야 한다.

醫之爲道,非精不能明其理,非博不能至其約。
의사가도가 됨은 정밀하지 않으면 이치를 밝히지 못하고 박식하지 않으면 간약함에 이르지 못한다.
是故前人立教,必使之先讀儒書,明易理,《素》、《難》、《本草》、《脈經》而不少略者,何也?
그래서 앞 사람이 교화를 세움에 반드시 먼저 유학서적을 읽고, 역의 이치를 밝히며, 소문, 난경, 본초, 맥경은 간소하고 대략이 아님은 어째서인가?
蓋非四書無以通義理之精微,非《易》無以知陰陽之消長,非《素問》無以識病,非《本草》無以識藥,非《脈經》無以從診候而知寒熱虛實之證。
사서가 아니면 의리의 정미로움에 통하지 못하고, 주역이 아니면 음과 양의 꺼짐과 자람을 알지 못하며, 소문이 아니면 병을 알지 못하고, 본초가 아니면 약을 알지 못하며, 맥경이 아니면 맥진의 증후를 따라서 한열과 허실의 증상을 알지 못한다.
故前此數者,缺一不可。
그래서 앞의 몇가지는 한가지도 빠질 수 없다.
且人之生命至重,病之變化無窮,年有老幼,稟有厚薄,治分五方,令別四時,表裏陰陽,寒熱須辨,臟腑經絡,氣血宜分。
또한 사람의 생명은 지극히 귀중하니 병의 변화는 끝이 없고, 나이는 늙음과 젊음이 있고, 품수는 두꺼움과 얕음이 있고, 치료는 5방위로 나뉘고, 사계절을 분별하며, 표리와 음양, 한열은 변별해야 하며, 5장6부와 경락과 기혈을 구분해야 한다.
六氣之交傷,七情之妄發,運氣變遷不常,製方緩急尤異。
6기가 교대로 상함과 7정이 망령되이 발생함과 운기의 변천이 일상적이지 않고 방제를 만듦이 완급이 더욱 차이가 있다.
更復合其色脈,問其起居,證有相似,治實不同。
다시 색과 맥을 중복하여 합하며 기거를 묻고, 증상에는 서로 유사함이 있고 치료는 실제로 같지 않다.
聖賢示人,略舉其端而已。
성인과 현인이 사람을 보임은 대략 단서를 들었을 뿐이다.
後學必須會羣書之長,參所見而施治之,然後爲可。
후대 학자들은 반드시 모든 책의 장점을 모아서 소견을 참고하여 치료를 시행한 연후에 옳게 된다.

  九靈山房集
구령산방집

【 元 戴良 [元 戴良 原脫,據文補。]

원나라 대량

   醫儒同道
의학과 유학은 같은 도이다.

金華戴叔明曰:醫以活人爲務,與吾儒道最切近。
금화 대숙명이 말하길 의사는 사람을 살림을 임무로 하니 내 유학도리와 가장 간절하게 가깝다.
自唐書列之技藝,而吾儒不屑 不屑(불설):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爲之。
당나라 서적은 기예를 나열한 때부터 우리 유학자는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世之習醫者,不過誦一家之成說,守一定之方,以幸病之偶中,不復深爲探索,上求聖賢之意,以明夫陰陽造化之會歸;
세상의 의학을 익힌 사람이 일가의 학설 성립에 불과하니 일정의 처방을 지키며 병이 우연히 적중함을 다행으로 여기니 다시 깊이 탐색하지 않고 위로 성인과 현인의 뜻을 구하며, 음양의 조화와 모임과 돌아감을 밝힌다.
又不能博極羣書,採擇衆議,以資論治之權變。
또한 널리 여러 책을 궁극하고, 여러 논의를 채택하지 않고 치료의 임기응변을 바탕으로 논의하였다.
甚者至於屏棄古方,附會臆見,展轉 1 말이나 행동을 이랬다저랬다 하며 자꾸 되풀이함. 2 되돌아감. 3 =전전(輾轉).
以相迷,而其爲患不少矣,是豈聖賢慈惠生民之盛意哉?
심하면 고대 처방을 물리치고 버리며 억측으로 견강부회하여 되풀이하여 서로 미혹되며 질환이 됨이 적지 않으니 어찌 성인과 현인이 백성을 자혜와 은혜롭게 하는 성대한 뜻이 되겠는가?

  大學衍義補
대학연의보

【 明 邱濬 [明 邱濬(칠, 깊다 준; ⽔-총17획; jùn) 原脫,據文補。]

명나라 구준

   國設醫學
나라에서 의학을 개설함

今世之業醫者,挾技以診療則有之矣,求其從師以講習者,何鮮也?
세상에 의학을 업으로 삼음은 기술을 끼고 진료함이 있으니 스승을 따라서 강론을 익히니 어찌 드문가?
我太袓內設太醫院,外設府州縣學,而以醫學爲名,蓋欲聚其人,以斆學既成而試之,然後授以一方衛生之任,由是進之爲國醫,其嘉惠天下生民也至矣。
우리 태조는 안에 태의원을 개설하고 밖으로는 부주 현학을 개설하니 의학을 이름으로 하니 사람을 모으려고 하며 학문을 가르침이 이미 오래되어서 시험하니 그런 연후에 한 방의 위생의 임무를 맡기니 이로써 나아감이 국의가 되니 천하의 백성에 아름다운 은혜가 이르게 되었다.
間嘗考成周所以謂之醫師,國朝所以立爲醫學之故,精擇使判 判(판가름할, 나누다, 구별하다 판; ⼑-총7획; pàn)
以上官,聚天下習醫者,俾其教之養之,讀軒岐之書,研張李之技,試之通而後授之職,因其長而專其業,稽其事以制其祿,則天下之人,皆無夭閼 閼(가로막을, 그치다 알; ⾨-총16획; è,yān)
之患,而躋 躋(오를, 올릴 제; ⾜-총21획; jī,jì)
仁壽之域矣。
간혹 일찍이 주나라는 그를 의사라고 하며, 나라 조정은 의학의 연고를 설립하며 정밀하게 상관을 나눴으며, 천하에 의학을 학습하러 모이며, 그들을 가르치고 기르게 하였으며, 헌원과 기백의 책(황제내경)을 읽게 하고, 장중경과 이동원의 기술을 연마하게 하니 시험삼아 통한 뒤에 관직을 받으니 장점에 기인하여 업을 온전하게 하니 일을 상고하여서 녹봉을 만드니, 천하의 사람이 모두 요절하고 가로막는 질환이 없으니 어진 수명의 구역을 넘는다.
是以醫爲王政之一端也。
그래서 의사가 왕정의 한 실마리라고 했다.

  本草衍義
본초연의
【 宋 寇宗奭 宋 寇宗奭 原脫,據文補。

송나라 구종석

   醫有八要
의사는 8가지 요점이 있다.

治病有八要,八要不審,病不能去。
병을 치료함에는 8가지 요점이 있으니 8가지 요점을 살피지 않으면 병이 제거될 수 없다.
非病不去,醫無可去之術也。
병이 제거되지 않음이 없으니 의학에는 없앨 기술이 없다.
故須辨審八要,庶不有誤。
그래서 반드시 8가지 요점을 변별하고 살피면 거의 오류가 없다.
其一曰虛,五虛是也。
한가지는 허증이니 5가지 허증이 이것이다.
脈細,皮寒,氣少,前後泄瀉,飲食不進,此爲五虛。
세맥, 피부가 참, 기가 적음, 앞과 뒤로 설사함, 음식을 먹지 못함이 이것이 5가지 허증이다.
二曰實,五實是也。
두 번째는 실증이니 5가지 실증이 이것이다.
脈盛,皮熱,腹脹,前後不通,悶瞀,此五實也。
성한 맥, 피부의 열, 복부창만, 앞과 뒤가 통하지 않음, 답답하고 눈이 어두움이니 이것이 5가지 실이다.
三曰冷,臟腑受其積冷是也。
세 번째는 냉증이니 5장6부가 냉증 쌓임을 받음이 이것이다.
四曰熱,臟腑受其積熱是也。
네 번째는 열증이니 5장6부가 쌓인 열을 받음이 이것이다.
五曰邪,非臟腑正病也。
다섯 번째는 사이니 5장6부의 정기의 병이 아니다.
六曰正,非外邪所中也。
여섯 번째는 정이니 외부 사기에 적중됨이 아니다.
七曰內,病不在外也。
일곱 번째는 내이니 병이 밖에 있지 않음이다.
八曰外,病不在內也。
여덟 번째는 외이니 병이 안에 있지 않음이다.
既先審此八要,參之六脈,審度所起之源,綴以望聞問切,何有不可治之疾也!
이미 먼저 이 8가지 요점을 살피고 6맥을 참고하여 일어나는 근원을 살피고 헤아려 계속하여 망진, 문진, 문진, 절진을 하면 어찌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이 있겠는가?

  本草類方
본초류방
【 清 年希堯 清 年希堯 原脫,據文補。

청나라 년희요

   醫不可用孟浪
의사는 맹랑함을 사용하면 안 된다.

夫用藥如用刑,誤即便隔死生。
약을 사용함이 형벌을 사용함과 같으니 오류면 곧 생과 사의 간격이 있다.
然刑有司鞫 鞫(국문할, 다하다 국; ⾰-총18획; jū)
成然後議定,議定然後書罪。
그러나 형벌에는 관리가 심문이 생성한 연후에 논의가 결정되며, 논의가 결정된 연후에 죄를 쓴다.
蓋人命一死不可復生,故須如此詳謹。
인명의 한번 죽으면 다시 탄생할 수 없으므로 이처럼 자세하고 삼가야만 한다.
用藥亦然。
약을 사용함 또한 그렇다.
今醫者至病家,便以所見用藥,若高醫識病,知脈藥相當,如此即應手奏效,或庸下之流,孟浪亂施湯劑,逡 逡(뒷걸음질 칠, 달의 운행 준; ⾡-총11획; qūn)
巡便至危殆,如此殺人,何太容易!
지금 의사가 환자에 이르면 곧 소견으로써 약을 사용하니 만약 고명한 의사가 병을 알고 맥과 약이 서로 합당함을 알기를 이처럼 손에 반응하면 주효하나 혹은 용렬한 하류의 의사는 맹랑하게 혼란하게 탕제를 시행하여 순행을 뒷걸음쳐서 곧 위태로움에 이르니 이처럼 사람을 죽임이 어찌 너무 용이하지 않는가?
良由病家不善擇醫,平日未嘗留心於醫術也,可不慎哉!
진실로 병 환자의 의사를 잘 선택하지 못함에 유래하니 평일에 일찍이 의술에 마음을 남기지 않음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는가?
강희제 ( 康熙帝 ) 때의 진몽뢰 ( 陳夢雷 ) 가 시작한 것을 옹정제 ( 雍正帝 ) 때의 장정석 ( 蔣廷錫 ) 이 이어받아 1725 년에 완성
진몽뢰 (陳夢雷)는 중국 청나라 때 사람. 자(字)는 칙하(則霞), 또는 성재(省齋)이며 복건성(福建省) 민후(閩侯) 태생. 강희(康熙) 연간에 진사가 되어 편수(編修)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가 나중에 무고를 당해 하옥(下獄)되고 유배되었다. 10여 년 후에 풀려났는데, 옹정(雍正) 초년(初年)에 다시 귀양을 갔으며, 귀양지에서 죽었다. 『도서집성·의부전록(圖書集成·醫部全錄)』 등의 편수를 주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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