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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라 불리는 전한나라역사 서한연의 16회-20회 4

초한지라 불리는 전한나라역사 서한연의 16회-20회 4 한문 및 한글번역 중국소설「서한연의」는 중국 간행본을 국내에 직접 들여온 경우도 있지만, 국내에서 漢文筆寫本, 板刻本, 活字本등으로 제작되어 유통되었다. 한문필사본은 역사적인 ‘演義’의 성격을 지녔다. 국문번역본의 경우에는 중국 간행본을 들여와 거의 直譯수준의 번역을 통해 읽혔는가 하면, 압축된 번역을 통하여 판각본으로, 또는 活字本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판각본의 경우에는 흥미 있는 장면 위주로 사건을 재편성하고 있다. 活字本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인물이나 사건으로 제목을 삼아 제작되면서, 내용도 독자들의 흥미에 맞게 각각 번역 또는 개작되었다. 광복이후에는 「楚漢志」로 더 유명해졌다. 김기진의 「統一天下」가 등장한 이후 최근의 이문열의 「초..
초한지라 불리는 전한나라역사 서한연의 16회-20회 4 한문 및 한글번역
중국소설「서한연의」는 중국 간행본을 국내에 직접 들여온 경우도 있지만, 국내에서 漢文筆寫本, 板刻本, 活字本등으로 제작되어 유통되었다. 한문필사본은 역사적인 ‘演義’의 성격을 지녔다. 국문번역본의 경우에는 중국 간행본을 들여와 거의 直譯수준의 번역을 통해 읽혔는가 하면, 압축된 번역을 통하여 판각본으로, 또는 活字本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판각본의 경우에는 흥미 있는 장면 위주로 사건을 재편성하고 있다. 活字本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인물이나 사건으로 제목을 삼아 제작되면서, 내용도 독자들의 흥미에 맞게 각각 번역 또는 개작되었다. 광복이후에는 「楚漢志」로 더 유명해졌다. 김기진의 「統一天下」가 등장한 이후 최근의 이문열의 「초한지」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유명 작가들의 힘을 빌려 탄생한 「초한지」는 번역본이 아닌 새로 개작된 역사소설이다. 이처럼 「西漢演義」는 우리 文學史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예시문
여이기가 말했다. “공은 지금 이 예를 받지 않으면 이는 패공과 정을 끊음입니다. 다른날 천하의 제후가 관문에 도달하여 힘을 합쳐서 공격하면 이 관은 종내 지키기 어려우니 공들은 어떻게 얼굴을 보겠습니까? 금일 이 예를 받으면 뒷날의 정이 됨만 못하니 공들이 그것을 생각해 주십시오!”
榮曰:“且權 且權:잠시, 동작이나 행위가 잠시 발생하는것
收此禮,仍望沛公與衆諸侯講和罷兵,免致生靈塗炭。此則 此則은 원문에는 없다.
先生之盛德也 注 好貪之人 每每口中不肯承順 今世事情 皆始于賊而終千金矣 哈哈 호탐지인 매매구중불긍승순 금세사정 개치우적이종천금의 합합
哈(물고기 많은 모양 합; ⼝-총9획; hā,hǎ,hà)哈[hāha] :1.하하. (웃음소리를 나타냄) 2.농담하다. 웃기다. 놀리다. 장난치다.
탐욕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번 입으로는 따르길 긍정하지 않으니 지금 세상의 사정이 모두 적에서 시작하여 천금으로 끝난다. 하하
。”
영왈 차권수차례 잉망패공여중제후강화파병 면치생령도탄. 차즉선생지성덕야.
한영이 말했다. “잠시 이 예물을 거두고 패공과 여러 제후들이 강화하고 병사를 물림을 기다려야 생령이 도탄에 빠짐을 막습니다. 이러면 선생의 성대한 덕일 것입니다.”
食其曰:“某即與諸侯轉道此意,吾料沛公長者 長者:점잖고 너그러운 사람. 곧 덕망이 뛰어나고 노성한 사람. 또는 사람 해치기 좋아하지 않는 이
,必能見從也。”
이기왈 모즉여제후전도차의 오료패공장자 필능견종야.
여이기가 말했따. “저희들은 제후에게 이 뜻을 전해 말하면 저는 패공은 덕이 많은 장자라고 생각하니 반드시 이 견해를 따를 것입니다.”  
食其辭榮,回見沛公,備道前情 前情[qiánqíng] :1.옛정. 2.(사건 발생) 이전의 상황.

이기사영 회견패공 비도전정.
여이기가 한영에게 말하고 가며 패공을 돌아와 보니 자세히 앞의 정황을 말했다.
張良曰:“可乘此機會,正好用計。陸續 陸續 :계속(繼續)하여 끊이지 않음
差薛歐與陳沛帶領十數人,卻從山後小路潛過關去,遍山放起火來;我卻令樊噲引兵在關前攻打,使他兩處不能救應,決棄關而走,吾兵可過矣!”
장량왈 가승차기회 정호용계 육속차설구여진패대령십수인 각종산후소로잠과관거 편산방기화래. 아각령번쾌인병재관전공타 사타양처불능구응 결기관이주 오병가과의.
장량이 말했다. “이 기회를 틈타서 바로 계책을 사용하기 좋습니다. 계속해서 설구와 진패를 시켜 십수명을 데리고 산뒤의 좁은 길로부터 몰래 관을 지나가서 온 산에 불을 놓습니다. 나는 번쾌를 시켜 병사를 인솔하고 관문 앞에서 공격하면 그로 하여금 두 곳에서 구원을 응하지 못하고 결단코 관문을 버리고 달아날 것이니 우리 병사가 지나갈 수 있습니다!”
沛公曰:“甚善。”
패공왈 심선.
패공이 말했다. “매우 좋소.”
於是令薛歐、陳沛帶領十數人,各挑柴擔 擔(멜 담; ⼿-총16획; dān,dǎn,dàn)의 원문은 担(떨칠, 치다 단; ⼿-총8획; dān,dàn)이다.
,中間暗藏火炮,從小路潛過關去,已三日矣.
어시령설구 진패대령십수인 각도시담 중간암장화포 종소로잠과관거 이삼일의.
이에 설구, 진패를 시켜 십수명을 데리고 각자 땔나무를 매고 중간에 몰래 화포를 감추어서 좁은 길로 몰래 관문을 지난지 이미 3일이었다.
卻令樊噲等將大張旗幟,鼓噪前進,兼力攻打。
각령번쾌등장대장기치 고조전진 겸력공타.
번쾌등을 시켜 크게 기치를 펼치고 북을 시끄럽게 울리며 전진하고 힘을 겸하여 공격하게 했다.
不想韓榮自受金之後,終日飲酒,通 毫(가는 털 호; ⽑-총11획; háo)의 원문은 通(통할 통; ⾡-총11획; tōng,tǒng)이다.
無准備,一見兵到來,急欲出馬,早有人來報,關後火起,已有人入關;
불상한영자수금지후 종일음주 통무준비 일견병도래 급욕출마 조유인래보 관후화기 이유인입관.
생각지 않은 한영은 금을 받은 이후로 종일토록 음주하고 온통 방비가 없다가 한번 병사가 옴을 보고 급히 말에 올라 나오려는데 일찍 사람이 와서 보고하길 관문 뒤에 불이 일어나 이미 다른 사람이 관문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又見砲聲不絶,韓榮恐惶,未及對敵。
우견포성부절 한영공황 미급대적.
또 대포소리가 끊이지 않음을 보고 한영이 두려워서 대적하지도 못했다.
樊噲等搶 搶(닿을, 이르다 창; ⼿-총13획; qiǎng,qiāng,qiàng)
上關來,大殺秦兵,韓榮等星夜逃走,追至藍田 란톈 [Lantian, 藍田(남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 있는 현(縣). 중국 산시성 시안시 동부 웨이수이강[渭水] 평원의 남부, 친링산[秦嶺山] 북쪽 기슭에 위치한다. 시안과의 거리는 45km이다.
,遂屯住人馬。
번쾌등창상관래 대쇄진병 한영등성야도주 추지남전 수둔주인마. 
번쾌등이 관문으로 올라가니 크게 진나라 병사를 죽이고 한영등은 밤에도 도주하여 남전에 추격이 이르니 곧 인마를 주둔시켰다.
卻說韓榮收集敗兵,整頓隊伍,來與沛公決戰,公令夏侯嬰與戰.
각설한영수집패병 정돈대오 래여패공결전 공령하후영여전.
각설하고 한영은 패잔병을 수습하여 대오를 정돈하고 와서 패공과 결전을 하려는데 패공은 하후영을 시켜 교전하게 했다.
後 復(다시 부{돌아올 복}; ⼻-총12획; fù)의 원문은 後(뒤 후; ⼻-총9획; hòu)이다.
驅大勢 隊(대 대; ⾩-총12획; duì)의 원문은 勢(기세 세; ⼒-총13획; shì)이다.
人馬,一湧殺出,榮大敗,走入咸陽。
후구대세인마 일용쇄출 영대패 주입함양.
뒤에 대세의 군인과 말을 몰아서 한번 용솟음쳐 쇄도하니 한영이 대패하고 함양에 달아나 들어갔다.
是時乙未年冬十月,五星 墾(따비할 간; ⼟-총16획; kěn)의 원문은 星(별 성; ⽇-총9획; xīng)이다.
聚於東井 정수(精宿)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별자리며 흔히 동쪽 우물이란 뜻으로 동정(東井)이라 하였고 남자들의 첫 경험에서 얻어지는 사정을 동정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시시을미년동시월 오성취어동정.
이 때 을미년[기원前207年] 겨울 10월로 5별이 동정에 모였다.
沛公領兵追至灞上。
패공령병추지패상.
패공은 병사를 시켜 패상까지 추격해 이르게 했다.
三世正坐著,韓榮敗走回,入奏前事.
삼세정좌착 한영패주회 입주전사.
3세황제는 바로 앉았다가 한영이 패주하여 돌아오니 들어와 앞의 일을 상주하게 했다.
三世聞知大驚,謂群臣曰:“此事如何?”
삼세문지대경 위군신왈 차사여하?
3세황제는 들어 알고 매우 놀라서 여러 신하에게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오?”
有上大夫畢革出班奏曰:“事已危極矣!陛下可急救一城生靈,暫屈迎候軹道 軹道: 지금의 중국 협서성(陝西省) 함향현(咸陽縣)에 있는 정자입니다. 진나라 말기에 유방(한나라를 세운 사람, 한고조)이 함양에 들어갈 때에 진나라 왕 자영(子嬰)이 여기에서 항복하였다.
,庶免自身夷族之禍。”
유상대부필혁출반주왈 사이위극의. 폐하그급구일성생령 잠굴영후지도 서면자신이족지화.
상대부 필혁이 반열을 나와서 상주하여 말했다. “일이 이미 위태로움이 지극합니다! 폐하께서는 급히 한 성의 생명을 구제하시고 잠깐 굽히어 지도에서 맞이하셔야 자신과 종족이 죽음을 면할 수 있습니다.”
於是秦王子嬰大哭,依言以素車 素車ː흰 포장을 치거나 장식을 하지 아니한 수레. 장례 때 쓴다
馬系頸,以組封皇帝符璽 符璽 : 國璽,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 사용하던 임금의 도장
,出宮至軹道傍,接著沛公。
어시진왕자영대곡 의언이소거마계경 이조봉황제부새 출궁지지도방 영저패공.
이에 진나라 왕 자영은 크게 통곡하고 말대로 흰 수레말에 목을 매고 궁을 나와 지도 곁에 이르러서 패공을 영접하였다.
沛公大喜,與秦王施禮訖。
패공대희 여진왕시례흘.
패공이 크게 기뻐서 진나라왕과 함께 예를 마쳤다.
王曰:“嬰在位無德,聞將軍車駕征西,情願 情願 :진정(眞情)으로 바람
拜降,以安萬民。”
왕왈 영재위무덕 문장군거마정서 정원배항 이안만민.
진나라 왕이 말했다. “저 영이 재위하여 무덕해서 장군의 거마가 서쪽으로 정벌한다고 듣고 정은 절하고 항복하여 만민을 편안케 하길 원합니다.”
言訖,將玉璽符組與沛公,沛公受了,言曰:“爾等既降,吾奏義帝 義帝, ? ~ BC 206] :중국 진(秦) 말기, 다시 세워진 초(楚)의 왕으로 반진(反秦) 세력의 상징적인 맹주(盟主) 구실을 하였다. 처음에는 회왕(懷王)이라는 칭호를 썼지만, 진(秦) 멸망 후에 의제(義帝)로 바꾸었다. 성(姓)은 미(芈)
,不害汝之命。”
언흘 장옥새부조여패공 패공수료 언왈 이등기항 오주의제 불해여지명.
말을 마치고 옥새와 부조를 패공에게 주고 패공이 받고 말했다. “너희들이 이미 항복해서 내가 의제께 상주하여 너희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
言訖,乃以屬吏 屬吏:①하급(下級) 관리(官吏) ②관에 속(屬)하는 하례(下隷)
待義帝詔,遷於何地,秦三世王聽畢去訖。
언흘 내이속리대의제조 천어하지 진삼세왕청필거흘.
말을 마치고 관리에 부탁해서 의제의 조서를 기다리게 하고 하지로 옮기고 진나라 3세황제는 명령을 듣고 갔다.
諸將曰:“秦王苦虐萬民,罪不容誅,沛公何故縱之?”
제장왈 진왕고학만민 죄불용주 패공하고종지?
여러 장수가 말했다. “진나라 왕은 여러 백성을 고통스럽게 학대하여 죄를 죽임을 용납하지 않는데 패공께서 어찌 그를 놓아주셨습니까?”
公曰:“始懷王遣我,固以我能寬容,而使我西略至此也;且人已降服,殺之不祥也。”
공왈 시회왕견아 고이아능관용 이사아서략지차야. 차인이항복 살지불상야.
패공이 말했다. “처음 회왕께서 나를 보낼때 진실로 나를 관용을 하게 하며 나를 시켜 서쪽으로 침략해 이곳에 이르게 했습니다. 또 진나라 사람이 이미 항복했는데 죽임은 상서롭지 않습니다.”
於是弗聽。
어시불청.
패공은 이에 듣지 않았다.
入城安民,犒賞三軍。
입성안민 호상삼군.
성에 들어가 백성은 편안케 하며 3군에 음식을 주어 위로하였다.
西秦自莊襄王至子嬰 合四十三年 子嬰爲王四十三日而降于漢
서진자장양왕지자영 합사십삼년 자영위왕사십삼일이항우한.
서진은 장양왕에서 자영까지 합해서 43년이며 자영은 왕노릇을 43일을 하여 한나라에 항복했다.
論 진나라의 과오를 논함(過秦論)의 발췌임
曰 秦孝公據肴 肴(안주 효; ⾁-총8획; yáo)의 원문은 殺(죽일 살; ⽎-총11획; shā,shài)이다.
효함은 (肴山)과 함곡관(函谷關)
函之固,擁雍州 雍(누그러질 옹; ⾫-총13획; yōng)州:중국에서, 우(禹)의 구주(九州) 가운데 현재의 산시 성(陝西省), 간쑤 성(甘肅省), 칭하이 성(靑海省)에 있던 행정 구역
之地 君臣固守,而窺周室는 원문에 없다.
。有席卷天下,包舉宇宙 內(안 내; ⼊-총4획; nèi)의 원문은 宙(집 주; ⼧-총8획; zhòu)이다.
,囊括 囊括[nángkuò] :모든 것을 망라[포괄]하다. 독점하다. 다 차지하다.
四海 之志는 원문에 없다.
,並吞八荒 八荒:팔방(八方)의 멀고 넓은 범위, 곧 온 세상을 이름. 일명 팔굉(八紘)•팔방(八方)•팔극(八極)
之心。
논왈 진효공거효함지고 옹옹주지지 유석권천하 포거우주 낭괄사해 병탄팔황지심.
논의해서 말하길 진나라 효공이 효산과 함곡관의 견고함에 근거하여 옹주의 땅을 안았다. 천하를 석권하여 우주를 포괄하고 천하를 차지하고 우주를 병탄할 마음이 있었다.
及至始皇,奮六世之餘烈 餘烈 :①조상(祖上)이 대대(代代)로 남겨 놓은 일 ②일을 마친 뒤에 아직 남아 있는 독기(毒氣)
,振長策而駑 禦(막을 어; ⽰-총16획; yù)의 원문은 駑(둔할 노; ⾺-총15획; nú)이다.
宇宙 內(안 내; ⼊-총4획; nèi)의 원문은 주이다.
,吞二周而亡諸侯,履至尊而制六合,執敲 搞(옆으로 칠 고; ⼿-총13획; gǎo)의 원문은 敲(두드릴 고; ⽁-총14획; qiāo)이다.
朴以鞭笞天下,威振四海,南取百越 粵(말 내킬 월; ⽶-총13획; yuè)의 원문은 越(넘을 월; ⾛-총12획; yuè)이다.
百越(粤):어월(於越) ·민월(閩越:東越) ·구월(甌越) ·남월(南越) ·양월(楊越) ·산월(山越) ·낙월(駱越) 등이 알려져 있다. 광둥성[廣東省] 중의 위에둥[粤東] ·위에시[粤西] ·위에중[粤中] ·위에베이[粤北] 등은 여기서 연유한다.
之地,以爲桂林 桂林, Guilin)은 중국 광시 좡족자치구廣西莊族自治區 북동부에 위치한 계림은 일찍이 진(秦)나라 때부터 발달한 화난 최고의 도시. 계림이라는 지명의 명칭은 이곳이 예로부터 계수나무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짐. 현급 시(市)로서 후난 성[湖南省]과의 경계부분에 있는 구이린 지구의 행정중심지이다. 시장 강[西江]의 지류인 구이장 강[桂江]의 서쪽 유역에 있으며, 구이장 강 분지의 자연도로가 지나가는 중심부이다. 이 도로는 중국 중부와 광둥 성[廣東省]을 연결하는 모든 길 중에서 가장 편리한 노선으로, 후난 성[湖南省]의 샹장 강[湘江] 상류와 구이장 강 상류 사이의 구간이다. 구이린은 이 길 남쪽에 있다. 위의 두 강은 일찍부터 거대한 링취 운하[靈渠]로 연결되어 조그만 배들이 이 수계를 넘나들 수 있었다. 진(秦:BC 221~206)의 시황제(始皇帝)는 광둥 지방에 있던 남월(南越)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군대를 이동시키면서 이 길을 이용했고, 이때 이 지역에 행정기관을 설치했다고 한다. BC 1세기 한나라(BC 206~AD 220) 때, 이곳에 현청소재지를 설치하고 시안(始安)이라고 불렀다. 지금 쓰이는 현의 이름 린구이는 당대(618~907)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명·청대(1368~1911)에는 구이린 부(府)로 되었으며, 청대에는 광시 성[廣西省]의 성도(省都)가 되기도 했다. 1912년에는 현으로 격하되었고, 성도는 난닝[南寧]으로 바뀌었다. 1936년에 다시 성도로 되었지만, 1949년에 다시 난닝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象郡 象郡: 지금의 광서 숭좌현<崇左縣>, 베트남 북부의 설도 있다.

급지시황 분육세지여열 진장책이노우주 탄이주이망제후 리지존이제육합 집고박이편태천하 위진사해 남취백월지지 이위계림상군.
시황제때에 이르러서 6세대로 나머지 조상이 남긴 유업을 떨치고 장구한 정책으로 천하를 달리고 2주나라[東周, 西周]를 병탄하고 제후를 망하게 하며 지존을 밟아서 6합을 통제하여 통나무를 잡아 두드려 천하를 때리고 위엄이 사해에 진동하며 남쪽으로 백월의 땅을 취하며 계림과 상군을 삼았다.
百越之君,俛首系頸,委命 委命 :목숨을 맡김. 마음을 천운(天運)에 맡김
下吏,乃使蒙恬 乃使蒙恬은 원문에는 없다.
北築長城而守藩籬,卻匈奴七百餘里。
백월지군 면수계경 위명하리 내사몽염북축장성이수번리 각흉노칠백여리.
백월의 군주는 머리를 숙이고 목을 매어 오고 명령을 따라 관리를 보내고 몽염을 시켜 북쪽으로 장성을 쌓게 하여 울타리로 지키게 하며 흉노를 7백여리를 물러나게 했다.
胡人不敢南取 下(아래 하; ⼀-총3획; xià)의 원문은 取(취할 취; ⼜-총8획; qǔ)이다.
而牧馬,士不敢彎弓 彎弓:1. 활을 당김. 2. 굽은 활
而報怨。
호인불감남취이목마 사불감만궁이보원.
오랑캐 사람은 감히 남쪽을 취하지 못하고 말을 길러서 군사는 활을 당겨서 원한을 갚을 필요가 없었다.
종성 자 백경(伯敬). 호 퇴곡(退谷). 후베이성[湖北省] 장링[竟陵] 출생. 동향의 친구 담원춘(譚元春)과 더불어 경릉파를 형성하여 그 중심인물이 되었다. 명나라 만력연간(萬曆年間)에 원굉도(袁宏道) 등 공안파(公安派)들이 자신의 심정을 평명하게 읊었지만 너무 부박(浮薄)으로 흐른 탓에 그 폐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유심(幽深) ·기취(奇趣)가 넘치는 시의 창조를 제창하였다. 담원춘과 《고시귀(古詩歸)》 《당시귀(唐詩歸)》를 공편하고, 선록(選錄)한 시인과 시에 비평을 달았다. 그의 시는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중요시하였으며, 그 표현 기교에 지나친 나머지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에 《은수헌집(隱秀軒集)》 54권이 있다.
번역자는 서울 신촌에서 이미지 한의원[www.imagediet.co.kr]을 운영하는 한방 피부과 전문의이며 흉터 튼살을 치료하는 한의사이며 번역가인 홍성민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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