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草思辨錄본초사변록은 중국 청나라 주암(周岩)이 편찬하여 1904년에 간행된 본초학서로, 전 4권이며, 주로 『상한론(傷寒論)』과 『금궤요략(金匱要略)』의 2책 중에 있는 입방(立方) 의의에 근거하여 128종 약물의 약성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현재 『진본의서집성(珍本醫書集成)』본에 들어 있는 책임
예시문
“下利腹脹滿, 身體疼痛者, 先溫其裏, 乃攻其表, 溫裏宜四逆湯。功表宜桂枝湯”一條, <金匱>亦載入。
하리로 복부가 창만하고 신체가 아프면 먼저 리를 따뜻하게 하며 표를 공격해야 하니 리증을 온난하게 하는데 사역탕이 의당하다. 표를 공격하면 계지탕이 마땅하다는 한 조문은 금궤요략에 또 기재되어 들어있다.
竊疑本系雜證而復出於<傷寒論>者。
가만히 본래 잡증에 연계되며 다시 상한론에서 나온 것이다.
“下利”之下, <金匱>多一“後”字, 蓋太陰所受寒濕下利之後, 脾陽式微, 腹故脹滿。
式微:① 쇠미하다 ② 쇠락하다 ③ 쇠퇴하다;사물의 흥성하다 쇠락함을 지시함
하리의 아래에 금궤요략에 많이 ‘뒤 後후’란 글자가 있으니 태음병에 한습을 받아 하리한 뒤에 비양이 쇠미하여 복부가 그래서 창만함이다.
外則經氣亦虛, 風邪乘之, 與裏濕相搏, 體爲之痛。
외증은 경기도 또한 허약하며 풍사가 그 틈을 타서 리의 습기와 상박하니 몸이 아프게 된다.
然經臟並治非法, 以四逆湯先溫其裏, 則寒濕去而表邪亦孤。
그렇다면 경과 장을 같이 치료함이 방법이 아니라 사역탕으로 먼저 리를 따뜻하게 하며 한습이 제거되면 표사도 또한 고립된다.
後以桂枝湯解肌散風而和營衛, 自易如反掌。
뒤에 계지탕으로 기육을 풀고 풍사를 발산하며 영과 위를 조화롭게 하면 손바닥 뒤집듯 저절로 쉬워진다.
不云“發汗”者, 卽<金匱>所謂“但微微似欲汗出者, 風濕俱去也。”
발한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금궤요략에서 말한 단지 미미하게 땀을 내려고 함은 풍사와 습사가 모두 제거됨이라고 말했다.
更有用桂枝湯於婦人妊娠者, <金匱 婦人妊娠篇>第一條, 妊娠至六十日不能食, 自屬阻病。
*惡阻는 한의학적으로 ≪千金要方≫에 서는 ‘阻病’, ≪經效産寶≫에서는 ‘子病’, ≪坤元是保≫에서는 ‘病食’이라 하였다
다시 계지탕을 부인 임신에 사용함은 금궤 부인임신편 제 일 조문으로 임신으로 60일에 먹지 못하면 스스로 입덧[오조]에 속한다고 했다.
阻病用桂枝湯, 似有未合。
입덧에 계지탕 사용은 합당하지 않는 듯하다.
徐氏謂:“桂枝湯內證得之爲化氣調陰陽”, 差勝諸家, 而終未親切。
주암은 1832-1905년 사람으로 자가 백도이며 호는 녹기산인이다. 청나라 말기 명의로 절강 산음 사람이다. 1856년 순천부공관형부주사가 되었고 수도에서 한성 이질을 앓아서 용렬한 의사가 잘못 치료함을 보고 의학에 뜻을 두었다. 의학서적을 두루 보고 황제내경을 깊이 연구했다.
번역자는 홍성민으로 튼살 흉터를 치료하는 이미지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