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역사소설 민국통속연의 상 6회-10회 2
예시문
却說清太保世續, 召袁總理世凱入宮, 當由隆裕后問及優待條件, 曾否寄往南方?
각설청태보세적 소원총리세개입궁 당유융유후문급우대조건 증부기왕남방
寄(부칠, 보내다, 맡기다 기; ⼧-총11획; jì)
각설하고 청나라 태보 세적은 총리 원세개가 입궁하게 불러 융유태후는 우대조건을 물어 일찍이 남방에 전별을 보냈는가 물었다.
袁總理答云:“未曾。”
원총리답운 미증
원총리가 대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明明是欺弄孤兒寡婦, 安有外人盡知, 尙說未曾寄往耶?)
명명시기농고아과부 안유외인진지 상설미증기왕야
분명히 고아와 과부를 농락함이니 어찌 외부인은 다 아는데 아직 일찍이 전별을 보내지 않았따고 하는가?
隆裕后淒然道:“這個局面, 看來是難免了, 煩你寄去交議罷。”
융유후처연도 저개국면 간래시난면료 번니기거교의파
융유태후가 처량하게 말했다. “이런 국면은 보기에 면하기 어려우니 당신이 기별해 논의하게 해주십시오.”
袁總理道:“事關重大, 且再商諸近支王公, 再行定奪。”
원총리도 사관중대 차재상저근지왕공 재행정탈
近支(儿) [jìnzhī] ① (혈연 관계가) 가까운 동족(同族) ② 가까운 일가
원총리가 말했다. “일이 중대함과 관련하니 다시 가까운 왕공과 상의하고 다시 처리를 시행하겠습니다.”
(何必做作。)
하필주작
하필 조작을 하는가?
隆裕后道:“近支王公, 多半遠揚, 還有甚麼可議?”
융유후도 근지왕공 다반원양 환유심마가의
융유태후가 말했다. “가까운 왕공은 태반이 멀리서 왔으니 다시 무엇을 논의합니까?”
說罷, 掩面悲啼, 袁總理也顧不得甚麼, 竟大踏步出宮, 電致南方伍代表去了。
설파 엄면비체 원총리야고부득심마 경대답보출궁 전치남방오대표거료
말을 마치고 얼굴을 가리고 슬프게 우니 원총리는 무엇을 돌아보겠는가? 마침내 큰 걸음으로 궁궐을 나와 만방의 오대표에게 전보를 치러 갔다.
蔡東藩(1877年-1945年),名郕,字椿壽,號東藩,中國清朝至民國年間浙江省山陰縣臨浦(今屬蕭山)人,著名演義小說作家、曆史學家。
채동번의 이름은 성이며 자는 춘수 호는 동번이며 중국 청나라에서 민국연간에 절강성 산음현 임포[지금의 소산에 속함]사람이며 연의 소설작가 역사학자로 유명하다.
20歲前中秀才,清末以優貢生朝考入選,調遣爲福建省以只縣候補,不久即因厭惡官場稱病回家,以教書和行醫爲生,編有《中等新論說文選》、《內科臨症歌訣》以及《留青別集》、《留青新集》《風月吟稿》、《寫憂集》等文學作品,從1916年開始,到1926年爲止,蔡東藩用10年的心血,以豐富的學識和驚人的毅力完成了前漢、後漢、兩晉、南北朝、唐史、五代史、宋史、元史、明史、清史、民國共11部曆史通俗演義,合稱《曆朝通俗演義》(又稱《中國曆代通俗演義》),時間跨越兩千餘年,又著有《西太后演義》(又稱《慈禧太后演義》),增訂清初呂安世所著《二十四史演義》,其一生共著書13部,撰寫700餘萬字,篇幅之巨堪稱曆史演義的奇跡,被譽爲“一代史家,千秋神筆”。
20세 전에 과거 수재로 청나라 말기에 우공생조고로 들어가서 복건성 지현후보로 파견되어 오래지 않아 나쁜 관리가 활개침을 싫어하여 병을 핑계로 집에 돌아가 글을 가르치고 의학을 함으로 생업을 하여 중등신론설문선 내과임증가결과 유청별집, 유청신집, 풍월급고, 사우집등의 문학작품을 시작하여 1916년에 시작하여 1926년에 마치고 채동번은 10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풍부한 학식과 사람을 놀라게 하는 힘으로 전한, 후한, 양진, 남북조, 당사, 오대사, 송사, 원사, 명사, 청사, 민국 모두 11부의 역사통속연의를 지어 역조통속연의라고 칭하며[또 죽국 역대 통속연의라고 한다], 2천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또 서태후연의[자희태후연의라고도 한다] 청나라 초기에 여안세가 지은 24사통속연의를 증보하니 일생에 모두 13부를 짓고 700여만자를 편찬해 써서 거질의 역사 연의를 짓는 기적을 만들어 일대의 역사가이며 천년의 신필이라고 명예를 받았다.
번역자 튼살 흉터를 치료하는 www.imagediet.co.kr 자향미한의원 홍성민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