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라 불리는 전한나라역사 서한연의 6회-10회 2 한문 한글번역 주석
예시문
卻說劉邦自斬蛇之後,四方歸附者數百人,威聲 威聲 :위력(威力) 있는 명성(名聲)
稍振。
각설유방자참사지후 사방귀부자수백인 위성초진.
각설하고 유방이 벰을 벤 이후부터 사방에서 귀순하여 붙은 사람이 수백명으로 위세와 명성이 조금 진동하였다.
有沛縣吏蕭何蕭何: 장쑤성[江蘇省] 패군(沛郡) 풍현(豊縣) 출생. 한신(韓信) ·장량(張良) ·조참(曹參)과 함께 고조의 개국공신이다. 진(秦)나라의 하급관리로 있으면서, 일찍이 고조 유방이 무위무관(無位無官)일 때부터 접촉을 가졌다. 유방이 진나라 토벌의 군사를 일으키자 종족 수십 명을 거느리고 객원으로서 따르며 모신(謀臣)으로 활약하였다.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에 입성하자 진나라 승상부(丞相府)의 도적문서(圖籍文書)를 입수하여 한(漢)나라 왕조 경영의 기초를 다졌다. 한나라 유방과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싸움에서는 관중(關中)에 머물러 있으면서 고조를 위하여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확보했으므로, 고조가 즉위할 때에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으뜸가는 공신이라 하여 찬후(酇侯)로 봉해지고 식읍(食邑) 7,000호를 하사받았으며, 그 일족 수십 명도 각각 식읍을 받았다. 뒤에 한신 등의 반란을 평정하고 최고의 상국(相國)에 제수되었다. 재상 시절 진나라의 법률을 취사(取捨)하여 《구장률(九章律)》을 편찬하였다.
、曹參曹參: 패군(沛郡:江蘇省) 출생. 원래 진(秦)나라의 옥리(獄吏)였으나, 유방(劉邦)이 거병(擧兵)하자 그를 따라 한신(韓信)과 더불어 주로 군사면에서 활약하였다. 몸에 70여 군데의 상처가 있으면서도 진군을 공략하여 한(漢)나라의 통일대업에 이바지한 공으로 건국 후에는 평양후(平陽侯)로 책봉되고, 그 후 경포(黥布:英布)의 반란 등을 평정하였다. 고조가 죽은 뒤에는 공을 다투던 소하(肅何)의 추천으로 그 대신 상국(相國:領議政)이 되어 혜제(惠帝)를 보필하였다. “소하는 정연한 법령을 만들고, 조참은 그를 이어받아 준수하며 청정한 정치를 하였다”는 뜻의 노래가 당시 시정에 있었다고 한다.
,見秦益暴虐,賦役煩重,欲議扶沛令,聚衆背秦,乃令樊噲召邦,同其商議。
유패현리소하 조참 견진익포학 부역번중 욕의부패령 취중배진 내령번쾌소방 동기상의.
패현의 관리인 소하와 조참이 있는데 진나라가 더욱 포학하며 부역이 번거롭고 중함을 보고 패 현령을 도와서 여럿을 모아서 진나라를 배신하여 번쾌를 시켜 유방을 부르게 하며 상의를 함께 하였다.
邦同噲領數百人赴沛縣來,聲勢赫奕 赫(붉을 혁; ⾚-총14획; hè)奕(클 혁; ⼤-총9획; yì): 혁혁. 아름답게 빛남. (동의어)かくやく
,沛令驚悔,乃召蕭 曹曰:“爾假以扶我爲名,卻結引外兵,是招虎爲翼,反生內患,侵奪之禍,汝輩起之也。”
방동쾌령수백인부패현래 성세혁혁 패령경회 내소소조왈 이가이부아위명 각결인외병 시초호위익 반생내환 침탈지화 여배기지야.
유방은 번쾌와 수백명을 인솔하고 패현에 이르러서 명성과 세력이 크고 빛나서 패의 현령이 놀라고 후회하여 소하와 조참을 불러서 말했다. “너희들은 가짜로 나를 도움을 명분으로 외부 병사와 결탁해 끌어들여서 호랑이를 불러서 날개를 붙여주어 반대로 내환을 생성하니 침탈의 화는 너희들이 일으킨 것이다.”
屢次要斬,衆人勸免,是夜,蕭、曹糾合心腹數十人,越城投邦 聚 舉(들 거; ⾅-총17획; jǔ)의 원문은 聚(모일 취; ⽿-총14획; jù)이다.
議,因進言曰:“沛令庸才,不足與議大事。公今聲勢浩大 浩大[hàodà]:(기세·규모·수량 등이) 엄청나게 크다[많다]. 성대하다. 거대하다. 비슷한말:盛大
,若乘此得沛城,暫屯人馬,漸次招撫 招撫 :불러서 무마함. 불러다가 어루만져 위로(慰勞)함. 초래(招徠)
逃亡在外之人,倡爲義舉,四方响 響(울림 향; ⾳-총22획; xiǎng)의 원문은 响이다.
應,天下可圖也。”
누차요참 중인권면 시야 소 조 규합심복수십인 월성투방 취의 인진언왈 패령용재 부족여의대사. 공금성세호대 약승차득패성 잠둔인마 점차초무도망재외지인 창위의거 사방향응 천하가도야.
현령이 누차 벨려고 하나 여러사람이 면함을 권하니 이날 밤에 소하, 조참이 심복 수십명을 규합하고 성을 넘어서 유방에게 투항하여 모여 의논하며 진언하였다. “패땅의 현령은 보통 인재로 큰 일을 의논하기에 부족합니다. 공께서는 지금 명성과 세력이 크니 만약 이 틈을 타서 패성을 얻으면서 잠깐 사람과 말을 주둔하면서 점차 도망해 밖에 있는 사람을 불러 위로하면서 의거라고 주창하면서 사방에 메아리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邦曰:“賢公若肯俯從大義,必須賺開沛城,襲殺沛令,立賢主以從人望,然後大事可成也 注 好詐 호사
좋은 사기이다
。二公計將安出?”
방왈현공약긍부종대의 필수잠개패성,습살패령,립현주이종인망,연후대사가성야 이공계장안출?
유방이 말하길 “그대들은 만약 대의를 따르려면 반드시 잠깐 패성을 속여 열게 하며 패의 현령을 습격해 죽이고 현명한 주인을 세워서 사람의 명망을 따른 연후에 큰 일이 이룰 수 있소. 두 공의 계책은 무엇입니까?”
蕭何曰:“城中父老 父老[fùlǎo]:부형(父兄)이라고도 한다. 일반주민인 자제(子弟)에 상대되는 것으로 이사(里社)의 제사 감독과 지도 및 리(里)의 토목공사 등 공동작업을 통할하였고 부세(賦稅)의 징집에도 관계하였다. 한(漢)나라 때 설치되었던 향삼로(鄕三老) ·현삼로(縣三老) 등은 권력으로 부로를 장악하기 위한 향관(鄕官)이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나이가 많은 어른. 어르신. 노인장.
,正在驚惶之際,若今夜作書,曉諭百姓,陳其利害,束箭射於城中,使其內變,不一二日,城可下也。”
소하왈 성중부로 정재경황지제 약금야작서 효유백성 진기이해 속전사어성중 사기내변 불일이일 성가하야.
소하가 말하길 “성안의 부로들은 바로 경황이 없는 때로 만약 오늘 밤에 서신을 써서 백성을 효유하면서 이해득실을 말하면서 화살다발을 성안에 쏘아서 내변이 일어나게 하면 하루 이틀이 안되어 성을 함락할 수 있습니다.”
邦從其言,即作書,射入城中。書曰:
방종기언 즉작서 사입성중 서왈
유방이 소하의 말을 따라서 곧 서신을 쓰고 성안에 쏘아 보냈다. 서신은 다음과 같다.
天下苦秦苛法久矣!民不聊生 聊生[liáoshēng]:의지하여 생활을 유지하다. 안심하고 살다. 의지하여 믿고 살다.
,豪傑並起。今我倡義 倡義 :(국난(國難)을 당했을 때)의병(義兵)을 일으킴
聚衆,從公議,擇沛主,往應諸侯,以共成大事。如若開城早降,免致屠戮,如若罔順天命,城破之日,玉石俱焚 玉石俱焚[yùshíjùfén] :1.옥과 돌이 함께 불에 훼손되다. 2.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훼손되다[희생되다].
,後悔何及也 주 作事有步次 작사유보차 일을 하에는 걸음의 순서가 있다.
!
천하고진가법구의! 민불료생 호걸병기. 금아창의취중 종공의 택패주 왕응제후 이공성대사. 여약개성조항 면치도륙 여약망순천명 성파지일 옥석구분 후회하급야?
천하가 진나라의 가혹한 법으로 고생한지 오래되었다! 백성은 생활을 하지 못하고 호걸이 함께 일어났다. 지금 내가 의병을 일으키고 대중을 모아서 공정한 의논을 따라서 패의 주군을 선택하여 제후에 가서 상응하면서 큰 일을 함께 이루고자 한다. 만약 성을 열어 일찍 항복하면 도륙당하을 면하게 된다. 만약 천명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성이 함락된 날에 모두 다 죽을 것이니 후회해도 막급이다.
諸父老議曰:“見今劉季勒兵圍城,蕭、曹俱已歸附,恐城破之日,吾父子難保也。”
제부로의왈 견금유계륵병위성 소 조구이귀부 공성파지일 오부자난보야.
여러 부로가 의논하여 말했다. “오늘 유방이 병사를 머물러 성을 포위하니 소하, 조참도 이미 그에게 붙어 귀순하니 성이 함락되는 날에 우리 부자도 보존하기 어려울까 두렵소.”
중국소설「서한연의」는 중국 간행본을 국내에 직접 들여온 경우도 있지만, 국내에서 漢文筆寫本, 板刻本, 活字本등으로 제작되어 유통되었다. 한문필사본은 역사적인 ‘演義’의 성격을 지녔다. 국문번역본의 경우에는 중국 간행본을 들여와 거의 直譯수준의 번역을 통해 읽혔는가 하면, 압축된 번역을 통하여 판각본으로, 또는 活字本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판각본의 경우에는 흥미 있는 장면 위주로 사건을 재편성하고 있다. 活字本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인물이나 사건으로 제목을 삼아 제작되면서, 내용도 독자들의 흥미에 맞게 각각 번역 또는 개작되었다. 광복이후에는 「楚漢志」로 더 유명해졌다. 김기진의 「統一天下」가 등장한 이후 최근의 이문열의 「초한지」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유명 작가들의 힘을 빌려 탄생한 「초한지」는 번역본이 아닌 새로 개작된 역사소설이다. 이처럼 「西漢演義」는 우리 文學史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영향력을 넓혀나갔다.
번역자는 서울 신촌에서 이미지 한의원[www.imagediet.co.kr]을 운영하는 한방 피부과 전문의이며 흉터 튼살을 치료하는 한의사이며 번역가인 홍성민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