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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종금감 28권 산보명의방론 3

의종금감은 청나라 오겸(吳謙)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편술했다. 오겸의 호는 육길(六吉)이다. 건륭(乾隆)시기에 태의원판(太醫院判)이 되어 여러 차례 임금의 은총을 받았고 1740년에 내부장서(內府藏書)와 전국의 가장비서(家藏秘書) 및 세전경험양방(世傳經驗良方)을 모아 책을 편찬하라는 명을 받고 유유탁(劉裕鐸)과 함께 총수관(總修官)에 임명되었다. 1742년 책이 완성되자 임금은 〈의종금감〉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의종금감〉은 모두 9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정정상한론주(訂正傷寒論註) 17권, 정정금궤요략주(訂正金要略註) 8권, 산보명의방론(刪補名醫方論) 8권, 사진요결(四診要訣) 1권, 운기요결(運氣要訣) 1권, 상한심법요결(傷寒心法要訣) 3권, 잡병심법요결(雜病心法要訣) 5권, 부과심법요결(婦科心法要訣) 6..
의종금감은 청나라 오겸(吳謙)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편술했다. 오겸의 호는 육길(六吉)이다. 건륭(乾隆)시기에 태의원판(太醫院判)이 되어 여러 차례 임금의 은총을 받았고 1740년에 내부장서(內府藏書)와 전국의 가장비서(家藏秘書) 및 세전경험양방(世傳經驗良方)을 모아 책을 편찬하라는 명을 받고 유유탁(劉裕鐸)과 함께 총수관(總修官)에 임명되었다. 1742년 책이 완성되자 임금은 〈의종금감〉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의종금감〉은 모두 90권으로 되어 있는데 정정상한론주(訂正傷寒論註) 17권, 정정금궤요략주(訂正金要略註) 8권, 산보명의방론(刪補名醫方論) 8권, 사진요결(四診要訣) 1권, 운기요결(運氣要訣) 1권, 상한심법요결(傷寒心法要訣) 3권, 잡병심법요결(雜病心法要訣) 5권, 부과심법요결(婦科心法要訣) 6권, 유과심법요결(幼科心法要訣) 6권, 두진심법요결(痘疹心法要訣) 4권, 종두심법요지(種痘心法要旨) 1권, 외과심법요결 16권, 안과심법요결 2권, 자구심법요결(刺灸心法要訣) 8권, 정골심법요지(正骨心法要旨) 4권 등 모두 15종이다. 이 책은 당시까지의 종합적인 의서 중에서 가장 완비되고 간단명료한 책이었다. 정골심법요지 및 종두심법요지와 같은 과거에 보기 힘들었던 전문적인 내용으로 인해 특수기술의 확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보명의방론 (刪補名醫方論)
서명. 중국 청나라 시대 이전의 임상 상용 방제(方劑) 약 200방(方)을 수록한 의방서(醫方書). 이 책은 곧 『의종금감(醫宗金鑑)』 제26∼33권인데, 단행본도 있다. 전 8권. 원방(原方)의 방명(方名), 주치(主治) 및 처방을 기술한 외에 방마다 방의(方義)의 주석과 역대 의학자의 그 방에 대한 논술을 덧붙였다. 방의 선택이 매우 신중하며, 비록 분류하지는 않았으나 실용을 원칙으로 했는데, 논의가 비교적 객관적이어서 취할 바가 많다

예시문
藿香 桔梗 紫蘇 白芷 厚朴 大腹皮 半夏 茯苓 陳皮 甘草
곽향 길경 자소엽 백지 후박 대복피 반하 복령 진피 감초
右十味, 加薑棗, 水煎, 熱服.
위 10약미를 생강, 대추를 가미하여 물에 달여 뜨겁게 복용한다.
【集註】吳琨曰: 四時不正之氣, 由鼻而入, 不在表而在裏, 故不用大汗以解表, 但用芬 芬(향기로울, 온화해지다 분; ⾋-총8획; fēn)
香利氣之品以正裏.
집주 오곤이 말하길 사계절의 바르지 않은 기는 코로부터 들어와 표에 있지 않고 리에 있으므로 세게 땀내서 해표함을 쓰지 않고 단지 향기롭고 날카로운 기가 있는 약품으로 리증을 바로잡는다.
蘇, 芷, 陳, 腹, 朴, 梗, 皆氣勝者也, 故能正不正之氣;
소엽, 백지, 진피, 대복피, 후박, 길경은 모두 기가 이기는 것이므로 바르지 않는 기를 바로잡는다.
茯, 半, 甘草則甘平之品, 所以培養中氣者也.
복령, 반하, 감초는 감미로 평기의 약품으로 중기를 배양할 수 있다.
若病在太陽, 與此湯全無干涉, 傷寒脈沈發熱, 與元氣本虛之人, 並夾陰發熱者宜戒.
만약 병이 태양에 있으면 이 곽향정기산은 전혀 간섭할 수 없고 상한병 침맥에 발열하며 원기가 본래 허약한 사람은 음을 끼고 발열하는 자에 경계함이 의당하다.
又金不換 金不換은 不換金으로 되지 않을까 한다.
正氣散, 即平胃散加半夏, 藿香, 凡受山嵐瘴氣 山嵐瘴氣:전염병을 일으키는 사기(邪氣)의 하나. 더운 지방의 산과 숲, 안개가 짙은 곳에서 습열(濕熱)이 위로 올라갈 때에 생기는 나쁜 기운
, 及出遠方不服水土 不伏水土:어떤 지역에 처음 간 경우, 자연 환경과 생활 습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각종 병증. 예컨대 식욕부진, 복창(腹脹), 복통, 설사 또는 월경불순 등이 있다
, 吐瀉下痢者主之.
또 불환금정기산은 평위산에 반하, 곽향을 가미하여 산람정기를 감수하며 먼 지방에서 물갈이를 하여 구토와 설사 하리가 있음을 주로 주치한다.
蓋平胃散, 可以平濕土而消瘴, 半夏之燥以醒脾, 藿香之芬以開胃.
평위산은 습토를 평정하며 장기를 소멸케 하며 반하의 건조로 비를 깨어나게 하며 곽향의 향기로 위를 연다.
名曰正氣, 謂能正不正之氣也.
정기라고 이름하니 바르지 않는 기를 바로잡을 수 있음을 말함이다.

62. 神朮湯 
신출탕
主治三時外感寒邪, 內傷生冷而發熱, 及脾瀉腸風.
신출탕은 3계절의 외감한사, 안으로 날것과 찬 음식물에 손상되고 발열, 비의 설사와 장풍을 주치한다.
白朮三錢 防風二錢 甘草一錢.
백출 12g, 방풍 8g, 감초 4g이다.
右三味, 無汗用蒼朮加蔥白, 生薑, 有汗用白朮, 生薑.
위 3약미를 땀이 없으면 창출을 쓰고 총백, 생강을 가미하며, 땀이 나면 백출과 생강을 쓴다.
【集註】柯琴曰: 此王好古 王好古: 중국 원나라 때의 의학자. 자(字)는 진지(進之), 호는 해장(海藏)이며 당시의 조주(趙州; 지금의 河北省 趙縣) 사람. 경사(經史)에 통달했고, 의방(醫方)을 좋아하였으며, 금나라 때의 명의 이동원(李東垣)에게 배워 의학에 정통하였다. 조주 의학 교수가 되었으며 관내의 의학을 향상시켰다. 평생 동안 저술이 많아서 『음증약례(陰證略例)』, 『탕액본초(湯液本草)』, 『의루원융(醫壘元戎)』, 『차사난지(此事難知)』, 『중경상변(仲景詳辨)』, 『활인절요가괄(活人節要歌括)』, 『반진론(斑疹論)』, 『상한변혹론(傷寒辨惑論)』 등이 있다. 의학 이론상 그는 내인(內因)의 변증상의 의의를 중시하였고, 비(脾)와 신(腎)의 온보(溫補)를 주장하였다. 반진(斑疹)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 참고할 만한 논술이 많이 있다. [1200∼?]
得意之方, 倣仲景麻, 桂二方之義, 而製爲輕劑 輕劑:십제(十劑)의 하나. 경청(輕淸)하여 승산(升散) 작용이 있는 약물로 구성되어 기표(肌表)의 사기(邪氣)를 없애 주는 작용을 하는 방제(方劑). 『심씨존생서(沈氏尊生書)』 「요약분제(要藥分劑)」에서 “서지재(徐之才)는 경청(輕淸)한 것으로써 실사(實邪)를 제거(除去)할 수 있으니, 마황(麻黃)이나 갈근(葛根)의 종류가 이 것이라고 하였고, 장종정(張從正)은 풍한(風寒)의 사기(邪氣)는 처음에 피부(皮膚)에 침입하여 두통(頭痛), 신열(身熱)을 일으키니, 마땅히 그 표(表)를 풀어 주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황제내경(黃帝內經)』에 이른바 그 경청(輕淸)함으로 인하여 그 것(表邪)을 날려 보낸다고 한 것이다.(徐之才曰: 輕可去實, 麻黃, 葛根之屬是也. 張從正曰: 風寒之邪, 始客皮膚, 頭痛身熱, 宣解其表. 『黃帝內經』 所謂因其輕而揚之也.)”라고 하였다.
也.
집주 가금이 말하길 이 신출탕은 왕호고가 뜻을 얻은 처방으로 장중경의 마황탕, 계지탕 두 처방의 뜻을 모방하여 경제로 만든 것이다.
然此是太陰之劑, 可以理脾胃之風濕, 而不可治太陽之風寒, 亦不可治陽明之表證, 與少陽之半表裏也.
이 신출탕은 태음병약제로 비위의 풍습사를 다스릴수 있고 태양병의 풍한사를 치료할 수 없고 또 양명병 표증과 소양병 반표반리증을 치료할 수 없다.
『內經』所謂春傷於風, 邪氣留連而洞泄 洞泄:(1) 음(陰)이 성하여 안에서 한(寒)이 생김으로써 발생하는 설사. [성제총록(聖濟總錄)] 제74권에서 "통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설사하는 것이다. ……음이 성하면 안에 한이 생기므로 장(腸)에 공동(空洞)이 생겨 설사하는 것이다.(洞泄謂食已卽泄. ……陰盛生內寒, 故令人府藏內洞而泄.)"라고 하였다.
(2) 습(濕)이 성하여 비(脾)를 손상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설사. 유사(濡瀉)의 딴이름이다. [의종필독(醫宗必讀)] <설사(泄瀉)>에서 "통설은 일명 유사인데 설사를 하면 거의 물만 나온다.(洞泄, 一名濡瀉, 瀉下多水也.)"라고 하였다. 유사(濡瀉), 유설(濡泄).
(3) 비사(脾瀉)의 딴 이름. [의학진전(醫學眞傳)] <이(痢)>에서 "이질(痢疾)로서 적(積)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하룻밤에 십여 차례 대변을 보며, 변을 볼 때 약간 아픈 것을 비사라고도 하고, 통사(洞瀉)라고도 한다.(也有痢無積, 日夜十餘次, 解時微痛, 是名脾瀉, 又名洞瀉.)"고 하였다
, 至夏而飧泄 飧泄:설사의 하나. 소화 안 된 수곡(水穀)이 변으로 나오는 병증. [성제총록(聖濟總錄)] 제74권에서 "저녁밥(夕食)을 손(飧)이라 한다.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는 경우가 저녁때 많으므로 음식이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나오는 것을 손설(飧泄)이라 한다. 이는 속칭 수곡리(水穀痢)이다.(夕食謂之飧. 以食之難化者, 尤在於夕, 故食不化而泄出, 則謂之飧泄. 此俗所謂水穀痢也.)"라고 하였다.
, 腸澼 腸澼:이질(痢疾)을 말함. 벽(澼)은 기름때가 끼어 콧물이나 고름같이 끈적끈적하고 미끌미끌한 액체를 말하는데, 장(腸)을 통해서 배출되므로 장벽(腸澼)이라고 한다
者宜之.
황제내경에서 이른바 봄에는 풍사에서 손상되며 사기가 머물러 통설이 되며 여름에는 손설과 장벽이 되는 환자에 마땅하다.
若冬傷於寒, 至春而溫病者, 又非所宜也.
만약 겨울에 한기에 손상되며 봄에 이르러 온병이 되면 또 마땅함이 아니다.
今人不知仲景立方之旨, 只恐麻黃, 桂枝之傷人也, 得此平和之劑恃爲穩當.
지금 사람은 장중경이 처방을 세운 뜻을 모르고 단지 마황, 계지가 사람을 손상할까 두려워 이 평화의 약제로 온당하다고 믿었다.
不知營衛不和, 非調和脾胃者所可代;
영과 위가 부조화됨을 알지 못하고 비위를 조화시키는 것이 대신할 수 없다.
胃家之實者, 非補虛之品所能投;
위가의 실증은 허를 보하는 약품을 투여할 수 없다.
肝膽之相火往來, 少陰之水火相射者, 不得以燥劑該攝也.
간담의 상화가 왕래하며 소음의 수화가 서로 쏘면 건조한 약제로 다스릴 수 있다.
先明藥之理, 始得方之用, 能知方, 始可用方而不執方.
먼저 약의 이치를 밝히고 비로소 처방의 사용을 얻으니 처방을 알면 비로소 처방을 써서 처방에 고집하지 않게 된다.
若病在太陽, 先發陽明之汗, 是引賊破家, 張潔古豈獨爲葛根道哉!
만약 병이 태양에 있으면 먼저 양명의 땀을 내서 적을 당겨서 집안을 깨뜨리니 장결고가 어찌 홀로 갈근을 말하겠는가?

63. 麻黃加朮湯 
마황가출탕
治濕家身煩疼.
마황가출탕은 습병환자가 몸이 화끈거리며 아픔을 치료한다.
麻黃三兩 桂枝二兩 甘草 ( 炙 ) 二兩 杏仁七十個 白朮 ( 炒) 四兩.
마황 120g, 계지 80g, 구운 감초 80g, 행인 70개, 볶은 백출 160g이다.
右五味, 以水九升, 煮麻黃, 減二升, 去沫, 納諸藥, 煮取二升半, 去滓, 溫服八合, 覆取微似汗.
위 5약미를 물 9되로 마황들 알여 2되로 감량하며 거품을 제거하며 여러약을 넣고 달여 2되반으로 하여 찌꺼기를 제거하며 따뜻하게 8홉을 복용하니 덮어 약간 땀을 내는 듯하게 한다.
【集註】程知曰: 此湯爲濕家表散法也. 身疼爲濕, 身煩爲熱.
집주 정지가 말하길 이 마황가출탕은 습병환자의 표를 발산하는 방법이다. 신통은 습이며 몸의 심번은 열증이 된다.
加白朮於麻黃湯中, 一以助其去濕, 一以恐其過散, 此治濕之正法也.
마황탕중에 백출을 가미하며 하나는 습을 제거함을 돕고 하나는 과다발산을 두려워하니 이는 습을 치료하는 바른 방법이다.
發散方中加白朮, 又爲張潔古, 王好古二人開法門.
발산하는 처방중에 백출을 가미하며 또 장결고, 왕호고 두 사람이 법문을 열었다.

64. 桂枝附子湯 
계지부자탕
主治傷寒八九日, 風濕相摶, 身體煩疼, 不能轉側, 不嘔不渴, 脈浮虛而澀者.
계지부자탕은 상한병 8,9일을 주치하니 풍과 습이 서로 치니 신체가 화끈거리며 아프며 옆으로 돌수 없으니 구토도 모샇고 갈증도 없이 부허맥이면서 깔깔한 맥이 된다.
桂枝四兩 附子 ( 炮 ) 三枚 甘草二兩 生薑三兩 大棗十二枚.
계지 160g, 구운 부자 3매, 감초 80g, 생강 120g, 대추 12매이다.
右五味, 以水六升, 煮取二升, 去滓, 分溫三服.
위 5약미를 물 6되를 2되가 되게 달여 찌꺼기를 제거하여 나눠 따뜻하게 세 번 복용한다.
【集註】程知曰: 濕與風相摶, 流入關節, 身疼極重, 而無頭痛, 嘔, 渴等證, 脈浮虛者風也, 澀者寒濕也.
집주 정지가 말하길 습과 풍이 서로 치며 관절에 유입하며 몸 통증이 지극히 무거우니 두통, 구토, 갈증등의 증상이 없이 부허맥이면 풍증이며 깔깔하면 한습증이다.
風在表者, 散以桂, 甘之辛甘.
풍은 표에 있으면 발산을 계지와 감초의 신감미를 쓴다.
濕在經者, 逐以附子辛熱.
습이 경락에 있으면 부자의 신미, 열기로 몰아낸다.
薑, 棗辛甘, 行營衛通津液以和表.
생강, 대추의 신미, 감미는 영과 위를 운행하여 진액을 통하여 표를 조화롭게 했다.
蓋陽虛則濕不行, 溫經助陽散濕, 多借附子之大力也.
양허면 습이 운행하지 않고 경락을 따뜻하게 하며 양기를 도우며 습을 발산하니 많이 부자의 큰 힘을 빌렸다.

65. 栝蔞桂枝湯 
과루계지탕
治太陽證備, 身體强几几 几几:목과 등줄기가 뻣뻣하여 구부리거나 펴지 못하여 부자유스러운 증상
然, 脈反沈遲, 此爲痙, 此湯主之.
태양증이 겸비되며 신체가 뻣뻣하며 맥이 반대로 침지맥이면 이는 경이라고 하니 이 과루계지탕으로 주치한다.
栝蔞根二兩 桂枝三兩 芍藥三兩 甘草二兩 生薑三兩 大棗十二枚 
과루근 80g, 계지 120g, 작약 120g, 감초 80g, 생강 120g, 대추 12매이다.
右六味, 以水九升, 取三升, 分溫三服, 取微汗, 汗不出, 食頃須啜熱粥發之.
위 6약미를 물 9되를 3되를 취하여 나눠 세 번으로 복용하니 약간 땀을 내며 땀이 나지 않으면 식경에 뜨거운 죽을 먹어서 발한한다.
【集註】喻昌 喩昌:중국 청나라 초기의 저명한 의학자. 자(字)는 가언(嘉言), 별호는 서창노인(西昌老人)이며 당시의 신건(新建; 지금의 江西省 南昌) 사람. 젊어서 과거에 합격하여 상경하였는데, 청군(淸軍)이 입관(入關)한 후 은거하면서 의서를 탐독하였다. 남창(南昌), 정안(靖安) 등지를 두루 돌아다녔고, 후에 17년(1644∼1661) 동안 상숙(常熟)에서 의업을 벌여 명성을 떨쳤다. 학술면에서는 『상한론(傷寒論)』을 높이 평가하였고, 방유집(方有執)의 『상한론조변(傷寒論條辨)』의 기초 위에 상한론 조문(條文)을 더 분류 귀납하였다. “치병은 반드시 병을 아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하며, 병을 알고 난 후에 약을 논해야 한다.”라고 하여 변증논치(辨證論治) 사상과 병안(病案)을 쓰는 중요성 등을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상론편(尙論篇)』(1648), 『의문법률(醫門法律)』(1658), 『우의초(寓意草)』(1643) 등을 지었다. [1585∼1664]
曰: 傷寒方中, 治項背几几, 用桂枝加葛根湯矣.
집주 유창이 말하길 상한처방중에 뒷목과 등이 뻣뻣함을 치료하니 계지가갈근탕을 쓴다.
彼之汗出惡風, 其邪在表, 而此之太陽證, 罔不具備, 其邪之亦在於表可知也.
저들 땀이 나면 오풍이니 사기가 표에 있으면 이는 태양증이니 구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사기가 또한 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但以脈之沈遲, 知其在表之邪爲津液內竭所召, 不當從風寒之表法起見, 故不用葛根之發表解肌 解肌:외감증 초기에 땀이 나는 표증에 쓰는 방법. 임상에서는 병증의 한열(寒熱)에 따라 신온해기법(辛溫解肌法) 또는 신량해기법(辛凉解肌法)을 구별하여 쓴다. 신온해기법에는 계지탕(桂枝湯)을 쓰며, 신량해기법에는 시갈해기탕(柴葛解肌湯)을 쓴다. 『상한내소집(傷寒來蘇集)』에서 “해기(解肌)는 기육(肌肉)의 땀을 푸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온병조변(溫病條辨)』에서는 “상한병(傷寒病)은 땀을 내지 않으면 풀리지 않으니 발한(發汗)이 가장 좋고, 상풍병(傷風病)은 또한 땀이 나지 않으면 땀을 내지 말아야 하니 발한(發汗)을 가장 꺼리며 다만 해기(解肌)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마황(麻黃)·계지(桂枝)의 그 치료와 다른 것으로, 양법(凉法)과 다른 것이다. 온병(溫病)은 또한 땀으로 푸는 것이 좋으나 발한(發汗)은 가장 꺼리며, 다만 신량해기(辛凉解肌)는 허용되나 신온해기(辛溫解肌)는 또한 쓸 수 없다.”라고 하였다.
, 改用栝蔞根之味苦入陰, 擅生津液之長者爲君, 加之桂枝和營衛, 養筋脈而治其痙, 乃變表法爲和法也.
단지 맥이 침지맥이며 표의 사기가 진액이 안에 고갈함을 부름을 알고 풍한의 표를 치료하는 방법을 따르지 않음이 나타나므로 갈근의 표를 발한하고 기육을 풀음을 쓰지 않고 바꿔 과루근의 고미로 음에 들어가게 하며 마음대로 진액을 생성하여 군약으로 삼고 계지를 가미하여 영과 위를 조화롭게 하며 근육과 맥을 배양하여 경련을 치료하며 표법을 바꿔서 화법으로 삼는다.
然既君以栝蔞根當增之, 桂枝爲臣當減之.
그래서 이미 과루근을 군약으로 삼아 더하니 계지는 신약으로 삼고 감량해야 한다.

66. 水解散 
수해산
治天行時氣, 初起頭痛, 壯熱等疫.
수해산은 유행성 돌림병과 초기 두통, 장열등의 역병을 치료한다.
大黃四兩 白芍二兩 黃芩 甘草 ( 炙 )  桂心 麻黃各三兩
대황 160g, 백작약 80g, 황금, 구운 감초, 계심, 마황 각 120g이다.
右爲粗末, 每撮一兩, 水煎服. 汗下不再服.
위 약재를 곱게 가루내어 매번 40g을 쥐고 물에 달여 복용한다. 땀과 사하가 되면 다시 복용하지 않는다.


67. 二聖救苦丹 
이성구고단
川大黃 ( 生 ) 一斤 皂角 ( 豬牙者, 去皮弦, 微炒 ) 四兩.
생 천대황 600g, 저아, 피현을 제거하며 약간 볶은 조각 160g이다.
右爲末, 和勻, 水泛爲丸, 每服三錢, 無根水下. 弱者減服.
위 약재를 가루내어 고르게 섞어서 물이 떠서 환을 만들어 매번 12g을 복용하니 뿌리가 없는 물이 내려간다. 허약자는 감량 복용시킨다.
【註】天行時氣, 即四時不正之氣, 感而爲病者, 初不名疫也.
주 유행성 시기는 사계절의 바르지 않는 기이니 감촉하여 질병이 됨에 초기에 온역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因病氣互相傳染, 老幼相似, 沿門 沿门 [yán mén]:1) 집집마다 2) 한집 한집
闔境 闔境:일정한 구역 안의 전체
而共病之, 故曰: 天行時氣也.
병기가 상호 전염되어 노인, 어린애가 비슷하니 함께 병드니 그래서 천행시기이다.
然此疫氣從鼻而入, 一受其邪, 臟腑皆病, 若不急逐病出, 則多速死.
그래서 이 역기는 코로부터 들어오고 한번 사기를 받으면 5장6부가 다 병들기 때문에 만약 급히 병이 나가게 하지 않으면 많이 빨리 죽게 된다.
急逐之法, 非汗即下, 故古人治疫之方, 以下爲主, 以汗次之, 是爲病尋出路也.
급히 몰아내는 방법은 땀이 아니면 사하하니 그래서 고대 사람이 역병을 치료하는 처방은 사하가 위주이며 발한이 다음이니 이는 병의 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此二方, 一以治冬疫, 一以治春疫 春疫:봄철에 발생하는 열성병. 계절에 관계없이 온사(溫邪)를 받아서 생기는 여러 가지 열병의 총칭. 열이 비교적 가벼우면 온병, 높으면 열병이라 했음. 풍온(風溫), 춘온(春溫), 습온(濕溫), 서온(暑溫), 동온(冬溫), 온독(溫毒) 등이 있음. 발병이 급격하고, 때로 유행성을 띠며, 초기에 많은 열상이 성하게 나타나다가 일정 단계가 되면 겉에서 속으로 들어가 조사(燥邪)가 되어 음(陰)을 상하는 것이 특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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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처방은 하나는 겨울 역병을 치료하며 하나는 봄 온역을 치료한다.
冬疫多寒, 春疫多熱.
겨울 역병은 한기가 많고, 봄 역병은 열기가 많다.
多寒者宜水解散, 方中用麻, 桂, 芍, 草發營衛之汗, 大黃, 黃芩瀉疫毒之邪.
한기가 많으면 수해산이 마땅하며 처방중에 마황, 계지, 작약, 감초의 영위의 땀을 발산하며 대황, 황금으로 역독의 사기를 사한다.
多熱者宜救苦丹, 方中用皂角開竅而發表, 大黃瀉火而攻裏, 使毒亦從汗下而出也.
열기가 많으면 구고단이 의당하며 처방중에 조각을 써서 구멍을 열고 표를 발산하며 대황의 화를 끄며 리를 공격하며 독이 또한 발한과 사하를 따라 나가게 된다.
二方審而用之, 治疫之大法可類推矣.
두 처방을 살펴 쓰면 온역을 치료하는 큰 방법을 유추할 수 있다.

68. 天水散 
천수산
一名益元散 一名六一散 治夏時中暑, 熱傷元氣, 內外俱熱, 無氣以動, 煩渴欲飲, 腸胃枯涸者.
천수산은 일명 익원산이며 일명 육일산으로 여름의 중서를 치료하며 열이 원기를 손상하여 안팎이 모두 열남과 움직일 기가 없고 번갈로 물 마시려고 하며 위장이 마름을 치료한다.
又能催生下乳, 積聚水蓄, 裏急後重, 暴注下迫者宜之.
천수산은 또 젖을 잘 나오게 하며 적취의 물이 쌓임과 속이 댕기며 뒤가 묵직하며 폭급의 설사로 아래가 핍박됨에 의당하다.
桂府滑石 ( 水飛 ) 六兩 甘草一兩 辰砂三錢.
수비한 계부활석 240g, 감초 40g, 진사 12g이다.
右爲細末, 新汲水一碗, 調服三錢.
위 약재를 곱게 가루내어 새로 물길은 것 1사발에 12g을 조복한다.
저자:오겸 (吳謙)
인명. 중국 청나라 때의 명의. 자(字)는 육길(六吉)이며 당시의 안휘성(安徽省) 흡현(歙縣) 사람. 건륭(乾隆) 연간(1736) 이후에 벼슬이 태의원판(太醫院判)에 이르렀고, 유유탁(劉裕鐸)과 함께 청나라 때 가장 큰 종합 의서인 『의종금감(醫宗金鑑)』을 편찬하였다. 그 내용은 의학 각과 15종이 들어 있는데, 그 중에 『정정상한론주(訂正傷寒論注)』, 『정정금궤요략주(訂正金匱要略注)』는 오겸의 자편(自編)이다. 전체적으로 실질적인 임상을 중시하여 도(圖), 설(說), 방(方), 논(論)을 구비하고, 많은 가결(歌訣)을 덧붙여 태의원의 교본으로 사용하였다. 내용이 풍부하고 편차(編次)가 분명하며, 논술이 간명하고 선방(選方)이 무난하여, 후대에 매우 호평을 받아 널리 퍼졌다.

번역자: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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